당신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나요...?
처음에는 두 남녀, 우진(소지섭)과 수아(손예진)의 가슴 시린 사랑 영화인 줄로만 알았다.
물론 결국 헤어져야만 하는 둘의 운명이 안타깝고 슬펐지만 기적처럼 다시 만나 현재를 함께 살아가며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고 또 새로운 현재의 추억도 쌓아가는 모습이 마치 이제 시작하는 연인처럼 풋풋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실 속 수아에게는 이제 고작 네 번째 만남. 하물며 자동차 극장 영화를 빌려보기 위해 찾은 뒷산에서의 키스가 수아에게는 우진과의 첫 키스였다고 하니...
영화는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한 가족의 비극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진의 아내이자 지호(김지환)의 엄마인 수아는 사랑하는 남편과 금쪽같은 아들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수아가 떠난 후, 우진과 지호는 여전히 수아의 빈자리를 그리워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다시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나름 알콩달콩 지내는 부자의 모습만으로도 흐뭇함을 자아내지만 이것만으로 영화를 이끌어가기에는 부족할 터. 이들의 평범한 일상에 조금은 소란스럽지만 더욱 행복하게 해줄 기적이 찾아온다.
사실 기적은 애초에 멀리 있지 않았다. 수아가 생전에 지호를 위해 만든 엄마 펭귄과 아기 펭귄의 이야기를 그린 동화책, 기적은 지호가 늘 품고 다니다시피 하는 그 책에서부터 왔다. 지호에게 그 책은 엄마를 느낄 수 있는 매개체인 동시에 엄마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동화 속 엄마 펭귄이 그랬듯 장마가 시작되면 하늘나라와 이승 사이의 공간인 구름나라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수아가 자신을 만나러 내려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기적은 바로 이런 지호의 동심 어린 믿음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처럼 정말 기적이 찾아왔다. 수아가 돌아왔다. 단, 예전의 기억은 모두 잊은 채로...
기적을 맞는 우진과 지호의 자세가 의외로 태연하다. 나라면 몇 날 며칠은 못 믿을 것만 같은데 단 몇 시간 만에 이 상황을 받아들인다. 조금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만큼, 우진과 지호가 수아를 많이 그리워했다고 보니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불완전했던 지호네 가족은 기적을 통해 이제, 겉은 다시 완전체가 되었다. 수아의 기억이 없어 속까지 완전체가 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하루하루 같이 하는 추억이 늘어나면서 어느새 수아는 다시 우진과 지호를 사랑하게 되었다. 속까지 완전체가 되는 데에 있어서 수아의 예전 기억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지호네 가족의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아는 이따금씩 우진에게 자신들이 사랑을 키우던 시절의 풋풋한 이야기를 묻는다. 영화는 이렇게 두 주인공의 로맨틱 코미디 같은 러브 스토리를 행복한 나날의 중간중간에 끼워 넣는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칫 행복한 나날에만 빠져 있을 관객들에게 지금 이 상황은 엄연히 기적을 통해 만들어진 미스터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우진과 수아의 러브 스토리가 소설의 한 페이지처럼 하나씩 하나씩 공개된다. 그리고 빛바랜 옛사랑 이야기가 결말에 다다를수록 지금 이 현실은 현실이 아니라는 느낌이 점점 강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뭔가 또 불안한 일이 들이닥칠 것만 같은 어느 날, 수아는 청소를 하던 중 자신이 고등학교 때부터 써왔던 일기장을 발견한다. 일기장을 펴자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모두 알게 되고 자신이 어떻게 지금 이 곳에 왔는지까지도 알게 된다. 이로서 영화는 다시 한번 단란한 지호네 가족에 시련을 불어넣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 시련은 영화 후반부에 어김없이 찾아와 우진과 수아, 지호, 그리고 관객들을 울린다.
아마 관객들이 흘리는 눈물 속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는 저마다의 이유...
영화가 슬퍼서도 울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떠올라서 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단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당신에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장마기간 동안 만이라도 꼭 만나고 싶은 누군가가 있는지를...
다가오는 여름, 장마가 오기를 기다려야겠다. 제법 긴 장마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려보아야겠다. 그리고 만약 내게도 기적이 일어난다면 영화 속 우진과 수아가 그랬듯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당신 곁에 있어 항상 따듯했다고...
당신 옆에 있어 충분히 행복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