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화나다가도 웃프다가도 결국엔 감동적인

허스토리는 계속되어야 한다

by 트래볼러

관부재판이라는 역사(HISTORY)를 그녀들의 이야기(HERSTORY)로 그려낸 영화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네 분 할머니들이 만들어내는 따듯한 감동으로 풀어냈다. 주인공은 단연 네 분 할머니들(배정길-김해숙, 서귀순-문숙, 이옥주-이용녀, 박순녀-예수정)이지만 할머니들의 앞에서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선봉대장 정숙(김희애), 그리고 정숙의 요청으로 재판을 맡게 되는 재일교포 변호사 이상일(김준한)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여섯 사람이 만들어낸 위대한 이야기를 한번 들여다볼까 한다.



< 관부재판(시모노세키 재판) >
관부재판은 1992년 12월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에 재소한 '위안부'피해자 3명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 총 10명이 원고가 되어 약 9년 동안 걸쳐 진행된 재판이다. 이 재판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후쿠야마 연락회'등이 결성되어 국내의 재판 지원회와 긴밀한 한일 시민단체의 교류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 결과로 1998년 4월 일본 사법부는 사상 최초로 입법을 하지 않은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어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불할 것을 판결하였다. 이 재판은 일본 사법부에 제소된 60여 건의 전후보상 소송에 있어 매우 중요한 판결로 일본 사법부 사상 최초의 승소 판결이었다. 그러나, 야마구찌 지방법원 시모노세키 재판부의 1심 판결은 일본 정부의 항소로 히로시마 고등재판소 판결에서 뒤집어졌다. 결국, 관부재판(시모노세키 재판)은 2001년 3월 29일 히로시마 고등 재판에서 패소하였다. 이는 일부 승소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일본 정부의 작태를 단면적으로 보여준 재판이라 할 수 있다.

※참조 : (사)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숙은 부산에서 막강 여성파워를 자랑하는 성공한 사업가다. 딸에게 무책임한 엄마라는 타이틀만 빼면 모든 게 완벽한 그녀는 본의 아니게 또 하나의 오점을 새기게 된다. 자신의 여행사 직원이 불미스럽게 유흥 관광을 주도한 일. 이로 인해 그녀의 여행사는 몇 달간의 영업정지에 들어가게 된다. 이 사건은 훗날 정숙을 허스토리(그녀들의 이야기) 속으로 발을 내딛게 하는 중요한 계기이자 사건이 된다.

그 무렵, 대한민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들썩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피해 신고 접수가 늘어나며 사회적, 국가적으로 어떤 움직임이 있을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에 정숙의 친구이자 같은 부산 여성회 모임의 회장인 신사장(김선영)은 정숙에게 영업 정지 기간 동안 위안부 신고센터를 운영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한다. 몇 번의 튕김 끝에 못 이기는 척 수락한 정숙은 그렇게 위안부 신고센터 간판을 달고 본격적으로 허스토리와 허(할머니들)를 이끌어 갈 준비를 한다.


위안부 신고센터를 차리고 걸려온 첫 신고 전화


정숙은 성공한 사업가이자 커리어 우먼으로서 본래 승부사 기질이 다분하지만 허스토리에 승부욕을 쏟게 된 이유에는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10년 이상 자신의 살림을 도맡아 해주었던 도우미 할머니, 배정길 할머니. 함께 있을 땐 몰랐지만 할머니가 떠난 후 자신의 상담센터로 찾아온 할머니를 보고 정숙은 충격과 그동안 말하지 못해 답답했을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등의 감정이 교차한다. 어찌 됐건 남의 일이라 생각했지만 자신과 10년 이상을 살아온 배정길 할머니 역시 위안부 피해자인 걸 알게 된 이상 이제 남의 일이 아닌 정숙의 가족의 일, 그리고 같은 여자로서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한일 민간단체의 응원을 받으며 재판장으로 가는 정숙과 배정길 할머니


내 일이 된 이상, 이제 후퇴란 없다. 정숙은 부산지역에 계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 인사를 드린다. 물론 단번에 승낙하는 분은 한분도 없다. 피해자가 '나 위안부 피해자요~' 하면 되려 사회적인 따돌림의 피해자가 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문득 요즘 우리는 어떠한지 의문이 든다. 요즘은 위안부 문제로 그러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도 피해자가 오픈을 하면 되려 또 다른 피해, 2차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된 미투 운동의 여파로 고발된 성범죄 피해자들이 바로 그렇다. 영화의 배경이 1990년대 후반인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그 잔재가 남아있다. 세상은 참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정숙은 이런 할머니들을 꾸준히, 진심으로, 정성으로 끈질기게 찾아뵙고 설득한다. 그렇게 일본을 격파할 국가대표 판타스틱 4 멤버가 만들어진다. 배정길 할머니, 박순녀 할머니, 서귀순 할머니, 이옥주 할머니가 바로 그 멤버다.


최정예 국가대표 할머니 군단 결성!
시모노세키로 가는 배위에서...


정예 멤버도 꾸렸으니 이제 필요한 건 똑똑하고 유능한 책사. 우연히 신문을 통해 무료로 변론을 해준다는 재일교포 이상일 변호사의 기사를 접한 정숙은 단번에 일본으로 달려가 그를 포섭한다. 감독: 문정숙, 코치: 이상일 변호사, 선수: 네 분 할머니들. 이로서 국가대표팀 완성이다. 이제 적진으로 가서 싸우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 싸움이 쉽지는 않다. 그날의 악몽을 떠올려야 하는 증언, 수차례 일본을 왔다 갔다 하는 일, 그 외에 개인사에 얽힌 문제들. 할머니들에게는 싸워야 할 외적인 적들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정숙이 누구던가? 유능한 여성 사업가, 여장부 아니겠는가? 정숙은 할머니들과 함께 이 모든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포기하지 않고 적진을 향해 나아간다.


싸움은 시작됐다!
국가대표 코치진
언론의 지나친, 왜곡된 관심과 증언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서귀순 할머니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의 기간 동안 총 23번의 재판. 그 결과는...? 일부 승소. 하지만 진심은 쏙! 빠져있다. 때문에 일부 승소라고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인정하는 척! 하는 궁여지책(窮餘之策)에 불과한 건 아닌지...




때로는 화도 나고, 때로는 웃프기도 하지만 결국엔 감동적인 실화인 허스토리는 이렇게 끝나서는 안된다. 아니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일본이 법적, 사회적, 도덕적, 경제적, 모든 부문에서 책임을 다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물론 그중 으뜸은 당연 진심 어린 사과! 이미 많~이 늦었지만 이쯤 되면 이제는 정말 사과할 때 되지 않았나? 예나 지금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처하는 일본의 자세를 보면 외마디 탄식이 절로 나온다.


헐(Her)~~~~~


결과를 떠나서 허스토리는 그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 영화가 끝난 지금 그 위대한 성과를 기리며 한분 한분 다시 떠올려본다...


배정길(좌), 박순녀(우) 할머니
서귀순(좌), 이옥주(우) 할머니
그리고 문정숙(좌), 이상일 변호사(우)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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