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국내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래볼러 Aug 08. 2018

나만 아는 초원사진관의 비밀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초원사진관.

'초원'이라는 이름부터 푸르른 여름과 잘 어울린다. 장마가 그치고 생명력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8월을 겨냥한 지극히 의도적인 맞춤형 이름인지 싶지만 알고 보면 주연배우인 한석규가 지은 이름으로 그가 어릴 적에 살던 동네 사진관의 이름이라고...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군산 초원사진관




초원사진관으로 가는 길. 마음이 조급하다. 각종 SNS에 올라온 남들 다 찍는 초원사진관에서의 인생 사진은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완벽한 사진을 남겨야겠다는 부질없는 욕심에 사람이 많이 없을 아침 일찍 나서려 했건만 역시나 부지런 떠는 여행은 나와는 맞지 않은 듯싶다. 결국 해가 이미 중천에 뜬 오후 1시, 부랴부랴 초원사진관으로 향했다.

초원사진관에 가까워질수록 거리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이미 찍고 오는 걸까? 아니면 이제 찍으러 가는 걸까?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혹시나 찍으러 가는 사람들일까 싶어 두 다리를 더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혼자만의 레이스를 하며 앞서있는 몇 커플을 제치고 도착한 초원사진관 앞. 내가 원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적었다. 아마도 시간이 시간이니 만큼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가서 그런 듯했다. 나름 타이밍 잘 맞춰 왔다. 줄을 서야 할 만큼 사람들이 많았다면 뒷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치를 견디어 내가며 찍어야 했을 텐데... 더구나 카메라 초짜인 나에게는 생각만 해도 땀이 뻘뻘 나는 무시무시한 상황이다.;;; 다행히 그렇지 않은 덕분에 여유롭게 사진을 찍었다.


"10,9,8... 3,2,1 띠리릭~ 찰칵!"


여러장 찍었지만 결국 살아남은 건 단 2장^^;;


어느덧 사람들이 몰리고 줄이 생기기 시작한다. 잠시 치고는 제법 오래 초원사진관을 독점했으니 이 만큼 했으면 이제 사람들과 공유할 차례. 뒤 커플에게 초원사진관을 맡기고 사진관 안으로 들어갔다. 초원사진관 내부는 영화 속 모습 그대로, 그리고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사진관 모습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유치원 꼬꼬마 시절, 주로 엄마 심부름으로 사진관에 가곤 했는데 필름을 맡기러 가는 일은 좀 귀찮았지만 사진을 찾아오는 일은 설렜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내 눈엔 그저 새까만 코팅 종이 같은 게 네모난 사진으로 만들어지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필름을 빛에 비춰 대충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있기는 했지만)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되기도 했었다. 디지털카메라 나오고 핸드폰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면서부터 사진관에 갈 기회가 없어졌는데 정말 오랜만의 사진관 방문이다. 엄마 심부름으로 왔던 그때의 설렘이 되살아 나는 것 같다.


 극중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엑스트라가 아닌 새로 생긴 사진관으로 알고 찾아온 실제 손님이었다고 한다. 쇼윈도의 사진들도 어쩌면 실제 손님일지도...


마치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벽에는 우리네들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8월의 크리스마스의 두 주인공 정원(한석규)과 다림(심은하)이 영화 속에서 찍었던 사진들도 함께 걸려있다.(지금 봐도 심은하는 정말 이쁘다.^^*) 사진관 안쪽에는 스튜디오가 있어 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단란한 가족사진, 알콩달콩 커플사진, 그리고 영화 속 두 주인공처럼 독사진을 주로 찍는다. 사진에는 우리의 인생이 담겨있고 그 사진 속 인생은 추억으로 남는다고 하는데, 스튜디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을 그렇게 추억으로 담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인생을 추억에 담았다.


왼쪽 벽위에 달려있는 스피커에서는 한석규가 직접 부른 8월의 크리스마스 엔딩곡이 흘러 나와 감성을 더한다
어머님 아버님 오붓하게 한컷! 찰칵!


사진관을 나가려는데 카운터에 있는 오래된 물건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라?! 이건..."


아마 나 말고 이 물건에 시선을 빼앗긴 사람은 적어도 지금 사진관 안에서는 없을 듯싶다. 그 범인은 오래된 '영사기'. 전원을 켜면 지금이라도 당장 움직일 것처럼 외관상으로는 멀쩡한 영사기에 꽂혀있는 필름이 참 재밌다. 필름을 보면 누가 봐도 필름이 아닌 것은 알 수 있겠지만 거기에 남들보다 내가 더 아는 한 가지는 사실은 필름이 아닌 그 필름의 정체! 필름으로 둔갑한 그것은 다름 아닌 전자부품이다. 고등학교 시절 물리 수업 시간에 콘덴서(혹은 커패시터, Capacitor)라고 들어봤을 것이다.(더 이상의 설명은 더 이상 글을 읽지 않을까 싶어 하지 않으련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공대생 출신으로서 현 하드웨어 개발직에 종사하고 있는 회사원의 레이더에 딱 들어왔다. 이걸 여기서 볼 줄이야... 회사에서 월화수목금 내내 보고 만지는 놈이라 여기까지 와서도 봐야 되나 싶어 꼴 보기 싫다가도, 그렇게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서인지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다. 현재의 초원사진관은 영화 촬영 후 철거했다가 이후 군산 시에서 다시 관광객들을 위해 복원한 것이라고 하는데,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그분은 공대생 출신이 아니실는지... 다시 봐도 무릎을 탁! 칠만한 아이디어이자 여간 재밌는 모습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초원사진관의 비밀! 필름 대용으로 쓰인 전자부품(콘덴서)
영사기 아래에 전시되어 있는 추억의 카메라들




밖으로 나오니 이제 줄 서는 것은 필수요 오롯이 둘만 나오게 사진 찍기는 힘들 만큼 사람들이 많아졌다. 북적북적 거리는 초원사진관 앞의 풍경을 담으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 남들 다 찍는 흔한 인증샷 말고 왜 영화 속 정원과 다림처럼 찍어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다.


주차단속요원인 다림이 타고 다녔던 자동차는 여전히 사진관 옆에서 '주차질서' 확립을 외치고 있다
초원사진관 주변 벽화에서 추억을 남기는 사람들
시장통처럼 북적북적 붐비기 시작한 초원사진관 앞, 난 이제 볼일 다봤으니 이만 안녕~


이제는 정면샷 말고 요런 콘셉트는 어떨지...?

(혹시나 막상 찍었는데 같은 사진 다른 느낌이라도 실망하지는 말자! 우린 한석규도 심은하도 아니니까^^;;)


정원을 기다리는 다림
사진관 앞 나무그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정원과 다림




< TRAVEL NOTE >


초원사진관

초원사진관은 1998년 1월에 개봉한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 장소다. 영화는 불치병을 앓는 30대 중반의 사진사 정원(한석규)이 주차단속원 다림(심은하)을 만나면서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한 기억을 엮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8월의 크리스마스 제작진은 전국의 사진관을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잠시 쉬러 들어간 카페 창밖으로 여름날의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차고를 발견하고 주인에게 어렵사리 허락을 받아 사진관으로 개조하였다. "초원사진관"이라는 이름은 주연배우인 한석규가 지은 것인데, 그가 어릴 적에 살던 동네 사진관의 이름이라고 한다. 영화 촬영의 대부분은 이 초원사진관 인근에서 이루어졌다. 촬영이 끝난 뒤 초원사진관은 주인과의 약속대로 철거되었다가, 이후 군산시에서 관광객들이 관람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복원하여 군산의 대표 관광명소가 됐다.

[가는 법] 전라북도 군산시 구영 2길 12-1
  - 군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 이용 약 6분 소요
  - 군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 이용 약 15분~30분 소요 (중앙사거리 정류장 하차)

[이용시간]
  - 9AM-21:30PM
  - 매주 첫째, 셋째 월요일 휴무

[문의] 063 446 5114


참조 : 군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진도와 해남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