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오지 않는 이유
도로 위의 런웨이
바르샤바 신시가지 쪽으로 가기 위해 가까운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바르샤바의 일요일 오전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거리가 한산하다. 아마 다들 토요일 밤을 활활 불태우고 침대 위에서 푸석푸석 재가 되어 있으리라. 근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간간히 차 한 대 정도는 휭~ 지나갈 법도 한데, 죽은 도시를 나 홀로 걷고 있는 기분이다. 깊은 새벽, 거리를 걷고 있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고요와 쓸쓸함마저 느껴진다.
버스정류장에는 한 폴란드 청년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나 노선도를 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청년이 말을 걸어온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버스는 오지 않을 거야. 다른 정류장으로 가봐."
"버스가 왜 안 와?"
"하프 마라톤 대회가 있거든. 이 길이 마라톤 코스야."
유난히도 쌔~ 한 기분이 드는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일요일 오전이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라톤 때문에 공식적으로 차량 통제가 되었던 것.
"그런데 넌 왜 여기서 기다려?"
"내 친구가 참가했거든. 곧 여기를 지날 텐데... 한번 구경해봐~ 재밌을 거야!"
'같이 보자!'라는 말로 들릴만큼 적극적으로 권유했지만 마라톤에는 별로 흥미가 없던 나였기에 난 청년이 알려준 다른 정류장을 향해 출발한다. 그때,
"오! 봐봐! 저~~ 어기 온다!"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마라토너들의 행열
딸 : 엄마 파이팅! / 남편 : 여보 파이팅! / 엄마 : 잘 완주하고 올게! 이따 봐!나도 모르게 결국 가던 길을 멈추고 마라톤을 구경했다. 각자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 지인을 응원 나온 사람들이지만 모르는 마지막 한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두 지나가자 응원을 펼쳤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흩어지기 시작한다.
"아직 안 갔네? 그냥 간 줄 알았는데."
"응, 그냥 갈 수가 없었어. 참가자들이 진짜 많네. 바르샤바 사람들이 다 뛰고 있는 것 같아."
"폴란드 사람들은 달리기를 좋아해. 가장 인기 있는 운동이야."
쉽게 말해 '달리기'는 폴란드의 국민 스포츠란다. 폴란드 사람들은 공휴일을 활동적으로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공휴일이면 크고 작은 달리기 대회들이 종종 열린다고 한다.
"그럼 거의 매주 일요일이면 열려?"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오늘 대회는 폴란드 한 기업에서 주최하는 건데 1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야. 넌 운이 좋았어!^^"
여행자로서는 제법 보기 쉽지 않은 구경거리를 보게 된 것 같아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마라토너들의 복장 때문에 마냥 신기하고 재밌어서 발을 떼지 못했지만 사진을 찍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재미뿐만 아니라 꽤 감동적인 장면들도 있었다. 유모차에 태운 아이와 함께 달리는 슈퍼맨 아빠, 휠체어를 탄 채 두 다리가 아닌 두 손으로 달리는 참가자까지. 진부하지만 대회의 진정한 승리자는 바로 이들이 아닐까?
삑~! 이건 반칙 아닌가요!?
카메라를 의식하며 달리는 펭귄
영화 '300'의 병사들?만약 다시 바르샤바에 오게 된다면,
그땐 꼭 러닝화 한 켤레, 한복, 그리고 태극기를 챙겨야겠다.
< Travel Note >
바르샤바 PZU 하프마라톤 (PZU Półmaraton warszawski)
폴란드 보험회사인 PZU에서 주최하는 하프마라톤 행사로 매년 개최된다.
(2019년에도 3월 31일 개최 예정)
대회 정보 및 참가방법 (Information & How To Join)
- 대회 공식 웹사이트 참조
바르샤바에 가장 큰 달리기 대회는?
'Bieg Niepodległości'라는 폴란드 독립 기념일 달리기 대회로 참가자만 해도 만 명이 훌쩍 넘는 규모라고 한다.
대회 정보 참조 (Information)
- 대회 공식 웹사이트 참조
참조 : PZU Maraton Warszawski 공식 웹사이트, RUN POLAND 공식 웹사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