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래볼러 Jan 29. 2019

바르샤바에서 쇼팽 찾기

여기도 쇼팽, 저기도 쇼팽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는 어려워도 바르샤바에서 쇼팽 찾기는 쉽다.

바르샤바 신세계 거리에서 구시가지까지 천천히 걸어보자!.

쇼팽의 흔적을 찾아 걸어도 좋고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좋다.

걷다가 힘이 들면 잠시 쉬어가자!

무심코 앉은 벤치에서 쇼팽의 선율이 들려올지도 모른다.




바르샤바 프레드릭 쇼팽 국제공항
(Lotnisko Chopina)


바르샤바에 도착했다면 사실 쇼팽을 찾은 거나 다름없다. 공항이 쇼팽 공항이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공항 이름에 그 나라 혹은 도시를 대표하는 위인의 이름을 넣곤 한다.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Mikołaj Kopernik), 최초로 방사성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 물리학자이자 화학자 마리 퀴리(Maria Skłodowska-Curie), 1905년 노벨 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소설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 가장 위대한 폴란드 낭만주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꼽히는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 나치주의와  공산주의에 맞서 싸워 오늘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더불어 폴란드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성직자 스테판 비신스키(Stefan Wyszyński), 폴란드의 수도를 크라쿠프에서 현재의 바르샤바로 이전한 폴란드 국왕 지그문트 3세 바사(Zygmunt III Waza)까지. 실제 바르샤바를 여행하면서 동상으로 한 번쯤 마주칠 수 있는 폴란드의 위인들이다. 이처럼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쇼팽이 당당히 그 자리를 차지한 걸 보면 쇼팽에 대한 폴란드 사람들의 깊은 애정과 존경이 느껴진다.


바르샤바 프레드릭 쇼팽 국제공항



와지엔키 공원
(Łazienki Królewskie)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많이들 나와있다

주말이면 와지엔키 공원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휴일에 와지엔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줘야 진짜 폴란드 사람이라 할 만큼 와지엔키 공원에 대한 폴란드 사람들의 애착은 식사 후 커피를 찾는 것과 같다고 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햇볕을 쬐기 좋은 계절이면 매주 일요일, 하루 2번 쇼팽을 만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난 지금 햇볕보다는 찬바람 쐬기 더 좋은 계절에 와있다. 아쉬운 마음을 야외 공연장 중앙에 있는 쇼팽 기념비(Chopin Statue)로 달래 본다.



공원 안 쇼팽 콘서트가 열리는 장소, 콘서트가 열릴 때면 잔디밭은 사람들로 빈틈없이 메워진다고 한다
쇼팽 탄생 100주년 기념비 (Chopin Statue)
휑~한 객석들


딴~ 따딴~ 따따따따딴~♬


어디선가 피아노 반주가 들린다. 처음 들어보는 멜로디지만 본능적으로 쇼팽의 음악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서 나는 거지? 누가 버스킹이라도 하나?'


아무리 주위를 살펴도 피아노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콘서트를  대신해서 누군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나 보다.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음악이라도 듣고 가야겠다 싶어 소리를 따라가 보는데,


'뚝!'


음악이 끈겼다;;; 나에겐 쇼팽의 음악을 듣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건가?ㅜㅠ 아마 폴란드에서 내가 가장 불운한 여행자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그때, 다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재빨리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드디어 찾았다! 소리의 근원지를. 휴대용 스피커나 핸드폰을 크게 틀어 놓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 밖의 것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바로 벤치. 벤치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벤치에서 쇼팽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


음악이 끝나고 이번에는 내가 직접 버튼 눌렀다. 그리고 주변을 한 바퀴 휭~ 둘러본다. 와지엔키에 쇼팽의 선율이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쇼팽 벤치(Chopin Bench)

쇼팽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바르샤바에서 15개의 음악 벤치를 설치했다. 최고급 품질의 스웨덴 화강암으로 만든 벤치 위에 있는 'Play' 버튼을 누르면 쇼팽의 피아노 곡이 흘러나온다. 휴대전화 QR코드 인식으로 곡을 다운로드할 수도 있다.
'쇼팽의 바르샤바(WARSZAWA CHOPINA / CHOPIN'S WARSAW)'라고 새겨진 쇼팽 벤치는 쇼팽이 어린 시절을 보낸 '크라코프스키 프르제드미에치에(Krakowskie Przedmieście)' 거리 곳곳에 설치됐다. 벤치 위에 그려진 약도에 각각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크라코프스키 프르제드미에치에 거리
쇼팽 벤치 #15 @와지엔키
곡정보 : Polonaise  in A minor, Op.40 No.1; 39"


쇼팽 박물관
(Muzeum Fryderyka Chopina)


바르샤바 신세계 거리(Nowy Swiat)

신세계 거리는 바르샤바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다. 거리를 따라 쭉~ 걷다가 구시가지로 접어드는 사거리가 나오기 전, 오른쪽으로 한 블록을 들어가면 예술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아담한 거리가 나온다. 작자 미상의 예술들이 건물 외벽에 입혀져 있어 벽화마을을 연상시킨다. 이 알록달록한 거리에 쇼팽 박물관이 있다. 그가 사용했던 악보, 피아노, 입던 옷.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쇼팽의 인생이 전시되어 있다.

건물 외벽의 그림이 예술의 거리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쇼팽 기념품점과 음악 아카데미
쇼팽 박물관(Muzeum Fryderyka Chopina w Warszawie)


거친 필체가 뭍어있는 악보와 당시 음악회 벽보
쇼팽이 입었던 의상과 쇼팽의 마지막 피아노
실제 연주가 열리기도 한다는 지하 콘서트 홀,  연주가 없을 땐 쇼팽 콩쿠르 우승자들의 당시 연주 영상을 틀어놓는다


피아니스트 에릭 루(Eric Lu),  2015년 바르샤바 국제 쇼팽 콩쿠르에서 17세의 나이로 수상
잠시, 감상해보시죠!^^
마지막 순간
1849년 10월 17일 프랑스 파리, 쇼팽은 더 이상 없다
데드마스크와 머리카락
프레데리크 쇼팽 (Frédéric Chopin)


박물관 뒤편의 작은 공원. 공원 옆 바르샤바 쇼팽 음악 대학교(Uniwersytet Muzyczny Fryderyka Chopina)에서는 미래의 쇼팽을 꿈꾸고 있을 예비 음악가들의 노래와 바이올린 연주가 한창이다.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만으로도 공원 전체가 꽉 찬다. 무료 야외 콘서트가 따로 없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앉아서 즐겨볼까 해서 앉을 곳을 찾아보는데... 두둥! 이 곳에도 쇼팽 벤치가 있다.


쇼팽 벤치 #2 @쇼팽 박물관
곡정보 : Ballad in F minor, Op.52; 42"


크라코프스키 프르제드미에치에(Krakowskie Przedmieście) 거리


쇼팽이 어린 시절을 뛰놀며 보냈다는 크라코프스키 프르제드미에치에 거리 어딘가를 지나고 있는데 한 건물 옆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는 거보니 이제 막 줄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뭔지는 모르지만 호기심에 일단 맨 뒤로 따라붙는다. 내 뒤로도 줄은 계속 길어진다. 도통 무슨 줄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ㅇ? 앞사람이 날 쳐다봐 주기를 기다리며 지긋이 바라본다. 마침내 눈이 마주쳤다.


"여기 왜 줄 서있는 거죠?"

"대통령궁 투어 기다리는 줄이에요."


대통령궁(Pałac Prezydencki)

"아! 언제 입장해요?"

"곧 입장할 텐데... 예약은 했죠?"

"아뇨, 지나가다가 줄 섰는데..."

"그럼 들어갈 수 없어요. 사전에 미리 신청해야 돼요."


'이런...;;;'


예약도 안 하고 당당히 줄을 서있었다니, 민망함에 도망치듯 대기줄에서 빠져나온다. 괜히 한참을 서서 기다렸다. 지친 다리를 달래주고자 털썩! 벤치에 엉덩이를 붙인다. 일부러 찾아 앉은 건 아닌데 앉고 보니 쇼팽 벤치다.  


쇼팽 벤치 #6 @대통령궁 부근
곡정보 :  RONDO in C minor, Op.1; 32"

 

잠코비 광장
(plac Zamkowy)


잠코비 광장(plac Zamkowy)

잠코비 광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전망대(Taras Widokowy)가 있다 하여 그리로 향하는 길. 입구에 다다랐을 때  맞은편에서 나의 레이더 망에 포착된 검은 회색 물체 하나. 쇼팽 벤치다!


바르샤바에 며칠을 있다 보니 쇼팽 벤치가 보이면 play 한번 눌러주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머물러다가 가는 게 쇼팽 벤치에 대한 나만의 성스러운 의식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이번에도 Play 꾹!


쇼팽 벤치 #4 @잠코비 광장
곡정보 : WALTZ in E-flat major, OP. 18; 39"


성 십자가 성당
(Kościół Świętego Krzyża)


여느 유럽처럼 바르샤바에도 성당이 많다. 개중에는 평범한 동네 성당도 있고 역사나 종교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성당도 있다. 신세계 거리와 크라코프스키 프르제드미에치에 거리, 이 두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아주 특별한 성당 하나가 있다.


성 십자가 성당


쇼팽 벤치 #12 @성 십자가 성당 앞
곡정보 : MEMORIAL MARCH from SONATA in B minor, Op.35; 45"


“나의 몸은 프랑스 파리에 있지만, 나의 영혼은 조국 폴란드와 늘 함께했어. 내 심장을 폴란드에 묻어줘.”


쇼팽이 누이에게 남긴 유언이다. 누이는 쇼팽의 유언대로 시신을 폴란드로 가져가려 했으나 당시 폴란드를 지배하고 있던 러시아가 이를 거부했다. 하여 쇼팽의 심장만을 따로 빼내 알코올이 담긴 상자에 넣어 밀봉하고 러시아 출입국 관리의 눈을 피해 폴란드 바르샤바로 몰래 가지고 들어왔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고향에 돌아온 쇼팽의 심장이 여기, 성 십자가 성당에 소중히 안치되어 있다.


쉿! 지금은 미사 중
쇼팽의 심장이 묻혀있는 기둥
'여기 프레데리크 쇼팽의 심장이 쉬고있다'




여기도 쇼팽, 저기도 쇼팽.

바르샤바에서는 가는 곳마다 쇼팽을 만날 수 있다. 바르샤바를 여행한다는 건, 쇼팽을 여행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앉아봐야 할 10개의 쇼팽 벤치가 남아있고 와지엔키에서 쇼팽 콘서트도 봐야 한다. 바르샤바 근교에는 쇼팽의 생가도 있다고 하니, 또 다시 바르샤바에 와야겠다. 못다 찾은 쇼팽을 찾으러.




< Travel Info >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 (Frédéric François Chopin)

폴란드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쇼팽은 가장 위대한 폴란드 작곡가 중 한 명이다. 프랑스어 교사 아버지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쇼팽은 일찍부터 피아노에 두각을 나타내어 그것이 모차르트에 비견될 정도였다.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8세 때에 공연을 가졌다. 14세 때 바르샤바 중학교에 입학하여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연극에도 흥미를 가지고 희곡을 써서 공연하기도 하였다.
성인이 된 후 빈으로 갔는데 이때 조국 폴란드의 비보를 듣게 되었고 귀국을 하여 군입대를 하려고 했지만 아버지로부터 조국을 위해 음악을 열심히 하는 길도 애국이라는 답장을 받고 음악에 전념했다. 그 결과 폴란드가 낳은 최초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가 되었다. 쇼팽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다소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있지만 공식적으로는 1849년 10월 17일,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쇼팽을 기념하기 위해 5년마다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바르샤바에서 열린다.


바르샤바 쇼팽 국제공항 (Lotnisko Chopina)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오케치에 지구에 있는 국제공항으로 LOT 폴란드 항공의 허브 공항이다. 오케치에 공항(영어: Okęcie Airport)으로 부르기도 한다.

tel : (+48) 22 650 42 20


와지엔키 공원 (Łazienki Królewskie) 쇼팽 콘서트 (Chopin Concert)

5월 ~ 9월, 매주 일요일 오후 12시, 16시. 야외 공연장에서 쇼팽 콘서트가 열린다.
입장료 없음.


프레데릭 쇼팽 박물관 (Muzeum Fryderyka Chopina)

'피아노의 시인' 쇼팽을 추억하는 박물관으로 그가 사용했던 악기와 악보, 가구, 가족사진, 자화상, 자필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쇼팽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쇼팽에 대한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opening hours : 화요일 - 일요일(11am to 20pm), 월요일 휴관
entrance fee : 22 PLN (일반 티켓 기준), 수요일은 무료입장
tel : (+48) 22 44 16 251/252


성 십자가 교회 (Kościół Świętego Krzyża)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건물의 1/3이 파괴되었으나 재건 이후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 바르샤바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 중 하나다. 그 이유는 이 곳에 쇼팽의 심장이 묻혀있기 때문.


참조 : 위키백과, 쇼팽 박물관 브로셔

매거진의 이전글 버스가 오지 않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