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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Mar 25. 2019

바르샤바를 지키는 여자

바르샤바 구시가지(Stare Miasta)

바르샤바 구시가지의 중심, 구시가지 광장으로 가기 위해 구글맵을 켠다. 지도안 구시가지 광장은 누가 봐도 여기가 광장임을 알 수 있을 만큼 네모 반듯하다. 흡사 방패연 모양. 지도를 따라 요리조리 중세 유럽 골목 사이를 누빈 끝에 마침내, 구시가지 광장에 도착했다.


바르샤바 구시가지 광장 (Captured on Google Map)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중앙에 있는 기념비에 시선이 끌린다. 사람들이 기념비를 빙~ 둘러싸고 있다. 유럽에서는 동상이나 기념비가 동네마다 하나씩 있을 만큼 흔하디 흔하지만 이 기념비는 조금 특별하다. 반은 사람, 반은 물고기. 상상 속 생명체인 인어다. 뜬금없이 웬 인어??? 물가에 있어야 할 인어가 이처럼 육지에, 그것도 넓디넓은 광장 한복판에 있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전설이 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2가지 이야기가 있다. 서로 내용은 다르지만 이야기 중심에는 공통적으로 어부가 등장한다.


비스와강에서 고기 잡는 어부가 낚시를 하다가 인어를 낚았는데, 둘은 사랑에 빠지고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이들의 자손이 도시를 세웠는데 도시의 이름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왔다. 어부의 이름이 바르(Wars), 인어의 이름이 사바(Sawa)였다.


인어가 비스와 강변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한 상인이 인어의 노래를 듣고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면 돈이 되겠다 싶어 인어를 잡아 가둔다. 하지만 어부와 그의 아들이 그녀를 탈출시키고, 인어는 그 보답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그들을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바르샤바 구시가지 광장 인어 기념비(Pomnik Syreny na Starówce)


어떤 게 진짜일까?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되기는 둘 다 마찬가지. 인어와 인간이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전설은 전설일 뿐! 어쨌든 인어는 그렇게 비스와 강에서 육지로 올라오게 된 것이었다.




Under the sea~♬ Under the sea~♬

애니메이션 속 인어공주는 여성스럽지만 바르샤바의 인어는 전사다. 인어'공주'가 아니라 인어'전사'가 더 어울린다. 굳은 표정으로 칼과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이 늠름하기까지 하다. 과거 *바르샤바 봉기가 일어났을 당시, 어쩌면 봉기군의 선봉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르샤바 봉기(powstanie warszawskie),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시 1939년부터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점령하고 있던 독일 군대에 저항하여 폴란드의 국민군이 일으킨 봉기로, 봉기군의 무장이 매우 변변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63일이나 지속되었다. 봉기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폴란드인들의 용기의 증명이었으며, 서방의 국가들이 독일에 의해 점령된 폴란드의 비극적인 운명을 잊지 않도록 한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이다.


바르샤바 봉기로 인해 당시 바르샤바는 구시가지의 85% 이상이 폐허가 되었다. 붉은 벽돌의 성벽 안 알록달록 파스텔 톤의 거리, 주택, 성당, 궁전, 왕궁, 광장 등이 모두 폭파당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속 폐허가 된 바르샤바
불타고 무너지는 바르샤바
이랬던 도시가, 이렇게 복원됐다


잠코비 광장(plac Zamkowy)과 바르샤바 왕궁(Zamek Królewski w Warszawie)
바르샤바 구시가지(Starego Miasta)_#1
바르샤바 구시가지(Starego Miasta)_#2
바르샤바 구시가지 광장(Rynek Starego Miasta)_#1
바르샤바 구시가지 광장(Rynek Starego Miasta)_#2
바르샤바 구시가지 광장(Rynek Starego Miasta)_#2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바르샤바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그때 그 시절을 재현해냈다. 약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여러 가지 역사적인 자료를 토대로 형형색색 하면서도 세월이 흔적이 묻어있는 낡은 벽돌의 모습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복원해냈다. 이 같은 바르샤바 국민들의 힘으로 구시가지는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 재건된 유적지 중 계획대로 완전히 재건된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사례로 기록되었고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선정되었다.



수차례 주변국의 침략을 받은 폴란드.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어 끝내는 지금의 건재한 모습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던 건 어쩌면 바르샤바의 상징, 인어의 수호 때문은 아니었을까?

늠름한 인어가 바르샤바를 지키고 있기에 앞으로는 폴란드에 과거와 같은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 거라 믿고, 바란다.



< Travel Info >


바르샤바 구시가지 (Stare Miasto)


참조 : 주한 폴란드 대사관, Google Maps,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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