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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Nov 09. 2019

오스트레일리아 말고 오스트리아

여행 덕후이고 싶은 여행 피라미의 빈 여행

본격적인 여행 덕후가 되기 전, 그러니까 서른 하고도 한 살이 되기 전까지 난 오스트리아라는 나라가 있는 줄 몰랐다. '에이~ 뻥!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팩트다.(자랑은 아니지만;;;)

모차르트는 알지만 음악의 신동, 천재 음악가,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고 그가 어디 사람인지까지는 막말로 내 알바가 아니었다. 어릴 적 도시락 반찬으로 비엔나소시지를 자주 먹었지만 그냥 식품회사에서 지은 소시지 이름 정도로만 생각했다. 학창 시절 세계사 수업 시간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시간이었기에 내가 알고 있던 세계 각국의 거의 대부분은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월드컵과 올림픽으로 쌓은 내 나름대로의 빅데이터였다.(아마 오스트리아가 축구나 혹은 잘하는 다른 스포츠가 있었다면 알 수 있었을지도...)


처음으로 오스트리아를 알게 된 건 회사 해외출장이다.


"한 일주일 정도 오스트리아에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개인 스케줄 괜찮지?"

"오스트레일리아요?... 호주요?"

"뭐?ㅋㅋㅋ 아후... 오스트리아 몰라? 비엔나 몰라?"

"음... 아;;; 네... 괜찮습니다.^^;;"


여전히 어딘지는 몰랐으나 일단 해외출장이니 여행 덕후인 나에게 안 괜찮을 이유가 없었다. 자리로 돌아와 검색 사이트에 ‘오스트리아’를 쳐보니 나 스스로도 어떻게 이 나라를 모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동유럽 여행지였다. 하... 이러면서 덕후는 무슨 덕후... 그냥 여행 피라미다.ㅠㅠ 나이 서른하나에 오스트리아를 알게 된 여행 피라미는 그렇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떠났다.




빈엔 없는 비엔나커피


빈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비엔나커피 한 잔 하고 오라는 말이다. 커피라곤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밖에 모르는 촌놈인 데다 빈이라는 도시도 이번에 처음 알았기에 비엔나커피가 유명하다는 사실 역시 처음이었다.

빈의 최대 번화가인 케른트너 거리에 있는 한 카페에 들어가 매의 눈으로 메뉴판을 스캔했다.


"비엔나커피라고... 빈 사람들이 가장 즐겨마시는 커피라고 들었는데..."

"비너 멜란지(Wiener Melange)? 이게 빈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커피예요."


음... 그게 아닌데...;;; 비엔나커피를 포기할 순 없었지만 없다는데 뭐 별수 있나. 어쨌든 빈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라고 하니 일단 여기서 비너 멜란지 한잔 마시고 비엔나커피를 찾아 다른 카페로 가보기로 했다.

커피를 기다리며 비엔나커피를 파는 다른 카페를 찾아보는데 뜻밖의 사실이 내 뒤통수를 때렸다.


'빈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


설마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와 같은 썰렁한 아재 개그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정말로  빈엔 '비엔나커피'라는 메뉴가 없었다. 그럼 귀가 닳도록 들었던 비엔나커피는 대체 뭐지? 소문 듣고 찾아간 맛집인데 이미 오래전에 없어져 허탕을 친 것처럼 허무했다. 그리고 곧 알게 된 비엔나커피의 정체. 우리가 비엔나커피라고 부르는 그 커피는 본래 아인슈패너(Einspänner)라고 하는 오스트리아 커피였다. 우리나라에서 빈의 영어 이름인 비엔나를 따 비엔나커피로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빈을 여행하는 동안 난 비엔나커피, 아니 아인슈패너를 마시지 않았다. 빈이 빠진 빈의 대표 커피는 내 마음속에서 이제 그저 그런 평범한 카페 메뉴 중 하나로 전락해버렸다. 아인슈패너 대신 실제 빈 로컬들의 국민커피인 멜란지를 즐겨 마셨다. 차라리 잘됐다. 하마터면 우리나라 문화에 휩쓸려 진짜 로컬 커피를 못 알아볼 뻔했다. 역시 로컬 문화는 로컬에서 직접 부딪혀가며 접하는 게 진리다.

*카페 케른트너(Cafe Gerstner)의 멜란지(Winer Melange) 커피와 초콜릿 케이크
* 카페 케른트너(Cafe Gerstner) : 현재는 폐업 상태. 하지만 아인슈패너와 멜란지는 빈 어디서든 즐길 수 있으니 NO걱정!


용쓴다 용써!


빈의 랜드마크 슈테판 대성당 주변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들 고개를 270도 뒤로 넘겨 웅장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압도적인 크기의 슈테판 대성당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애쓴다. 개중에 몇몇 사람들은 아빠 다리를 하고 땅에 털썩! 주저앉아 있거나 그래도 안되면 아예 벌러덩! 드러누워있다.


"아우~ 용쓴다 용써!ㅋㅋㅋ 뭐 굳이 저렇게까지야..."


나 역시 여행을 할 때면 인생 사진을 건지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편이지만 타고나기를 워낙에 똥손인지라 아무리 잘 건져도 거기서 거기 일 때가 많다. 그놈이 그놈인 사진들을 보면서 본디 눈보다 좋은 카메라는 없다며 자기 합리화 인척 자기 위안을 하곤 한다. 때문에 라면 먹을 때 김치를 찾는 것만큼 사진에 크게 집착하지는 않는 편이다. 나는 열정이 넘치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고개만 살짝 넘겨 카메라를 들이댔다. 언제나 그렇듯 적당히 찍고 갈 심산이었다. 그런데 카메라가 비추는 슈테판 대성당의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큰 맘먹고 무릎 한번 굽혀보기로 한다. 굽히고, 굽히고, 또 굽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쪼그리고 앉아 오리걸음 자세가 되어 있다. 그것도 모자라 곧 중심을 을 잃고 뒤로 넘어갔다.


털썩!


결국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야 이해가 됐다. 저들이 왜들 저렇게 난리부르스를 치고 있었는지. 엉덩방아를 찧고 앉은 나를 보며 지나가는 외국인이 씩~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아마 속으로 나처럼 생각을 하고 있겠지.


"용쓴다 용써!"


빈의 상징 슈테판 대성당 (Domkirche St. Stephan)


말똥 광장


호프부르크 왕궁 앞 미하엘 광장. 뜬금없이 내 머릿속에 원조 국민드라마의 주제가가 울려 퍼진다.


"빠바바 빠바밤~♪ 빰빠밤~♬"


논밭 하나 없는 곳에서 갑자기 왜 전원일기(田園日記, 1980년 10월 21일에서 2002년 12월 29일까지 MBC에서 방영한 농촌 드라마) 노래가 떠올랐을까 싶은 찰나, 콧속으로 타고 들어와 머릿속 깊숙이 묻혀있던 이 오래된 선율을 끄집어낸 건 다름 아닌 말똥 냄새다. 일명 고향의 향기.

미하엘 광장이 관광마차의 출발지이자 종점이다 보니 손님을 기다리고 있거나 이제 막 돌아온 말들이 열 맞춰 모여있었다. 마차 한대만 스쳐가도 찐하게 파고드는 말똥 냄샌데 이러니 진동을 할 수밖에;;; 존재감 확실하게 뽐내시는 말똥 냄새 덕분에 미하엘 광장이라는 우아한 이름 대신 말똥 광장이라는 친근하고 구수~한 이름으로, 내 마음속에 저장~

미하엘 광장(Michaelerplatz)
호프부르크 왕궁(Hofburg Wien)


이거 참, 씁쓸~하구만


빈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재래시장인 나슈마르크트 시장을 찾았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실컷 눈팅하고 돌아다녔더니 슬슬 배꼽시계가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잔뜩 흥분해있는 배꼽시계를 진정시키기 위해 지나오면서 봐 둔 한 소시지 가게로 향했다. 크으~ 역시 동유럽 맥주, 오독! 오독! 역시 맥주엔 소시지다.

한창 맛있게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옆을 돌아보니 우리나라로 치면 한 초등학교 5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 넷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아이들의 눈엔 외국인인 우리가 당연히 신기하겠지 싶어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같이 사진 찍어요!"

"응! 그래! 찍어 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NO!!!"


함께 있던 회사 동료가 강력하게 거절을 했다. 갑자기 돌덩이보다도 더 단단한 단호박이 된 동료의 모습에 거절당한 아이들처럼 나 역시 얼음이 됐다. 아니 뭐 자라나는 어린양들에게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이게? 나라도 혼자 찍으면 되는 것을...


"ㅋㅋ왜요? 사진 찍기 싫으셨어요? 저 혼자라도 찍으면 됐을 텐데..."

"그게 아니고, 쟤네 하는 짓 좀 봐요~"


추억의 예능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의 몸으로 말해요 코너였다면 문제의 정답은 분명 원숭이였을 것이다. 원숭이 흉내를 내며 지들끼리 웃고 떠들고 있다.ㅡㅡ^


"헐... 지금 우리가 거절했다고 저러는 건가?"

"쟤네 아~까부터 우리 쳐다보면서 저러고 있었어요."


아! 그랬구나;;; 아놔! 저것들을 그냥 아주! 확! 마!

하고 싶은 마음이 혀끝에까지 이르렀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교양 있는 여행자로서 꾹 참았다. 어른과 아이들의 싸움이고 어쨌든 여기는 빈이니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우리가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사실 그보다는 영어로 어떻게 화내야 할지를 몰라서 못했다. 밑도 끝도 없이 Fxxx Yxx 만 할 수도 없고^^;;)


이런 게 인종차별이라는 거구나...

예고 없이 찾아온 인종차별 공격에 입맛이 뚝 떨어졌다. 무엇보다 그 주체가 아직 순수해야 할 아이들이었다는 게 김 빠진 맥주만큼이나 씁쓸했다.


참 맛있게 잘 먹고 있었는데...




< TRAVEL NOTE >


비엔나커피 (Vienna Coffee)

비엔나커피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메리카노 위에 휘핑크림을 잔뜩 올린 형태의 커피를 말하는데 정작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 사실 비엔나커피의 원래 이름은 아인슈패너(Einspanner). 시초는 마차에서 내리기 힘들었던 옛 마부들이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한 손으로는 설탕과 생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를 마시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엔나커피라는 이름은 마부들이 사는 도시의 명칭(빈의 영어 이름)을 따서 불려지게 되었고, 아인슈패너라는 이름은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라는 의미의 독일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빈에 왔다면 아인슈패너 한잔 하자!


슈테판 대성당 (Domkirche St. Stephan)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당으로 빈 대교구의 대성당이다. 오스트리아의 가장 대표적인 종교 건물인 슈테판 대성당은 오스트리아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마다 산 증인의 역할을 해왔으며, 다양한 색상으로 꾸며진 지붕 타일 덕분에 빈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한컷으로 사진 찍으려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거나 땅에 드러눕게 될 수 있으니 주의 요망!

[가는 법] Stephansplatz 3, 1010 Wien, Austria
  - 지하철 Stephansplatz 역에서 도보 2분

[영업시간]
  - 월-토 06AM - 22PM
  - 일, 공휴일 07AM - 22PM

[전화/문의] +43 1 51552 3530 / dompfarre-st.stephan@edw.or.at


미하엘 광장 (Michaelerplatz)

호프부르크 왕궁 정문 앞에 위치한 광장으로, 케른트너 거리, 슈테판 광장 등의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주요 광장이다. 광장 치고는 그리 넓지 않은 편인데 관광마차 정류장이다 보니 언제나 사람들과 마차로 북적댄다.

[가는 법] Michaelerplatz 4, 1010 Wien, Austria
  - 지하철 Stephansplatz 역에서 도보 6분


나슈마르크트 (Naschmarkt)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빈의 재래시장으로 길을 따라 1.5km가량 가판대와 상점들이 이어져 있다. 19세기 초, 주로 청과물을 판매하는 시장으로 출발해 그 규모를 키워왔다. 나슈마르크트라는 이름은 ‘군것질 시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군것질’은 달콤한 음식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과거보다 더욱 다양한 식자재와 주전부리를 접할 수 있는 시장으로 확장했고 빈 시민들의 부엌과도 같은 곳이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고기, 소시지, 치즈, 빵, 육포, 말린 과일, 향신료, 절임 식품 등을 진열한 가판대를 많이 볼 수 있고 샌드위치, 햄버거, 아이스크림 등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파는 가판대도 많다.
나슈마르크트에서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음식도 맛보며, 로컬 체험 제대로 해보자!

[가는 법] 1060 Wien Austria
  - 지하철 Karlsplatz 역에서 도보 8분

[영업시간]
  - 월-금 06AM - 21PM
  - 토 06AM - 18PM
  - 일요일 휴무

[전화] +43 1 40000 5430


참고 : 구글 지도, 위키백과, 트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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