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엄마와 다 큰 두 아들의 추석 특선 가족여행 - Episode Ⅱ
가족여행이다 보니 신경 쓸 것들이 많았다. 혼자 여행이거나 친구들과의 여행일 때야 길을 잘못 들어서면 몇 걸음 더 걸으면 되고 기대했던 곳이 별로더라도 좋은 경험한 셈 치면 그만이지만 엄마에게는 체력적으로 힘들 걸 알기에 가급적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 했다. 최소한의 동선과 엄마가 즐길 수 있는 일정에 초점을 두고 여행을 준비했다. 그중 약간 불안한 일정이 하나 있었는데 ‘칼립소 쇼(Calypso Show)’ 관람이었다. 트랜스젠더쇼이기 때문이다. 동생이야 요즘 애들이니 애초에 신경 밖이지만 내가 아는 엄마는 동년배 아줌마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옛날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되지는 않을는지, 과연 엄마가 재미있게 볼 수 있을는지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었다. 그러면서도 굳이 이 일정을 잡은 이유는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던 공연 후기들 때문. 나처럼 부모님과 함께 한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다들 만족스러웠단다. 해서 나도 일단 걱정은 덮어두고 관람해보기로 했다.
아시아티크에서 저녁을 먹고 입장시간에 맞춰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은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아담했다. 객석과 무대의 거리도 생각보다 가까웠다. 아직 공연 시작 전이라 무대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고 사람들은 각자 자리를 찾아가느라 분주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직원이 음료 주문을 받았다. 입장료에 Free 드링크 한 잔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맥주, 엄마와 동생은 각각 환타와 콜라를 주문하고 공연을 기다렸다.
마침내 공연장을 밝히고 있던 붉은 조명이 꺼지고 무대 위 커튼이 열렸다. 공연 시작! 시작부터 요란한 음악과 함께 엄마식 표현으로 야시시~한 옷차림의 트랜스젠더들이 농염한 춤사위를 펼쳤다. 난 엄마의 눈치를 먼저 살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음... 그냥 아무 생각이 없으신 것 같았다. ‘쟤네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는 것 같은 표정이랄까? 딱히 재미있어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걱정했던 거부감은 없으신 듯 보였다. 그제야 나도 긴장을 조금 풀고 공연을 즐겼다.
“하하하하~”
엄마 걱정은 접어둔 채 한창 공연에 푹 빠져있는데 갑자기 익숙한 듯하면서도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 같았던 엄마가 박장대소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엄마, 재밌으셔?"
"아이고ㅋㅋㅋ 뭐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다들 웃으니까 그냥 웃음이 나오네~ㅋㅋㅋ“
평소 예능을 보면서도 웬만하면 잘 웃지 않는 엄마인데 트렌스젠더쇼를 보면서 웃다니!!! 물론 쇼가 재밌어서 웃는 건 아니었지만 웃음만큼은 찐웃음인 것 같이 왠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문득 엄마의 웃음을 마지막으로 봤던 때가 언제였나 싶었다. 며칠 전? 몇 달 전?, 아니 몇 년 전?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만큼 오랜 전부터 엄마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던 걸까? 아니, 그보다는 어쩌면 엄마의 얼굴을 한 번도 유심히 본 적이 없는 내가 모르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에야 엄마의 얼굴을 관찰하듯 유심히 봤다. 어느덧 주름은 깊어졌고 옅은 화장으로는 숨길 수 없는 다양한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있었다. 내가 열두 살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아빠께서 돌아가시고부터 쭉 나와 동생만을 바라보며 살아오신 엄마였다. 홀로 철없는 두 아들을 감당하는 게 얼마나 벅차고 힘에 겨우셨을까? 그 고생의 증거가 엄마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것 같았다. 눈앞에서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트랜스젠더 무용수들이 끼를 부리고 있고,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손뼉 치며 웃고 있었지만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는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먹먹한 마음에 계속 엄마의 얼굴만 쳐다봤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엄마가 고개를 돌렸다.
“왜?”
“아니 나도 재밌어서.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