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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국수는 이제 그만!

하노이 새댁 투어 - Episode Ⅰ

by 트래볼러

"어유~ 오느라 고생했어! 배고프지?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갑시다!"

"첫 끼는 역시 쌀국수인가?"

"에이~ 이 오빠 뭘 모르시네~ 요즘은 쌀국수보다 ‘요게’ 대세에요."

"(끙...)"


베트남! 하면 쌀국수!라는 '수학의 정석' 같은 공식을 호기롭게 내뱉었다 하노이 새댁에게 제대로 한방 먹었다. 현지 거주자가 말하는 ‘요거’ 란 대체 뭘까? 혹시 고수 같은 강한 향신료가 팍팍 들어간 음식은 아닐는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따라갔다.

베트남은 처음이었지만 베트남 음식은 처음이 아니었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들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베트남 음식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히 여행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해보면 이런 세계 음식의 대중화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반드시 현지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하나씩 없어진다면 여행 갔을 때의 먹는 즐거움과 설렘이 줄어드는 셈이니까.

벌떼 같은 오토바이 부대를 뚫으며 골목골목을 누빈 끝에 택시가 멈춘 곳은 호안끼엠 근처 어느 삼거리. 택시를 내리니 습한 공기와 함께 거리의 번잡함이 피부에 와 닿았다. 이것이 하노이의 향기? 썩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으나 제대로 느껴보려 깊게 숨을 들이쉬는데 그 향기를 덮어버리는 맛있는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사람의 탈을 쓴 개코를 가진 난 단번에 찐한 육수의 향과 고기 굽는 냄새임을 직감했다. 코끝을 나침반 삼아 코가 이끄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작은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요! “


아니다 다를까 그곳이 하노이에서의 첫 끼를 책임져 줄 식당이었다. '분짜 흐엉 리엔(Bún Chả Hương Liên)'이라는 국수 전문점. 겉보기에는 굉장히 평범해 보이는 동네 식당 같은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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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전문점 분짜 흐엉리엔(Bun Cha Huong Lien)


"와~사람 많네! 여긴 뭐 맛집이야?"

"분짜 맛집이에요. 요즘엔 쌀국수보다 분짜 더 많이 먹어요."


분짜? 우리나라 베트남 식당에도 있었던가? 난 처음 듣는 음식이었다. 분짜가 대체 뭘까 궁금한 마음에 옆 테이블을 힐끔 훔쳐봤다. 테이블 위에 고깃국, 국수 면발, 갖가지 채소와 양념, 그리고 튀김만두처럼 생긴 녀석들이 보였다. 국수는 보나 마나 쌀국수일 테고 그럼 저 튀김만두 같은 녀석이 분짜이리라!(거의 97.8% 확신했다.) 뭐 별거 없지 싶었다. 튀김만두야 분식집에서 떡볶이랑 항상 먹는 거였으니 말이다. 그 사이 우리가 주문한 분짜가 나왔다.


"(튀김만두 같은 녀석을 집어 들며) 요게 분짜 맞지?ㅎㅎ“

"ㅋㅋ걘 넴 하이 산이라는 거고 국수랑 야채랑 국물에 넣어서 먹는 게 분짜예요."

"오빠, 여기 메뉴판에 다 나와있는데...^^;;ㅋㅋ"


2.2%의 확률로 틀리게 될 줄이야;;; 테이블 옆 벽에 붙은 메뉴판에 아주 친절하게도, 영어로도 또박또박 아주 잘 나와 있었다. 그리고 신기한 메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오바마 콤보!


"설마 이 오바마가 그 오바마?"

"맞아요! 그 오바마. 예전에 베트남 방문 때 와서 유명해진 곳이에요. 그래서 보통 ‘오바마 분짜‘라고 해요."

"오빠, 벽에 오바마 사진 안 보여?ㅋㅋ“


벽 한쪽에 걸린 액자 안에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국숫집 사장님과 함께 선홍빛 잇몸 만개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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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것이 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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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오바마 분짜


간혹 셀럽발로 유명해진 식당의 경우 실상 맛은 그저 그런 곳이 종종 있다.(우리나라에서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하지만 이곳의 분짜는 결코! 오바마발이 아니었다. 진한 고기육수는 약간 짭짤했지만 면과 야채를 넣어 먹을 걸 생각하면 딱 적당했다. 숯불로 구운 고기에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불맛이 입혀져 있었고, 달달하니 질기지도 않으면서 부드러웠다. 이렇게 내 입맛에 찰떡인 베트남 음식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이제 쌀국수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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