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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의 하롱베이

하노이 새댁 투어 - Episode Ⅵ

by 트래볼러

이른 아침부터 숙소를 나설 채비를 했다. 하노이 여행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주말을 맞은 하노이 새댁 부부와 함께 하노이 근교 투어를 하기로 했다. 주말에 쉬고 싶을 법도 한데 기꺼이 우리를 위해 로드 매니저와 투어 가이드를 자청했다. 보통 근교로 떠나는 여행이라 하면 오랜 시간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현지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기에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하노이 새댁 부부 덕분에 우린 몸만 가면 되는 아주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게 됐다.

약속 장소에서 하노이 새댁 부부를 기다렸다. 길모퉁이였는데 지나가는 차마다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 예사스럽지 않은 우리의 패션 센스 때문이리라. 진한 파랑 바탕에 불규칙적인 패턴으로 화려하게 수놓인 꽃과 파인애플. 전날 밤 동 쑤언 야시장에서 구입한 과일옷을 입고 나왔다. 이번 여행 콘셉트로 하노이 새댁 부부와 함께 커플로 입고 다니기로 한 것이다.


빵! 빵!


경적소리와 함께 차 한 대가 길모퉁이에 섰다. 창문이 내려가기도 전에 하노이 새댁 부부임을 눈치챘다. 옅게 선팅 된 차창 뒤로 어둡지만 선명하게 수박과 파인애플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일남녀 두 커플의 하노이 근교 투어가 시작됐다.


하노이 근교 투어라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하롱베이였다. 한때 베트남 여행 열풍이 불면서 각종 TV 여행 예능을 통째로 잠식했었던 곳. 베트남 여행기를 찾아보면 수도인 하노이보다 하롱베이가 훨씬 많을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가는 곳은 그 흔한 하롱베이가 아닌 흔하지 않은 하롱베이였다. 베트남 북쪽, 하노이에서는 남쪽에 있는 닌빈주(Ninh Bình)에 위치한 짱안(Tràng An). 공식 명칭은 ‘짱안생태관광구역(Tràng An Scenic Landscape Complex)’. 고대 베트남 유적과 함께 석회암 산들이 병풍처럼 놓여있어 육지의 하롱베이로 불리는 곳이었다.


“요즘엔 여길 더 많이 가나 보지?”

“요즘 하롱베이 가면 죄다 한국 사람밖에 없어요. 짱안도 물론 관광객들이 많기는 한데, 그래도 로컬들이 많이 찾는 곳이에요. ”


그녀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사실 난 하롱베이가 아니어서 내심 아쉬웠었는데 이유를 듣고 나니 얼른 짱안이 보고 싶어 졌다.

하노이를 출발한 지 2시간쯤 되었을 때 짱안에 도착했다. 짱안에서 해야 할 것은 딱 정해져 있었다. 보트투어. 보트를 타고 홍강 삼각주를 둥둥 떠다니며 짱안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일이었다. 우린 중간 길이의 코스로 선택했다. 앞으로 2시간가량은 화장실에 못 갈 테니 피치 못 할 불상사를 막기 위해 미리 화장실을 다녀온 후 배에 탑승했다. 그리고 출발!


보트 타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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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중인 뱃사공들과 관광객들


“와C~ 엄청 크다!!!”


짱안의 첫 느낌은 거대한 장벽이 앞을 딱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그런 벽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앞뒤, 양옆으로 겹겹이 쌓여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국적인 풍경을 넘어서서 여기가 지구가 맞나 싶을 만큼 보면서도 계속 의심이 되는 풍경이었다. 그런 산들로 둘러싸인 강에서 배를 타고 천천히 거닐고 있으니 말로만 들어왔던 신선놀음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대자연의 풍경에 압도되어 일시 정지된 듯 보고 있다가 지나가는 배에서 들려오는 카메라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나도 카메라를 켰다. 앉아서는 내가 원하는 모습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지 않아 비스듬히 뒤로 더 젖혔다. 그래도 안 들어왔다. 눈보다 좋은 렌즈는 없다는 말을 새삼 몸소 체험했다.


웅장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대자연, 실제로 마주했을 때 느낀 감동까지는 담지 못했다;;;
산속의 사원
보트 투어 중인 외국인 관광객들


석회암 산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석회동굴이다. 보트투어는 코스 길이에 따라 지나가는 동굴 개수가 다른데 우리가 선택한 중간 코스는 총 4개의 동굴을 지나갔다. 동굴은 종종 정말 비좁은 구간이 나왔다. 특히 세로, 천장의 높이가 낮았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다가는 이마빡을 거친 동굴의 석회암 덩어리에 부딪힐 판이었다. 머리를 안 다치려면 폴더처럼 허리를 접어 상체와 머리를 보트에 바짝 밀착시켜야 했다. 그 상태로 긴 어둠의 시간을 버텨내고 밝은 빛을 통과하는 순간 다들 곡소리를 냈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던 동굴
동굴 탈출!
다시 동굴 속으로....
이제 돌아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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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허리야.”


얼굴에 지친 기색들이 역력했다. 4개의 동굴을 다 통과하고 나니 어느덧 배를 탄 지 2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선착장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뜻. 배를 타는 것은 힘들지만 막상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역시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었다. 힘들어할 때는 언제고. 그 와중에 짱안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몇 시간을 봐도 질리지 않는 것. 그게 자연인 것 같다.


선착장으로 컴백!^^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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