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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새해맞이

내 생애 첫 유럽 - Episode Ⅶ

by 트래볼러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오늘만큼은 스웨덴도 일찍 잠들지 않는단다. 해넘이 카운트다운을 해야 하니까. 호텔 직원의 첩보에 따르면 오늘 밤 예타광장(Götaplatsen)에서 해넘이 행사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해외에서 해를 넘기기는 처음이었다. 과연 스웨덴의 해넘이는 어떨지 설레고 흥분되는 가운데, 들뜬 마음을 부여잡고 예타광장으로 향했다.

예타광장은 1923년 예테보리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예테보리를 대표하는 중앙광장이자 랜드마크다. 중앙에 분수대가 있고 주변으로는 예테보리 미술관, 시립 극장, 콘서트홀, 공립 도서관 등이 있어 예테보리 문화, 예술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광장 중앙의 분수대에는 매끈하면서도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포세이돈상이 있다. 예타광장의 상징이다. 바다의 수호신답게 한 손에는 커다란 물고기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조개를 떠받치고 있다. 마치 자신이 이 바다의 주인이라는 듯 그 모습이 위풍당당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선을 강탈하는 건 따로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남자의 소중한 ‘그것’.(므흣)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있는 탓에 아주 적나라하게 보였다. 하물며 디테일도 살아있다.(므흣) 그 모습 또한 위풍당당! 하다고 하기 에는 근데 ‘그것’ 참... 신이라고해서 뭐 아주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는...^^;;

예타광장(Götaplatsen)의 포세이돈상, 내 눈은 어디를 보고 있는가? 흠...(확대금지!)

포세이돈상을 중심으로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무대와 조명이 설치되고 있었다. 자정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지는 않았다. 명당 선점을 위해 죽치고 기다릴까 했지만 가만히 있기에는 추운 날씨였다. 몸도 녹이고 시간도 때울 겸 예테보리의 밤거리를 즐기다 와야겠다 싶었다. 밤 10시가 넘어서도 이토록 활기찬 예테보리는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볼 수 없으니 말이다.

파파는 아니지만 라떼파파처럼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예테보리 최고 번화가로 손꼽히는 아베닌 거리(Kungsportsavenyen)를 찾았다. 스웨덴은 물론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하와이, 미국, 태국, 인도 등 다양한 나라의 퓨전 레스토랑들이 즐비했다. 한마디로 맛집 옆에 맛집. 패스트푸드와 카페, 그리고 밤 문화 하면 빠질 수 없는 바와 클럽들도 여기에 다 모여 있었다. 그야말로 청춘들의 성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 클럽 앞은 어림잡아 50미터 정도는 웨이팅이 이어져있었다. 스웨덴의 클럽은 어떨지(솔직하게는 스웨덴 여자들은 어떨지) 궁금함에 나도 슥~ 대열에 합류했다. 줄을 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뒤로 금발의 스웨덴 여자 2명이 따라붙었다. 올블랙의 가죽 코디와 개성 강한 메이크업에서 ‘나 오늘 제대로 불태울 거야!’ 하는 의지와 열정이 느껴졌다. 난 순간 압도당했다. 올블랙 가죽 때문도 아니요 강한 메이크업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들의 웅장한 자태 때문. 스웨덴 사람들은 바이킹의 후예들로서 대체적으로 골격이 컸다. 서양인들 중에서도 말이다. 여자라고 다르지 않았다. 난 원래도 마른 편이기는 했지만 그녀들 앞에 있으니 유독 더 멸치가 됐다. 들어가기도 전에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래서 어디 말 한마디 붙일 수 있으려나.;;; 그때 마침, 예타광장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해넘이 행사 명당 쟁탈을 위한 싸움이. 해넘이 보다야 당연히 여자가 더 좋은 피 끓는 청춘이지만, 오늘은 해넘이를 하러 나왔으니 클럽은 다음에 자신감을 회복한 후 다시 와보기로 하고 다시 예타광장으로 향했다.

쉽게 보기 힘든 예테보리의 활발한 밤거리
한창 무대 설치 중이었던 예타광장, 이때까지만 해도 한산했다

진즉에 더 일찍 왔어야 했나 보다. 명당은 이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놈의 스웨덴 클럽이(여자가) 뭐라고. 자업자득이다. 하는 수없이 그나마 잘 보이는 곳에 아쉬운 대로 둥지를 틀었다. 행사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예테보리 미술관의 외벽을 스크린 삼아 대형 초시계가 띄워져 있었다. 무대에서는 MC와 게스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중간중간 공연이 펼쳐졌다. 분명 스웨덴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들일 텐데 난 누군지도, 뭐라고 하는 지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스크린으로 보이는 초시계만 바라보며 카운트다운 하는 시간이 오기만을 바랐다.

12월 31일, 23시 55분. 드디어 새해가 5분 앞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예타광장은 물론 그 주변, 아니 온 예테보리 거리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앞만 보고 기다리느라 몰랐는데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아베닌 거리까지 사람들로 빼곡했다. 많은 인파들 사이 와인을 병째로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래 봬도 길거리에서 맥주 병나발 꽤나 불어본, 나름 스트리트 드링커인데 와인을 병째 들고 마시는 건 처음 봤다. 와인에 걸맞은 우아함도 놓치지 않았다. 한 손에는 와인잔도 들고 있었다. 광장에서 즐기는 스탠딩 와인이라... 크으~ 이것이 북유럽 갬성인가? 스트리트 소믈리에들에게 한눈 팔린 사이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숫자 떼창이 시작됐다.


7-6-5-4-3-2-1!

"!@!##!#!@~~~~~~"


스웨덴어는 모르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이건 분명 Happy New Year! 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펑! 펑! 퍼버벙!

도시의 조명이 그대로 하늘 위로 올라간 듯 불꽃들이 반짝반짝 하늘을 밝혔다. 쉴 새 없이 터지는 불꽃들 사이로, 누군가의 소망과 염원이 담겼을 홍등은 은근한 빛을 발하며 유유히 하늘을 가로질렀다. 어떤 사람은 만세를 하듯 양팔 벌려 소리를 지르고, 어떤 사람들은 서로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좀 전에 본 스트리트 소믈리에들은 온갖 폭죽 소리와 화약 냄새가 번지는 이 전쟁터 같은 상황에서도 우아하게 건배를 했다.

우리나라의 새해맞이가 33번 울리는 보신각종소리를 들으며 지난해를 되돌아보는 경건하고 차분한 분위기라면, 스웨덴의 새해맞이는 지난해고 새해고 뭐고 그냥 이 순간을 즐기자는 축제 같았다.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탕. 그리고 나는 역시 축제가 체질. 나이는 한국 가서 먹는 걸로 하고 나도 이 분위기 바로 올라탔다. 비록 와인도 맥주도, 어깨동무할 친구도 없었지만 나에겐 가느다랗고 길쭉한 두 팔이 있었으니. 양팔 벌려 소리 벗고, 팬티 질렀다.


“해피 뉴 이어어어~~~!”


새해맞이 5분전, 그리고 마침내 새해가 됐다! GOD JUL!!!(번역기 돌려보면 메리 크리스마스인데, 왜 새해에 메리 크리스마스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화려한 불꽃쇼 사이사이 유유히 흘러가는 홍등
불꽃쇼 라이브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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