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Intro)
2015년 겨울, 자발적 백수가 됐다. 퇴사 후 세계여행이라는 퇴사생들의 필수 코스는 밟지 않았다. 세계여행이 가고 싶어 퇴사를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는 확고한 목적이 있는 (하지만 아무런 계획도 대책도 없는) 자발적 퇴사였다. 물론 누군가는 여행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했고 나 역시도 그 말에 두 손 치켜들어 동의했지만 개인 사정 상 세계여행을 떠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역시 너무나 아까웠다. 다들 아시다시피 퇴사생은 그냥 백수가 아니라 돈 많은 백수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통장이 든든한 적이 없었다. 시간은 또 어떻고?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2시간 같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행을 떠나지 않는 건 내 인생에 또 하나의 후회를 남기게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애써 꾹꾹 눌러두었던 방랑욕이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백수의 아침은 대부분 TV로 시작됐다. 엄마가 아침을 준비하시며 틀어둔 아침 정보 프로그램 엔딩 소리에 잠에서 깨, 아침을 먹으며 아침 막장 드라마를 봤다. 막장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이제 지난 막장 드라마와 주말 예능의 재방송 지옥이 시작된다. 이미 웬만한 프로는 본방 사수를 끝냈기에 리모컨을 쥐고 클릭! 클릭! 클릭! 배터리가 닳도록 채널을 돌리며 누워서 TV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러다 평소 보지 않던 홈쇼핑 채널에 잠시 머물렀다. 여행상품이었다. 이탈리아 전국일주, 플러스 모나코에 프랑스 니스까지. 패키지여행은 내 돈 주고는 절대 안 간다 마음먹었던 나지만 순간 나도 모르게 전화를 걸고 말았다. 그리고 곧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띵!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충동적 패키지여행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