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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도시, 폼페이

이탈리아 전국일주 - Episode Ⅱ

by 트래볼러

나폴리를 무정차로 통과한 버스가 마침내 멈췄다. 폼페이에 도착한 것이다. 입구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 같은 패키지 관광객들도 있고, 개인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인 가이드 투어 그룹도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우리도 폼페이로 입성! 감격스럽고 뿌듯했다. 내가 폼페이를 처음 알게 된 게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Pompeii, 2014년)’을 통해서였는데, 처음 영화를 보고는 로마의 도시였던 폼페이를 배경으로 만들어낸 단순 로맨틱 재난 영화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실화에 픽션을 더 했다는 걸 알게 된 후 폼페이에 급관심이 생겼고, 이때부터 폼페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만큼 오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가이드님의 말 한마디는 물론 숨소리까지도 놓치기 싫어 뒤꽁무니를 바싹 따라붙었다.

폼페이 입구 포르타 마리나(Porta Marina)

포르타 마리나(Porta Marina)를 지나 포룸(Foro di Pompei)에서부터 본격적인 폼페이 투어가 시작됐다. 포룸은 처음에는 시장이었다가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면서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을 교류하는 소통의 장이 되어 단순한 시장 이상의 기능을 했던 공공 복합 장소다. 토론회를 의미하는 지금의 ‘포럼’이라는 단어가 바로 여기서 유래됐다. 포룸 한가운데에서 폐허가 된 유피테르 신전(Tempio di Giove - Scavi) 쪽을 바라보면 신전 뒤로 구름 모자를 쓴 큰 산이 하나 보인다. 바로 지금의 폼페이를 있게 만든 베수비오산(Monte Vesuvio)이다. 실제로 보니 영화를 통해 봤을 때의 느낌보다 훨씬 멀리 있었다. 저 멀리서 엄청난 양의 화산재들과 분출물들이 밀려와 도시를 덮쳤다고 하는데 보고 있으면서도 사실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포룸(Foro di Pompei)

유피테르 신전 주변으로 도자기 창고로 보이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화산재에 뒤덮여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실제 시신은 아니었다. 화산재로 뒤덮인 사람이 죽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육체가 썩게 없어지게 되면서 그 내부는 육체의 형상대로 빈 공간이 생기게 되었는데, 폼페이 유적 발굴을 하면서 그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굳어진 후 화산재를 털어내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해낸 것이었다. ‘아마 사람들이 이런 모습으로 죽었을 거야.’ 하고 상상해서 만든 것이 아닌 실제 상황 그대로라 하니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화산 폭발이지만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고 오금이 다 저렸다.

유피테르 신전(Tempio di Giove - Scavi)
화산재로 뒤덮였을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

폼페이는 로마 상류층의 휴양지이기도 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공중목욕탕이다. 남탕과 여탕이 따로 구분되어 있고 탈의실, 물품 보관함, 냉탕, 온탕, 미온탕 등으로 구성되어 지금의 목욕탕과 비교해서 크게 다른 건 없었다. 탕은 대리석, 천장은 콘크리트로 만들어 상대적으로 화산재의 영향을 덜 받아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았다. 바닥의 타일부터 천장의 무늬와 홈까지 선명했다. 천장에 파진 무늬와 홈에서 로마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는데, 습기로 인해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바로 떨어지지 않고 패인 무늬나 홈을 따라 벽을 타고 흘러내리게 한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잔머리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포룸 공중목욕탕(Forum Baths)
포룸 공중 목욕탕(Forum Baths)

폼페이의 최후를 두고 타락한 도시에 내리는 신의 벌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폼페이 최대 번화가였던 아본단차 거리(Via dell'Abbondanza)를 걷다 보면 길바닥에 종종 재미있는 표식이 보였다. 순진한 사람(혹은 순진한 척하는 사람)들은 이걸 보고 화살표라 했고 나처럼 음흉한 사람들은... 흐흐흐,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단번에 알아차렸다. 일종의 음란마귀 테스트. 이걸 보고 내가 음란마귀가 쓰였는지 아닌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앞서 말했다시피 난 후자다.^^*) 몇몇 사람들을 부끄럽고 곤란하게 만드는 이것은 최대한 귀엽게 말하면 고추, 한자어로는 남근이었다.(^^;;)

길바닥 남근 표식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었다. 첫째는 사창가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 역할, 둘째는 로마에서 남근은 부와 행운의 상징이라 번화가인 아본단차 거리에 부와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놓았을 거라는 해석이다. 대개 학자들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단다.

남근 표식 덕분에 내내 진지했던 폼페이 투어에 처음으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투어가 다 끝나가는 마당에야 한층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가이드님도 내심 입이 근질근질했었는지 본래 이렇게 진지한 캐릭터가 아니라며 남근에 관한 19금, 아니 한 49금(?)쯤 되는 농담을 치시며 투어를 마무리하셨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실망도 크다는 법칙 따위는 통하지 않는 폼페이 투어였다. 대만족이었다. 아! 한 가지 불만족이라면 나의 똥 손. 설명을 듣느라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짧은 시간 후다닥 찍다 보니 몇 장 되지도 않지만 제대로 찍은 게 거의 없었다. 언젠가 자유여행으로 나폴리를 다시 찾게 되는 날, 아무래도 폼페이도 한 번 더 오게 될 것 같다. 아니, 그럴 계획이다.

(※주의※ 19금 관람불가!) 길바닥 남근 표식
멍! 멍! 개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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