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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스노클링

도시 여행자의 대자연 휴양 여행 - Episode Ⅲ

by 트래볼러

내 나이 서른에 처음 수영을 배웠다. 삼십 년 동안 쌓아 둔 물놀이와의 벽이 그제야 허물어졌다. 해수욕장에 가면 수영복보다 먼저 챙기는 것이 튜브였던 어른이가 이제는 스타일리시한 래시가드와 자외선을 막아줄(그보다는 폼으로) 선글라스를 먼저 챙기는 어른이 되었다. 뒤늦게 물맛을 본 난 매년 여름이면 물맛도 모르고 보낸 서른 번의 여름에 대한 억울함을 풀기 위해 바다, 수영장이나 워터파크 등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물놀이를 즐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스노클링(Snorkeling)이다. 우리나라에도 유명 스폿들이 많아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때마다 내년을 기약하곤 했는데 운 좋게도 이번 필리핀 원정대에서 그 한을 풀 수 있게 됐다. 엘 니도 호핑투어를 통해서 말이다.


호핑투어(Hopping Tour)는 호핑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hopping: 한 발로 깡충깡충 뛰다) 필리핀 전통 보트인 방카를 타고 깡충깡충 뛰듯 이 섬, 저 섬을 이동해가며 각 섬을 둘러보며 액티비티를 즐기는 투어다. 첫 번째로 방문한 섬인 미니락 아일랜드(Miniloc Island) 초입에 다다랐을 때,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드디어 스노클링을 하러 왔다는 생각에 들뜬 나머지 배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호핑투어 가이드이자 방카의 대장인 제이크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씨익~ 웃는 그의 표정이 '이봐, 그 기분 잘 알겠는데 조금만 참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배가 완전히 정박한 후 제이크가 스노클링 장비를 준비하러 간 사이 우리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던 선착장 끝으로 향했다. 뭔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있나 싶어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는데 사람들은 각자의 손에 네모 깍두기 같은 고깃덩이를 쥐고 있었다. 싱싱하고 두툼한 날생선의 살코기였다. 저걸 회처럼 그냥 먹는 건가 했는데 한 사람이 살코기를 바다로 휙~ 던졌다. 그러자 물밑 정체 모를 검은 형체들이 순식간에 살코기를 낚아챘다.


"Oh! WoW! "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 검은 형체는 일명 잭 피시(Jack Fish)라 불리는 전갱이(Trevally)과 물고기였다. 이 친구들은 보통 미니락 아일랜드 앞바다에 서식하고 있는데 오랜 경험을 통해 같은 시간에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미닐락 아일랜드에서의 스노클링이 특별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잭 피시와 함께 하는 스노클링. 한 덩치 하는 녀석들답게 딱히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잭 피시들과 한데 어우러져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었다. 마침 제이크가 양손 가득 스노클링 장비 꾸러미를 가지고 왔다.


"스노클링 해보신 분은 바로 착용하시고, 처음인 분은 잠깐 대기하세요."


처음인 난 먼저 장비 착용법과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질문 있으신가요?"

"아니요, 없습니다.^^"

"오케이! 렛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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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락 아일랜드 선착장 잭 피시 피딩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잭 피시들의 밥인 오통통한 살코기
잭 피시 피딩(Feeding), 냄새 맡고 낚아채는 잭 피시

드디어 스노클링 시작! 입수 전 단체 인증숏 한 장 남기고 한 명씩 차례로 물에 들어갔다. 먼저 오리발을 낀 발을 담갔다. 뜨거운 필리핀 날씨 때문인지 생각보다 물이 차게 느껴지지 않았다. 과감히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풍덩!


"으아악!"


바다에 입수하자마자 날 반겨준 건 신비한 바닷속 세상이 아닌 혀 전체로 퍼지는 바다의 짠맛이었다. 입에 뭔가를 물고 숨을 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호흡 밸브로 바닷물이 들어온 것이다. 순간 입으로 밸브를 꽉! 물고 있어야 한다던 제이크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재빨리 고개를 물 밖으로 내밀어 잠시 숨을 고르고 기침으로 입안의 짠내를 털어냈다.


“켁! 켁! 아으 짜;;;”


대충 정비를 마치고 다시 입수. 이번엔 입단속을 제대로 했다. 바닷속 세상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바닷속은 생각보다 분주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물고기들과 바닷물에 흐름에 따라 하늘하늘 흔들리는 산호들까지 어느 것 하나 정적인 것이 없었다. 울퉁불퉁한 땅에 크고 작은 바위들, 산호와 물고기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물밑 세상은 SF 영화에서 봤던 지구 밖 다른 행성이었다. 울퉁불퉁 땅은 육지, 바위는 산, 산호는 나무, 공기 대신 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이 행성 생명체들은 걸어 다니지 않고 공중을 헤엄쳐 다닌다는 것. 이토록 신비한 광경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내가 마치 '바닷속'이라는 세상의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래 밑, 바위틈이나 산호 더미 안에 숨어있는 물고기들까지, 누가 뭘 하는지 다 보였다. 만약 우리 인간 세상에도 신이 있다면 아마 지금 이런 시선으로 우리를 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바닷속 신인 척하며 천천히 유영하고 있는데 전방에 검은 형체가 나타났다. 잭 피시 그놈이었다. 드디어 녀석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겠구나 싶어 녀석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그때, 녀석이 갑자기 속력을 올려 내게 돌진했다.


'뭐야!? 왜 저러지 갑자기!??'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이 축지법으로 땅! 땅! 땅! 몇 걸음만에 다가오는 장면처럼 못생기고 커다란 시커먼 물체가 순식간에 내 눈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무섭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꼭 나를 들이 받을 것만 같아 녀석을 피해 아래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러자 입속에 다시 짠내가 들어왔다. 너무 깊이 들어간 나머지 호흡 튜브마저 잠겨버린 것. 닥치고 돌진한 잭 피시에 호흡곤란까지 겹치니 순간 멘탈은 아수라장이 됐다. 멘탈 회복을 위해 필요한 건 잠시 물 위로 올라가는 것뿐. 수직 상승을 위해 힘찬 발차기를 하려는데 발 바로 아래로 산호가 보였다.


"산호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해요. 날카로워서 다칠 수 있어요."


순간 제이크가 일러준 주의사항이 생각나 힘찬 도약을 위해 개구리처럼 한껏 움츠렸던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결국 뽀글뽀글 짠물 몇 모금 들이켜며 아등바등 개헤엄치 듯 올라왔다.


"컥! 컥! 후아~"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보니 주변에서 사람들이 잭 피시 피딩(먹이주기)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던진 살코기가 내 근처로 떨어진 것 같았다. 누가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어 일단 마스크를 벗고 피딩 중인 불특정 다수에게 눈으로 레이저를 쏘아댔다.


‘아, 거참 스노클링 하고 있는 사람 쪽으로는 던지지 맙시다!’


하지만 아무도 나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는....ㅡㅡ^ 결국 나 혼자 씩씩거리며 분을 삯이고 다시 스노클링을 계속했다.


미니락 아일랜드에서의 스노클링이 끝난 후 엔타룰라 아일랜드(Entalula Island)와 시미주 아일랜드(Shimizu Island)로 각각 2번의 호핑을 했다. 그래서 총 3섬 3스노클링. 호핑투어에서는 무조건 1섬 1스노클링이다.

문득 우리나라의 바다 속도 궁금해졌다. 나라마다 육지 세상이 다 다르듯 과연 바다 속도 나라마다의 특색이 있을지, 다가오는 여름에는 꼭! 우리나라의 바닷속도 구경해보련다.

내 생애 첫 스노클링 (with. 잭 피시)
저렇게 중간에 날아오는 먹이 때문에 놀랐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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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클링 후 해변에서 망고 주스 한잔, 크~~~으
맥주도 빠질 수 없지요.^^* 산미구엘은 이제 그만! 엘 니도에서는 빨간말 맥주 레드 호올스~ 6.9%라는 맥주 치고는 높은 도수의 라거. 그래서 '앉은뱅이 맥주'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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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스노클링 스폿, 엔타룰라 아일랜드의 시간이 멈춘 듯한 해변과 비치클럽
시미주 아일랜드 가는 중, 이날 구름이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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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물색이 미쳤었던 세 번째 스노클링 스폿, 시미주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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