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고치기보다 잘 버리기는 게 관건
출간 미팅을 할 때 '탈고'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하지만 나름 글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의미인지는 굳이 사전을 찾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원고 작업을 마치고 최종 원고를 내보내는 것. 탈고 기간은 일주일이 주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렇게 정했다. 출판사에서는 원하는 만큼 충분히 시간을 줄 수 있다고 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출간을 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일주일 후 보내드리겠노라 자신 있게 선언했다. 다행히 원고도 이미 다 완성이 되어 있었기에 보내기 전 최종 검토 차원으로 교정, 교열 정도만 하면 되었으니까. 출판사에서 요구한 전체 원고 파일 하나로 합치기(난 꼭지 별로 원고를 하나하나 나누어 썼었다.), 사진 선정 후 본문 배치(어느 부분에 어떤 사진을 넣을지), 오탈자 체크를 바탕으로 작업하면서 부자연스러운 문장이나 내용 전개상 혹은 꼭지 주제에 벗어나는 쓸데없는 글들을 수정했다. 물론 처음 원고를 썼을 때 꼭지마다 그때그때 퇴고를 했었지만 이제 정말로 내 손을 떠나면 끝이니 한 문장, 한 단어, 쉼표, 따옴표 하나까지 꼼꼼히 신경 쓰며 검토했다. 원고 정리를 하면서 다른 작업도 병행했다. 책에 들어갈 사진 선정, 그리고 보정. 인물이 들어간 사진의 경우엔 해당 주인공에게 연락해 초상권 동의를 받았다.(고맙다 친구들! Thank you so much!) 본문에 그냥 친구, 지인 등으로 되어 있던 등장인물들도 출판사 대표님께서 친근하게 실명(혹은 가명이라도) 이름으로 넣는 것을 추천해서 지인들에게 실명 사용 동의도 얻었다.(모두 감사합니다!ㅠㅜ) 원고 정리와 함께 이런저런 작업들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진도가 느렸다. 이래서야 일주일 만에 탈고를 할 수 있을는지;;; 아무래도 일주일로는 부족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림이 없다는 세상의 진리를 거슬러 보려 며칠 날밤을 새며 해봤... 지는 못했고, 그래도 나름 매일매일 퇴근 후 새벽까지 작업을 했지만 마감일 하루를 앞두고 나는 결국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 정말 정말 죄송한데 일주일 정도 시간을 더 주실 수 있으실까요?
출판사 대표님은 이럴걸 이미 예상하고 계셨는지 별일 아니라는 듯 흔쾌히 일주일보다 더 걸려도 좋으니 최상의 원고가 완성되면 보내달라 하셨다. 내 입으로 뱉은 말을 지키지 못해 부끄럽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게 응해준 출판사 대표님이 감사하기도 했다.
탈고 이거 얕잡아 볼게 아니었다. 이미 완성되었다 생각한 원고는 막상 들여다보니 생각나는 대로 막쓴(분명히 그땐 심사숙고, 몇 번씩 고치며 썼음에도) 낙서 같은 초고에 불과했다. 여기저기 고치고 버릴 것 투성이었다. 고치는 건 그나마 편했다. 가장 어려웠던 건 버리기다. 버리자니 아깝고, 버림으로써 비워진 공간은 새로운 글로 채워야 했다. 내용상으로는 필요는 없는 글이었지만 문장 연결상 필요한 글인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문장 연결을 위해 쓰다 보면 결국 또 내용과는 무관한 글이 되어 버렸다.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문장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 통으로 고치게 되어 아예 새로 쓴 글이 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러니 진도를 못 빼지;;; 하... 글쓰기 참 어렵다. 는 걸 탈고 작업을 하며 새삼 또 느꼈다. 비록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고 어째 저째 운 좋게 출간 계약도 했다만 나 스스로도 작가라고 불리기 참 민망하다. 아니, 근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이럴 때가 아니다. 탈고에 집중해야지! 3년 동안 꾸역꾸역 원고를 쓴 것처럼 탈고도 꾸역꾸역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목표는 다시 일주일 안에 마무리하는 것. 내 입으로 뱉은 말 두 번이나 못 지킬 수는 없으니까.
일주일 후, 출판사에 메일을 보낸 후 문득 탈고의 뜻이 궁금해 사전을 검색해봤다.
탈고(脫苦) 1 괴로움에서 벗어남 / 탈고(脫稿) 2 원고 쓰기를 마침
아, 이런 뜻도 있었구나. 심지어 원고가 2번이라니. 2가지 의미의 탈고가 동시에 와닿았다. 원고 쓰기를 마치자마자 괴로움에서 벗어났으니까. 나 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