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팸투어 - Episode Ⅵ
남쪽 끝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남과 남해를 종종 헷갈리곤 했다. 남해 역시 해남처럼 육지의 끝에 있는 군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남해는 해남과 이름도 반전인 것처럼 육지가 아닌 섬이다. 엄밀히 따지면 남해섬 혹은 남해도인 셈. 남해가 섬 같지 않은 이유를 하나 더 들어보자면, 섬이면 모름지기 배나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마땅하지만 남해는 차를 타고 그대로 쭉 갈 수 있기에 바다를 건너기는 해도 바다를 건넜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실제 남해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도 커튼을 치고 잠들어 있다 보니 바다를 건너는 순간을 만끽하지 못했다.) 이게 다 남해대교 때문이다.
남해대교는 남해와 하동 사이 노량해협을 이어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다. 1973년 6월 22일, 남해대교 개통식 당시 故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약 10만여 명의 인파가 참여했을 정도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최저 수심 약 38m에 시속 12~13km의 급류가 흐르는 남해와 하동 사이 노량해협에 육로 연결고리가 생기면서 남해와 육지와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당시 남해사람들의 숙원사업이었다고 한다.) 남해군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육지와의 접근성을 필두로 남해를 전국 제일의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남해대교 개통 2년 후인 1975년, 당시 제과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해태제과가 해태관광주식회사를 만들며 관광사업에 뛰어들어 남해대교 옆에 남해각을 세웠다. 이름만 들으면 동네 중국집 같기도 한 남해각은 간단한 요깃거리나 각종 편의시설이 있었던 휴게소이자 여관이었다. 누가 해태 건물 아니랄까 봐 해태제과 제품들을 판매했는데 국내 최초 콘아이스크림인 '부라보콘'이 출시되고 남해에 부라보콘을 처음 전파한 곳이 바로 남해각이었다. '오늘 저녁에 남해각으로 부라보콘 사 먹으러 가자.'가 다시 남해 사람들의 흔한 저녁 약속이었다고.
이후 남해대교는 학생들의 수학여행지, 신혼부부들에게는 신혼여행지로도 각광을 받으며 꼭 가봐야 할 남해의 명소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물들어올 때 노를 더 저었어야 했는데 (정치, 경제적 여러 가지 상황으로) 그러지 못한 탓에 관광개발계획만을 남겨둔 채 세월이 흘러버렸다. 남해각은 노후화로 유휴공간이 되어 버렸고, 관광자원으로의 가치가 점점 떨어진 남해대교는 결국 '다리'의 사전적 의미에 충실한 바다를 건너는 시설물로서의 역할만을 다하게 되었다.
강산이 또 한 번 변한 최근 남해관광문화재단에서 남해각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남해대교와 남해각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하여 팸투어 마지막 일정으로 남해대교와 남해각을 찾았다. 뭐 다리에 반짝반짝 알전구라도 휘황찬란하게 걸어놨으려나?(도쿄 오다이바의 레인보우 브릿지를 상상했다.) 남해각은 또 어떻게 변했을지 한껏 부풀어 오른 기대를 안고 남해각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홀린 듯 주차장 끝으로 걸어갔다. 지대가 높아 주차장에서도 충분히 남해대교 전체가 한눈에 담겼기 때문. 여기가 남해대교 맛집이구나! 뷰포인트 제대로 찾은 나를 비롯한 여행작가들은 바로 직업정신을 발휘해 카메라를 치켜들었다. 날씨까지 도와주니 대충 눌러도 잡지기사 1면용 남해 커버 사진이 찍혔다.
"자, 일단 남해각으로 들어가시죠~ 저 위에서 찍으면 더 잘 보여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저 위'는 남해각 옥상이었다. 그제야 리뉴얼된 남해각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만 듣고서 중국집이 떠올랐던 게 무색할 만큼 새하얀 외벽에 통유리창으로 디자인된 남해각은 요즘 힙한 서촌의 복합문화공간 중 하나 같았다. 다만「남해각」 간판은 여전히 예전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다. 신구의 조화가 묘하게 잘 어울렸다. 남해각 관광 플랫폼 사업을 통해 다시 태어난 남해각은 과거와는 달리 남해각의 역사와 옛날이야기를 간직한 전시관이자 여행자를 위한 서비스 공간이었다. 외관의 남해각 간판처럼 내부의 오래된 구조물들을 옛 모습 그대로를 살려 리뉴얼했다. 여기에 여관으로 사용되었던 당시 각 호수가 쓰여있는 열쇠들, 남해대교 건설 소식과 남해각 개관을 알렸던 옛 신문광고나 책자 등이 그 시절 향수를 더 짙게 만들었다.
이처럼 눈으로 보이는 향수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향수도 간직하고 있었는데, 바로 남해대교와 남해각에 얽힌 남해 사람들의 추억과 이야기다. 남해각 1층 상설전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두 장의 부부 사진이 있다. 서원숙, 신병원 부부의 커플사진.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만난 부부는 한국에 현수교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해에 놀러 와 사진을 찍었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인 2020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은 것. 무려 45년 만에 찍은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의 커플사진이다. 이 두 장의 사진이 곧 남해대교의 과거와 현재를 말해주는 듯했다. 요즘 이런 걸 보고 아카이브*라고 하던가? 남해대교는 단순히 남해와 하동을 이어주는 길 그 이상으로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추억을 이어주고 있었다. 나 역시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남해대교를 다시 찾아와 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강산이 또 한 번 변하고 난 뒤의 남해대교와 남해각은 또 어떤 모습일지, 물론 아마도 그전에 남해여행을 또 오게 될 것 같기는 하지만.
아카이브*(Archive): 소장품이나 자료 등을 디지털화하여 한데 모아서 관리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모아 둔 파일.
< TRAVEL NOTE >
남해대교
명실상부 남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남해대교는 한국의 골든 게이트 브리지(Golden Gate Bridge: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로 샌프란시스코 베이와 마린 카운티 사이를 연결하는 세계 최초 현수교)라 불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다.
남해각
남해대교와 연계되어 세워진 휴게공간이었던 남해각은 현재 남해의 과거와 현재를 존중하고 남해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재탄생하였다.
[주소] 주소 경남 남해군 설천면 남해대로 4216
※주차가능
[이용시간] 매일 9AM-17PM (월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
[문의] 055 864 1905
참조 : 다음/위키백과, 카카오맵, 남해군 관광문화재단, 남해각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