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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Feb 03. 2022

캠린이들의 집짓기

캠린이들의 겨울 캠핑 - Episode Ⅰ

체크인 시간보다 약 1시간 일찍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핑장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면서까지 일찍 온 이유는 집짓기 때문. 캠린이들끼리 텐트를 칠 생각에 내심 걱정이 앞선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여자친구와 차박을 하면서 타프만 2시간을 쳤던 웃픈 추억이 있다. 당시 추억을 팔아보자면 3시쯤 도착해 30분 만에 모든 세팅을 끝내고 늦은 점심으로 본격적인 먹방을 시작하려 했지만, 그놈의 타프가 뭐라고 무려 2시간의 정성을 쏟은 덕분에 점심은 스킵하고 바로 저녁을 먹게 되었다는 어이없는 전설.(>_<) 물론 이번 캠핑을 함께하는 지인들은 나보다 스마트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모두 캠린이들이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일찍 움직인 것이다.

예약한 구역에 주차를 하고 트렁크를 열였다. 엉망진창으로 쌓아둔 짐들을 (우웨에엑~~~) 토하듯 쏟아냈다. 일단은 텐트부터 챙겨 본격적인 집짓기 시작! 하기에 앞서 핸드폰을 삼각대를 설치해 타임랩스를 켰다. 캠핑 오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사사삭 텐트가 올라가는 과정을 빠르게 담을 수 있는데, 내게는 해외여행 가면 하나씩 사 오는 기념품 같은 것. 개인적으로는 캠핑 추억팔이 할 때 가장 좋은 기록물이 아닐까 싶다. 연출은 나, 주연은 나와 함께 온 지인들. 밤고구마 하나 통째로 입에 넣은 것 같은 답답함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캠린이들의 집짓기, 이제 시작한다.(슬레이트 탁!)


캠린이들의 집짓기 1부 :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먼저 본체를 쫙 펼쳤다. 최대한 팽팽하게 펼치기 위해 네 모서리를 잡고 동시에 바깥쪽으로 당겼다. 다음으로 뽈대를 조립했다. 텐트의 중심이 될 메일 뽈대 두 개를 완성시킨 후 X자로 본체에 끼워 넣었다. 자, 이제 들어 올리면 된다. 각자 네모퉁이의 뽈대를 잡고 으랏차차!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던 본체가 숨겨왔던 거대한 풍채를 드러내며 일어섰다. 아직 미완성인 탓에 여전히 비실비실 했지만 마무리 작업하며 차차 완성하면 될 일. 텐트 뭐 별거 없네.라고 이때까지만도 그렇게 생각했다.

세우긴 세웠는데 문을 어디로 두어야 할까? 일단 세우고 나니 길가 쪽으로 문이 나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뒤쪽 계곡 뷰로 문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비록 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삭막한 겨울 계곡이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누추한 집 구경을 하게 둘 수는 없었다. 세워진 채로 기둥 하나씩 잡고 빙글빙글 180도 돌았다. 그렇게 입구 방향을 맞춘 후 본체가 팽팽하게 펴질 수 있게 마무리 작업을 했다. 그다음은 이너텐트를 설치할 차례. 잘 접힌 이너텐트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너텐트는 본체보다 간단했다. 천장에 달린 고리에 맞춰 끼우기만 하면 끝! 하나, 둘 고리를 끼워 나갔다. 그런데 진짜 고리가 2개였다. 그렇게 완성! 했다 생각했는데 역시 뭔가가 이상했다. 이너텐트 안쪽이 축~ 늘어져 있었던 것. 아니나 다를까 안쪽 고리 2개가 오갈 곳을 잃고 방황 중이었다. 얘네들은 어디에 걸어줘야 하나 본체 천장을 유심히 살폈지만 아무리 봐도 주변에 고리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건가 저건가 하며 여기저기 걸 수 있을 만한 곳에 억지로 당겨 걸어보았지만 영 모양새가 아니었다. 모양은 둘째치고 여기다! 싶을 만큼 딱 맞게 걸리는 곳도 없었다. 분명 뭔가 잘못되기는 했는데... 널브러진 고리처럼 도무지 뭐가 잘못된 건지 방향을 잃고 있던 와중에 내 뒤에 있던 지인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여기 가운데에 고리가 있네요? 뒤쪽에도 있고요."


지인이 가리키는 뒤쪽, 그러니까 우리가 앞문이라고 날개를 활짝 열어놓은 쪽 천장에 여러 개의 고리가 있었고, 모양을 보아하니 딱 이너텐트의 고리 위치와 일치했다. 아... 이너텐트의 위치가 따로 있었다니.


"돌리자.ㅋㅋㅋ"


안에서 꼼지락꼼지락 거리던 우리들은 우르르 밖으로 나와 다시 기둥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다시 빙글빙글~@@@ 이제야 모든 것이 완벽해졌나? 싶은 순간, 아니 그럼 입구 방향이 또 안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문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죠. 양쪽으로 다 열 수 있는데. 사실 아까도 돌릴 필요가 없었던 게 우리가 정하기 나름이라..."


아! 그렇네;;; 텐트를 몇 번 돌리다 보니 내 머리마저 돌아버렸다. 이제 진짜로 본체와 이너텐트 설치 끝!!! 하... 분명 누구나 설치하기 쉬운 입문용 텐트라고 했는데... '누구나'에 캠린이들은 제외인 모양이다.

캠린이들의 집짓기 1부
비로소 완성된 집 내부


캠린이들의 집짓기 2부 : 이건 뭐고, 타프는 어디에?

본체와 이너텐트 설치를 끝내고 나니 있어야 할 게 없고 뭔지 모를 게 하나 있었다. 있어야 할 건 타프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건 타프인 듯 하나 어딘가 모양새가 이상한 타프였다. 일단 정황상 요놈이 타프인 것 같았다.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을만한 용도로 남아있는 게 이것밖에는 없었으니까. 비록 내가 알고 있는 타프와는 모양이 좀 이상하고, 무엇보다 뽈때를 꽂을 수 있는 곳이 없어 뭔가 의아했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는 정신으로 어떻게든 뽈대 꽂을 위치를 만들어서라도 세우려 시도했다. 이렇겐가? 저렇겐가? 하지만 아무리 세워봐도 이상했다. 뭐 모양이야 이상하더라도 타프로서의 기능만 제대로 한다면야 별 문제없겠지만 이대로는 제 구실을 못할 것 같았다. 계속되는 시행착오에 이제는 아이디어도 고갈상태. 더 이상 아무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던 순간 극적으로 마지막 아이디어가 하나가 나왔다.


"혹시 이거 타프가 아니고 텐트 위에 덮는 거 아닐까요?"


(뒤통수 빡!)아!!! 발상의 전환이었다.  줄곧 타프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각자 모서리를 잡고 팽팽하게 당겨 본체 위로 넘겼다. 그렇게 앞에서부터 뒤로 쭉~ 넘기니 지붕처럼 본체를 딱 알맞게 감싸는 게 누가 봐도 이게 제자리였다. 그제야 캠핑장에서 봤었던 텐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나같이 무언가로 덮어져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무언가의 정체는 일명 '플라이'. 실제 집의 지붕처럼 비나 눈 등으로부터 텐트를 보호해주는 용도였다. 텐트 기본 구성품이라도 미리 알고 왔으면 당연히 알았을 텐데. 타프도 아닌 것을 타프로 써보겠다며 아등바등 실랑이를 벌였다니, 이불킥 한 달짜리다.(아, 이 똥 멍청이!)

어쨌든 얼떨결에 플라이 설치까지 끝. 이제는 진짜 타프를 설치할 차례. 하지만 아무리 텐트 커버를 뒤져봐도 타프로 보이는 넓은 천은 찾을 수 없었다.


"뭐지? 혹시 타프는 빼먹은 건가;;;"


도저히 찾을 수 없어 텐트 렌털 업체에 전화를 해볼까 하는 찰나 텐트 기본 구성품이 생각났다. 렌털 했던 사이트로 들어가 구성품을 살펴봤다. 역시 타프는 따로 없었다. 아닌데? 사진에는 분명 입구 앞쪽으로 타프가 있었다. 혹시 사진과 다른 제품인 건가? 인터넷 쇼핑은 종종 실물과 다른 경우가 있으니까. 애꿎은 입구 쪽 날개만 만지작거렸다. 그때, 돌돌 말아놓은 날개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뒤쪽 날개와는 다르게 두께감이 있었던 것. 말린 날개를 다시 펴보니 그제야 보이는 지퍼. 지퍼를 열자 스르륵~ 와우! 숨어있던 타프가 나타났다. 일체형이었구나! 이름하야 익스텐션 타프 시스템.(이런 게 있는 줄 이번에 알았다. 찐 캠린이 인증^^;;) 크으~ (겨우 이 정도에) 세상 참 좋아졌다며 감탄의 감탄과 함께 집 완성의 기쁨을 누렸다. 자, 이제부터가 진짜 캠핑 시작!인데 기쁨도 잠시, 에너지를 너무 쏟은 탓에 그만 텐션이 떨어져 버렸다. 후... 삶이든 여행이든 역시 내 집 마련은 어렵구나.ㅜㅠ

캠린이들의 집짓기 2부
드디어, 집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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