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린이들의 겨울 캠핑 - Episode Ⅱ
캠핑장비라고는 폴딩박스와 차박용 자충매트가 전부인 내가 강원도 평창의 해발 700고지로 겨울캠핑을 간다고 하니 주변에 캠핑 좀 한다 하는 고수 캠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난로 빌려줄까?', '그라운드시트는 있니?', '침낭은 있니?', '난방 장비 없으면 힘들 텐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걱정과 조언이 당연히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귀찮기도 했다. 뭐 이렇게나 챙길게 많은 건지... 하지만 캠린이 주제에 고수들의 조언을 무시할 수 없는 노릇. 그래서 결국 다 챙겼다. 딱 하나, 난로만 빼고. 악마의 한 수였다. 왜 그랬을까...?(후회막심ㅠㅜ)
사실 처음부터 뺄 생각은 아니었다. 캠핑용 난로에도 종류가 있어 어떤 게 적당할지, 사용법이나 주의할 점은 뭐가 있는지 꼼꼼히 알아본 후에 조금이라도 편하고 사용하기 쉬운 놈으로 고르려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일기예보와 실제 주중 날씨가 당초 예상했던 것만큼 춥지 않았다. 캠핑장이 강원도 평창의 해발 700고지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 추위라면 내복에 빵빵한 패딩을 입고, 가슴팍에 핫팩 한두 개 정도 붙여주고 침낭 속에 쏙 들어가 자면 충분히 따듯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여러모로 거추장스러울 난로는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대신 그래도 명색이 해발 700고지니 플랜B로 전기장판을 챙겼다. 어릴 적 할머니 댁 시골집에서의 추억에 의하면 웃풍에 얼굴이 시린 와중에도 아랫목에서는 잠이 솔솔 왔었더랬다.
우여곡절 끝에 텐트 피칭을 마치고 급격히 떨어진 텐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텐트 앞마당에서 맥주와 닭강정으로 본격적인 캠핑을 시작했다. 난로 없는 겨울캠핑. 낮에는 그런대로 할만했다. 텐트 피칭으로 올라온 몸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공기는 차도 햇빛은 따듯했으니까. 오히려 그늘진 텐트 안이 바깥보다 추웠다. 물론 난로가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아무튼 난로를 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맥주와 닭강정을 다 먹어갈 때쯤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해발 700고지의 찐 추위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찬 공기 속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해 준 그저 한줄기 빛이었던 햇빛이 사라지니 손가락이 얼어 젓가락질조차 하기 힘들었다. 해가 있고 없고 가 이렇게나 차이가 크다니;;;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예정보다 일찍 장작불을 피웠고 다들 불이 붙자마자 옹기종기 장작불 주위로 모여 앉았다. 차가운 맥주 대신 와인을 따듯하게 데워 뱅쇼처럼 마셨고, 핫팩을 터트려 주머니에 넣어 놓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뺏다를 반복했다. 이쯤 되니 잠자리도 걱정됐다. 과연... 잘 수 있을까? 후훗, 이럴까 봐 준비해온 게 바로 전기장판! 회심의 히든카드를 꺼내 이너텐트 바닥에 깔았다. 온도는 당연히 최고온도로. 잠자리 세팅 끝! 이제 남은 장작 다 태울 때까지 놀다가 들어와 잘 일만 남았다. 불멍 가루로 미니 오로라도 보고, 차박을 할 건 아니었지만 차박 세팅도 해놓고 갬성 사진도 찍으며 추위를 잊은 채(사실은 이겨내며) 평창의 밤을 즐겼다.
추위도 어느덧 적응이 되어갈 혹은 무감각해졌을 무렵, 불 앞에 있는 U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취기도 오르는데 추운 날씨 속에 불 앞에 있어 그런지 꾸벅꾸벅 잠이 오는 듯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의자에서 일어서다가 휘청~ 오! 안돼~~~ 애!(잡았다 요놈!) 하마터면 화로에 얼굴을 그대로 묻을 뻔했다. 대참사가 일어나기 전 반사신경이 먼저 반응해 천만다행이었다. 힘이 빠진(아마 영혼도 함께 빠졌을) U를 부축했다. 그리고는 그 상태 그대로 탠트로 직행. 잘 데워져 있겠지? 데일만큼 뜨겁지는 않아도 따듯은 할 거라 확신하며 자신 있게 텐트에 눕혔는데 이게 웬걸!? 1도 따듯하지 않았다. 뭐지? 고장 났나? 분명 최고 온도인데? 정말 아주 살짝, 집중해서 느끼려고 하면 느낄 수 있는 작은 온기가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미지근보다도 차가웠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건 분명 둘 중 하나다. 전기장판 성능이 좋지 않거나(혹은 고장이 났거나) 아니면 전기장판보다 땅의 냉기가 더 강해 전기장판이 힘을 못쓰거나. 렌털업체에서 고장 난 물건을 주었을 것 같지는 않고 후자에 심증이 더 쏠렸다. 뭐 이유야 그렇다 치고 중요한 건 이제 '어떻게 잠을 잘 것인가?'였다. 과연... 이대로 잘 수 있을까...?
마지막 장작이 시커먼 재가 될 때까지 활활 태우고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텐트로 들어갈 시간. 행복해야 할 시간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전장으로 나가기 전 완전무장을 하는 군인의 심정으로 텐트로 들어가기 전 완전난방을 했다. 남은 핫팩을 모두 터트려(그래봤자 2개ㅠㅜ) 몸속에 붙이고, 옷은 있는 거 다 껴입고, 텐트로 들어가기 전 시동을 걸어 히터를 켜 둔 차에서 몸을 데웠다. 모든 준비 완료! 골든 타임은 십여분이다. 그 안에 잠이 들기만 하면 게임 끝! 난 잘 땐 누가 업어가도 모르니까. 비장한 마음 안고 텐트로 들어가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다들 무사히 숙면(아니 생존)하길 바라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렇게 난 잠이...(쿨쿨~~~ zzz)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다. 눈을 뜬 거 보니 일단 난 생존했다. 다른 친구들은 아직 한창 꿈속을 헤매는 중이었다.(자고 있는 모습만으로는 부족해 숨 쉬고 있는지까지 확인했다) 전기장판이 정상이었다면 아침에 눈을 뜨고도 계속 꼼지락 거렸을 텐데. 텐트 안이나 밖이나 별 다를 게 없을 것 같아 좁고 답답한 텐트를 벗어나고자 침낭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갔다. 온몸의 뻐근함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추위가 몰려왔다. 그래도 밖보다는 안이 따듯했다.(아주 쬐금은) 난 텐트 대신 차로 들어갔다. 시동을 켜고 히터를 켰다. 살기 위해서.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람?ㅠㅜ 갑자기 현타가 왔다. 겨울캠핑은 난방 장비 없이 해서는 안 되겠구나;;; 특히 난로 없이는. 비록 누구에게 훈수를 둘 만큼 캠핑 고수는 아니지만 누군가 겨울캠핑을 간다고 하면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다.
겨울엔 난로 없이 캠핑하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