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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Jun 01. 2022

제주 등대 여행

조금 특별한 제주여행

바다 말고, 오름 말고, 한라산 말고,
뭐 특별한 거 없을까?
늘 그 자리에 있어 몰랐는데 제주의 등대는 특별했다.


등대 16경을 아시나요?

해양수산부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등대 16경’이라는 게 있다. 그중 제주에 2경이 있다. 마라도와 우도에. 갑자기 등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색다른 제주여행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산에 가면 꼭 해운대를 가는 것처럼 제주에 오면 습관처럼 월정리로 향하는 나의 고리타분한 제주여행 루틴도 깨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마라도와 우도를 다 둘러보기에 하루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제주공항과 가까운 등대를 찾았다. 지도앱에서 [제주등대]라고 검색하니 약 30분 반경 안에 4개의 등대가 있었다. 마침 위치도 좋다. 월정리와는 정반대. 시동을 켜고 제주 서쪽으로 출발했다.

[등대 16경]
1경 영도 / 2경 오륙도 / 3경 마라도 / 4경 우도 / 5경 소청도 / 6경 팔미도 / 7경 오동도 / 8경 소매물도 / 9경 속초 / 10경 어청도 / 11경 홍도 / 12경 옹도 / 13경 울기 / 14경 간절곶 / 15경 독도 / 16경 호미곶




우리 사이 127m

거북등대

‘어라? 길이 없네?‘ 한림읍 귀덕1리항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목적지인 거북등대까지 네비게이션상 여정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수륙양용차가 아닌 이상 차로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두 다리가 나설 차례.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거북등대를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기 위해 항구 끝으로 향했다. 서서히 육지의 끝이 보일 무렵 인기척이 들렸다. 나처럼 거북등대를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러 온 사람들인가 했는데 등대에는 1도 관심 없는 낚시꾼들이었다. 제주 어디나 다 그렇듯 항구 근처 방파제는 암묵적인 낚시꾼들의 만남의 장소다. 평일 오전에 낚시라... 낚시꾼이 직업은 아닐 테고, 여행 와서 낚시를 하는 것일지, 아니면 하루 휴가를 내고 나온 제주도민일지, 그것도 아니면 낚시 유투버일지, 얼핏 내 또래 정도 돼 보이는 낚시꾼들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지만 행여나 방해가 될까 싶어 묻지 않았다. 낚시꾼들을 보며 걷는 사이 어느새 항구 끝에 다다랐다. 배를 타지 않고서 가장 가까이서 거북등대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만족스럽지 못해 줌을 최대한 당겼다. 하지만 거북등대와 나 사이의 간격은 더 이상 좁혀지지 않았다. ’아, 렌즈 다 챙길 걸...‘ 짐스러울까 봐 챙기지 않은 줌렌즈가 눈에 아른거렸다. 지도상 직선거리 127m는 17-50 렌즈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찼다. 하는 수없이 15배 줌이 가능한 사과폰을 꺼냈다. 그제야 거북등대와 가까워졌다. 그런데 오히려 더 선명하지 못한 건 왜일까? 아무래도 우리 사이는 여기까지 최선인 듯.



멀리서 보아야 예쁘다

이호테우 목마등대

제주여행을 할 때마다 항상 이호테우해변에 왔다. 한 번은 대놓고 캠핑을 즐겼고, 나머지는 해안도로로 빠지기 위해 지나가거나 서울로 올라가기 전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공항 가는 길에 들르곤 했다. 이렇게 몇 번을 다녀간 이호테우해변이지만 이호테우 목마등대를 제대로 본건 이번이 처음. 목마등대가 있는 이호항까지는 해변을 가로질러 가면 금방이지만 신발에 모래가 들어갈까 봐 해변 안쪽, 올레길 17코스길을 따라 이호항으로 향했다.

제주 등대들 중 가장 인싸 등대 답게 목마등대 주변은 등대를 등에 업고 인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해변보다 등대가 더 인기 있는 곳은 아마 이곳이 유일할 터. 에메랄드색은 빨강이(빨간색 등대)와 하얀이(하얀색 등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빨강이 앞에서 인생샷을 남겼다. 반면에 하얀이와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하얀이를 병풍처럼 두고 사진을 찍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얀이가 있는 이호방파제까지는 빙 둘러 가야 했기에 굳이 수고스럽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왠지 그런 하얀이에게 더 마음이 갔다. 그래서 빨강이와는 짧게 인사를 나누고 하얀이가 있는 이호방파제로 이동했다. 하얀이 앞에 도착하니 뒤로 빨강이가 보였다. 아니 그런데 막상 하얀이 앞에 서니 빨강이가 더 예뻐 보이는 것 아닌가!? 어쩌면 빨강이 앞에서 하얀이에게 마음이 갔던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나란 사람 간사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나 배웠다. 때로는 멀리서 보아야 예쁘다.


제주도민만 아는 생활낚시 포인트

도두등대  

늦은 오후에 도착한 도두항. 평일인데다 아직 식사 때도 아니다 보니 맛집 많기로 소문난 도두항이지만 한적했다. 낮이 길어진 터라 여전히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도 분위기는 새벽 4시의 거리 같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철썩철썩 방파제에 바닷물 부딪히는 소리와 뚜벅뚜벅 내 걸음 소리뿐. 공공장소에서 나도 모르게 속삭이게 되는 것처럼 한 손으로 덜렁거리는 카메라를 부여잡고 사뿐사뿐 도두등대를 향해 걸었다.

도두등대는 평범했다. 꼭 제주가 아니어도 있을법한, 등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모습의 흔한 등대였다. 빨간 등대와 흰 등대가 있는데 지도 표기상으로는 빨간 등대가 도두등대다.(이유는 모르겠으나 흰등대는 그냥 등대로 되어 있다.) 이호테우에서 멀리서 보아야 예쁘다는 걸 깨달았기에 먼저 흰 등대를 찾았다. 마침 보트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고 바다로 나가주시니 덕분에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도두등대가 외롭지 않았다. 사실 꼭 배가 지나가지 않아도 도두등대는 외로울 틈이 없는 등대다. 도두등대로 가는 길 아래 방파제가 바로 제주도민들만 아는 생활낚시 포인트이기 때문. 이날도 제주 강태공 4명이 자웅을 겨루듯 현란하게 낚싯대를 움직이고 있었다. 요즘 제주도민과 육지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식당에서 미소(미지근한 소주)를 마시느냐가 있다는데, 여기 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도두등대에서 노을 보면 육지사람, 낚싯대 들고 밑으로 내려가면 제주사람. 다음에 도두등대를 찾을 때는 카메라 대신 낚싯대를 들고 와야겠다.


Unknown 제주 노을 스폿

산지등대     

제주 서쪽에서부터 시작해 도두등대까지, 어느덧 해는 반쯤 누워있었고 하늘도 불그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골든타임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 찰나의 순간처럼 스쳐 지나갈 하루의 명장면을 놓칠세라 부리나케 다음 등대로 향했다.

골든타임을 함께 할 영광의 마지막 등대는 산지등대. 비록 등대 16경 안에는 없지만 무려 105년 동안이나 제주바다를 지켜온 역사가 깊은 등대다. 그만큼 제주도민들의 애정도 각별할 터. 그래서일까? 육지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노을 스폿이다. 등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삼각대에 대포 같은 카메라를 올려둔 노을 사냥꾼들이 명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필시 제주도민이리라. 제주살이를 하면 육지사람에게 텃세가 심하다던데, 난 텃세를 무릅쓰고 은근슬쩍 옆에 자리를 잡았다. 주홍빛 하늘에 보랏빛이 곁들여지며 서서히 그라데이션이 생겼다. 그동안 나의 주 무대였던 제주 동쪽이 아닌 서쪽에서 보는 찐노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역시 일출은 동쪽, 노을은 서쪽이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꼭꼭 숨을 때까지 바라봤다. 완전히 넘어가고 나니 도시의 불빛이 밝혀졌다. 노을만큼이나 야경도 명소로도 손색이 없었다. 제주도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모름지기 좋은 건 공유해야 하는 법. 이 글을 빌어 널리 알려보련다. 이제부터 제주 노을과 야경은 산지등대에서.

등대 개방시간 동절기 9AM-18:30PM | 하절기 9AM-19:30PM




< 등대 주변 가볼 만한 곳 >


거북등대

복덕개 포구(영등할망 신화공원)

복덕개 포구는 언뜻 보면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구지만 알고 보면 특별하다. 제주 토착신 중 바다와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 신화의 배경지이기 때문. 매년 2월 초하루에 영등할망이 제주로 내려와 바다와 뭍에 씨를 뿌리고 가는데, 옛 제주 사람들은 영등할망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이곳 복덕개 포구라 믿었단다. 해서 초봄이 되면 영등할망을 맞이하는 영등신맞이가 마을 당굿으로 최근까지도(코로나 이전) 성대하게 열리곤 했다. 귀덕리에서는 이 같은 민속유산을 널리 알리기 위해 복덕개 포구 인근에 영등할망 신화공원을 조성했다. 곳곳에 영등할망 신화 속 인물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바로 옆 비석에 신화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새겨두어 영등할망 신화를 모르는 사람도 할머니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한 편을 듣는 것처럼 금세 빠져들게 된다. 포구에서 보이는 거북등대는 그저 거들 뿐.


버거요

프리미엄 수제버거지만 포크 앤 나이프가 필요 없는 핸드버거를 표방한다. 먹기 전 손 세척과 턱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 두 손으로 붙잡고 최대한 입을 크게 벌려 빵, 패티, 소스, 야채를 모두 한입에 베어 물어야 한다. 못 생겨지는 만큼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혹 누가 쳐다볼까 두렵다면 지나친 걱정이다. 제주 오션뷰를 앞에 두고 남 햄버거 먹는 걸 쳐다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러니 두려워말고 손과 턱관절을 이용하자. 햄버거는 역시 고상한 척 칼질하는 것보다 덥석 손으로 들고 게걸스럽게 먹어줘야 제맛이다.     

오픈 11:00~20:00 (라스트오더 19:00)

메뉴 관자스테이크 버거 13,900원 / 대게 버거 14,900원

@burgeryo_jeju


이호테우 목마등대     

이호테우 해변

제주공항에서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해변. 이제 막 제주에 도착한 사람은 반가움으로, 이제 곧 제주를 떠나야 하는 사람은 아쉬움으로 찾아온다. 때문에 낮이나 밤이나 해변은 언제나 활기차다. 아예 상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호테우 해변 길목 소나무 숲은 캠퍼들의 성지다. 화장실, 탈의실, 주차장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진 데다 시내도 가까워 쾌적하고 부족함 없는 캠핑을 즐기기에 좋다. 뭐니 뭐 니해도 목마등대가 가장 유명하지만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것이 간조 때만 드러나는 원담이다. 원담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제주의 전통 고기잡이 방식으로 이호테우 해변에 이호 모살원이라 하여 원담을 복원시켜 놓았다. 낙조를 기다리듯 썰물 때를 기다려 제주만의 신비로운 풍경을 마주해보자.

   

도두등대

도두봉

도두등대를 한눈에 담기 위해서라도 도두봉에 올라가야 한다. 도두항에서 올라가는 길에 나오는 도두봉 중턱 전망대에서 빨간색 도두등대와 도두북방파제 위 하얀 등대를 함께 내려다볼 수 있다. 여기에 노을까지 더 해진다면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다. 도두봉에서 담아야 할 건 도두등대만이 아니다. 오름 정상에 가면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포토존이 있다. 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탁 트인 풍경이 키세스 초콜릿 모양 같아 이름 붙여진 키세스존이다. 대기 필수, 삼각대도 필수, 무엇보다 커플이 필수다.


도두 무지개 해안도로

빨주노초파남보. 약 500m가량 무지개색 방호벽이 이어지는 도두 무지개 해안도로는 인증숏과 커플사진을 찍기에 최적의 스폿이다. 되도록 화창한 날 해가 쨍한 시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알록달록 무지개색과 제주의 파란 하늘, 바다의 원색을 선명하게 담아낼 수 있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고깃집과 카페들은 대부분 테라스를 갖추고 있어 해안도로와 제주 바다를 보며 먹고 쉬기에 제격이다. 도두봉과 연계코스로 도두봉 정상 찍고 무지개 해안도로 방면으로 내려와 인증숏 찍고, 제주 바다를 보며 허기진 배를 채워보자. 완벽한 제주 도두동 여행이다.

 

산지등대

카페물결

산지등대 내에 위치한 카페물결은 본래 산지등대의 등대지기가 사용했던 관사다. 2019년 10월 등대 무인화 흐름에 맞춰 산지등대도 무인화가 되면서 100여 년 만에 등대지기가 사라졌다. 그리하여 그들이 사용했던 관사 역시 유휴시설이 되었는데, 2020년 11월 제주 해양수산관리단과 제주시 건입동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가 이곳을 해양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현재의 카페 겸 독립서점인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되었다. 카페물결은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한다. 일회용품 사용은 일절 금지! 테이크아웃은 개인컵에만 가능하다. 테이크아웃이 아니더라도 되도록 개인컵을 챙겨가자. 개인컵 사용 시 500원을 할인해 준다 하니 환경도 지키고 할인도 받고, 이거야말로 개이득.

*제로 웨이스트: 환경보호를 위해 재활용, 재사용을 통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것.     

오픈 09:00~19:30

메뉴 아메리카노 4,000원 / 물결라테 5,000원

문의 064 725 7799

@cafe_w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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