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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Dec 21. 2022

엄마의 버킷리스트

두 효놈의 부산 효도 여행 - Episode Ⅰ

평소 '부산'하면 엄마가 입에 달고 내뱉는 말이 있다. 이기대 갈맷길이라고... 이번에도 역시 부산 가면 어디를 가보고 싶냐는 질문에 조건반사처럼 이기대 갈맷길이 나왔다. 주변 지인들로부터 부산 이기대가 그렇게 좋더라는 썰을 여러 번 들어오셨던 터라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거의 30년 만에 부산을 찾는 엄마니까 30년 동안 이기대 갈맷길을 가고 싶어 했다는 말. 이 정도면 거의 버킷리스트 아닌가?(이 정도인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진즉에 데리고 가지 않은 나는 역시 불효놈ㅠㅜ) 그래서 부산 효도여행 첫 번째 코스는 이기대 갈맷길로 정했다.

이기대 갈맷길은 총 9코스가 있는 부산 갈맷길 중 제2코스로 민락교에서부터 시작해 이기대공원을 지나 오륙도까지 이어진 해안산책로다. 내비게이션으로 이기대 갈맷길을 검색했다. '이기대'까지만 입력하니 자동완성으로 이기대 공원이 나왔다. 이기대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니 거기가 거기겠거니 싶어 이기대 공원을 목적지로 찍었다.

이기대 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바닷가 쪽으로 5분 남짓 걷자 탁 트인 부산 바다와 함께 광안대교, 해운대 마린시티가 보이는 이기대 갈맷길이 나왔다.


"여기 진짜 이기대 갈맷길 맞아? 테크길이 없는데..."

"엄마, 테크가 아니고 데크."

(단어 모음 하나 틀리는 건 우리 엄마의 특기이자 개인기다.)

"테크나 데크나~ 아무튼 이런 길이 아니었는데..."


사실 나도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테크, 아니(나도 전염됐다ㅡㅡ) 데크로 이어진 걷기 좋은 길이라는 후기를 보고 왔는데 우리가 걷고 있는 이기대 갈맷길은 거의 준등산로였다. 정갈하게 깔린 데크는커녕 흙과 바위가 뒤섞인 오프로드인 데다 평지도 아니고 오르락내리락, 꼬불꼬불 길이 이어졌다. 정제된 길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길이었다. 당연히 길 옆으로 난간도 없어 여차하면 내려가서 바닷물에 발도 담글 수 있었다. 혹시 조금 더 가면 엄마가 원하는 데크길이 나올까 싶어 일단 계속 해안선을 따라 걸어가 봤지만 어째 갈수록 점점 더 야생으로 들어가는 느낌. 이에 엄마가 회항을 선언했다.


"에이~ 엄마 이런 길은 걷기 힘들어. 그냥 가자~"

"음, 그럼 오륙도 쪽으로 가볼까? 거긴 엄마가 찾는 데크길이 있을지도 모르니."


어떻게든 이번 여행에서 엄마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채워주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가득 찬 난 원치 않는 엄마와 동생을 이끌고(질질 끌고) 오륙도 출발했다.

까꿍! 부산 바다와 해운대 마린시티
그래도 나름 풍경은 괜찮았다


어쩌다 오륙도까지 오게 됐다. 오륙도를 보러 오륙도에 온 게 아니라 데크가 있는 이기대 갈맷길을 찾아 오륙도에 온 거지만 바다 위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오륙도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데크길~ 데크길~ 노래를 부르던 엄마도 그새 데크길을 잊었는지 오륙도를 보고는 홀린 듯 오륙도스카이워크로 향했다.


"엄마, 거긴 이기대 갈맷길 아닌 거 같은데..."

"어유~ 저거 보고 가야지. 저기 먼저 갔다가 가자."


오륙도 스카이워크는 스카이워크라는 이름 그대로 해안절벽 위의 유리다리다. 요즘 해안절벽이나 혹은 높은 루프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 유리 바닥. 사람들은 두께 55.49mm의 방탄유리 위에 몸을 맡기고 (겉으로는) 웃으며 오륙도와 인증숏을 찍었다. 때마침 노을이 지고 있어 하늘과 바다, 그리고 오륙도에 오렌지빛이 그라데이션처럼 스며드니 한껏 센치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가는구나... 모처럼 갬성에 빠져있는데 동생이 초를 쳤다.


"아우, 나가자. 나 사람 많은 거 답답해."


노을이 한창 예쁜 골든타임인지라 갑자기 몰린 사람들 때문에 동생에게는 한계가 온 모양이다. 얼마나 절실했는지 엄마와 난 앞장서서 불도저처럼 인파를 뚫고 가는 동생 뒤꽁무니에 바싹 붙어 스카이워크를 빠져나왔다. 이제 우리 본연의 목적이었던 이기대 갈맷길, 데크길을 찾으러 오륙도 해맞이 소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초입부터 급경사 언덕을 올라야 했다. 설마 계속 언덕은 아니겠지. 요거만 넘으면 평지와 함께 데크길이 펼쳐지기를 기대하며 속는 셈 치고 올랐다. 다행히 더 이상의 언덕길은 없었다. 대신 데크길도 없었다. 대체 갈맷길은 어디로 이어진 걸까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던 중 데크로 된 계단이 보였다. 여기다. 여기가 이기대 갈맷길의 마지막 코스. 2-2? 어떻게 찾기는 찾았는데 엄마는 계단을 보고는 이내 마음이 돌아섰다.


"에이~ 됐다. 가지 말자. 대신 오륙도 봤으니까 됐어."


당사자가 됐다 하니 엄마의 버킷리스를 채워주고자 했던 나의 굳은 의지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이렇게 이기대 갈맷길 여행은 이기대 갈맷길을 제대로 걸어보지도 못하고 오륙도에서 끝이 났다. 아, 엄마의 숙원사업이자 버킷리스트나 다름없는 (데크로 된) 이기대 갈맷길을 꼭 데려가고 싶었는데. 오늘로써 불효놈 타이틀을 떼고 효자로 거듭나려 했으나 역시 효자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노을 지는 오륙도
지금이 골든타임!
오륙도 해맞이 소공원에서 바라본 오륙도
갈맷길은 대체 어디에? 저 멀리 보이는 계단 데크길이다
오륙도 해맞이 소공원 연못


참조 : 다음/위키백과, 카카오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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