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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Dec 22. 2022

눈물 나게 예뻤던 해운대의 밤

두 효놈의 부산 효도여행 - EpisodeⅡ

부산에 왔으면 모름지기 오션뷰 숙소를 잡아야 하는 법. 그래서 해운대 근처로 잡았다. 부산 바다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광안리와 해운대 중 해운대를 택한 이유는 광안리보다 비교적 조용해서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눕, 다가는 바로 잠들어 버릴 거 같아 마지막 남은 에너지의 불씨를 살려 해운대 밤바다를 보러 나왔다.

숙소가 바닷가에서 한 블록 안에 있다 보니 숙소 주변은 조용했다. 해변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사람들도 많아지고 활기가 느껴졌다. 펍이나 카페는 안부터 테라스까지 빈자리가 없었고, 달밤 조깅족, 강아지 산책족, 연인 산책족, 가족 산책족, 친구 산책족 등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해운대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 무리 안에서 보조를 맞추며 천천히 산책하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엄마, 신발에 모래 다 들어갈 텐데..."

"신발 벗고 다니면 되지~ 바다에 왔는데 발이라도 담가야 하지 않겠어?"


말릴 새도 없이 엄마는 후다닥 신발과 양말을 벚어젖히고는 양말은 주머니에, 신발은 동생에게 맡기고 성큼성큼 바다를 향해 돌진했다. 미처 준비가 안 됐던 나와 동생은 신발에 모래를 쓸어 담으며 엄마를 따라갔다. 서서히 모래에 잠기는 발이 영 찝찝하고 기분이 별로였지만 엉덩이 실룩거리며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에 이렇게 엄마가 신났던 적이 있었나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에라이~ 그래, 모래야 털면 되지. 조금이라도 모래를 덜 담아보고자 사뿐사뿐 걷던 나도 이제는 털레털레 편하게 걸었다.

파도에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해변가에 도착한 엄마는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 심지어 첨벙첨벙 뛰기까지 했다. 뭐 그리 신기한 거라고 아이처럼 물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발자국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차갑다면서 물을 피하지 않았다. 입가와 눈가에는 찐 웃음으로 주름이 없어지지 않았다. 흔히 볼 수 없는 엄마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스냅 느낌으로 엄마 뒤를 쫓아다녔다.(하지만 한 장도 못 건졌다.) 한참을 계속 그렇게 걷더니 갑자기 멈춰서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는 검지 손가락을 길게 뽑아 모래사장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고, 울 엄마 또 어디서 본 거는 있으셔가지고. 당신 이름을 쓰시려나? 아니면 사랑해?(아, 생각만 해도 오글거린다.)


고.마.워.


전혀 예상치 못한 엄마의 단어 선택에 당황, 아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순간 울컥했다. 뭐가 고맙다는 건지 이성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감성은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나 보다. 마침 영상을 찍고 있어 참 다행이었다. 이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보다 생생하게  남길 수 있었으니까. 고마워라는 필적을 남기고는 민망한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한동안 지긋이 바라봤다.


해운대 해변에서의 여운과 한 가지 궁금증을 그대로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나름 이것도 물놀이라고 배가 출출해져 들어오는 길에 회 한 접시를 떠 왔다. 회 한 점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엄마에게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던 걸(자칫 너무 진지해질까 봐) 결국 물어봤다.(술의 효과다.)


"엄마 아까 왜 고맙다고 썼어? 뭐가 고마워?"

"바다에 데려와줘서."


생각보다 너무 싱거운 이유에, 에이~ 그게 모가 고마워,라고 맞받아쳤어야 마땅하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복받친 감정과 눈물이 나왔을 뿐. 꼭 부산이 아니어도 가까운 바다도 많고, 멀더라도 멀어봤자 한국이거늘 난 왜 지금까지 그 흔한 바다를 엄마와 함께 가지 않았을까? 후회와 아쉬움, 미안함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럼에도 엄마는 이 한 번의 바다에 고맙다고 하다니... 불효놈은 웁니다ㅠㅜ

엄마가 씻으러 간 사이 홀로 숙소 루프탑에 올라가 엄마 앞에서 차마 못 다 뺀 눈물을 흘렸다. 이 와중에 운 거 티 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팅팅 부은 눈을 보고 울었냐고 하면 어떡하지? 그래, 이렇게 해야겠다. 해운대의 밤이 눈물 나게 예뻐서 그랬다고.

해운대의 밤
눈물 나게 예뻤던(?) 해운대 루프탑 뷰
고마워


참조 : 다음/위키백과, 카카오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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