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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Feb 17. 2023

나 혼자 차크닉

제주에서 차박 여행 - EP Ⅰ

동생과 함께 가기로 한 제주지만 함께 갈 수 없었다. 나보다 한참 늦게 항공권을 예매한 탓에 따로 출발이 돼버린 것.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안 그래도 혼자 여행하고 싶었으니까. 동생과는 두어 시간 차이지만 동생이 도착할 즈음에는 북토크 스케줄이 있다 보니 덕분에 북토크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가뜩이나 여행초보인데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다녀야 할 동생이 조금 안쓰럽기는 했지만 언제 뚜벅이로 제주를 여행해 보겠냐며, 그게 진짜 제주 로컬여행이라며,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생각들로 동생에 대한 미안함을 무마했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다고, 막상 미안함을 무마하고 나니 이후부터는 일절 동생 걱정이 들지 않았다. 그저 룰루난나~ 머릿속엔 온통 '혼자 어디 가야 잘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로 가득 찼다.


목적지에 대한 고민은 도로표지판에 적힌 '해안도로'가 해결해 주었다. 방황을 하더라도 일단 제주 바다를 보며 하자는 생각에 그대로 우회전을 했는데 순간 동네 골목길 사이로 드러난 제주바다와 네모정자의 모습이 진부하지만 액자 속 그림 같았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길가에 차를 대고 액자 속 그림을 카메라라는 액자에 다시 한번 담았다. 지나가는 길이 목적지가 되는 순간. 굳이 어디를 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지금처럼 가다 서다 가다 서다, 그러다가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 있으면 트렁크 열고 뒷좌석 눕히고 벌러덩 누우면 되니까. 이런 게 찐 차크닉이지.

제주에 도착해 처음 만난 바다
애월해안도로
바람이 아주 거셌다


거센 바닷바람에 체온이 떨어지니 슬슬 배도 고파오는 것 같아 일단 배를 채우기로 했다. 모름지기 차크닉이라 하면 차에서 바다를 안주삼아 먹어야 할 터. 메뉴는 포장할 수 있고 뒤처리가 간편한 김밥으로 정했다. 물론 제주이니 만큼 육지 스타일 말고 제주 스타일로. 전복 내장이 들어가 살짝 탁한 색의 밥과 중간에 계란지단이 통으로 들어가고, 그 주위를 네모나게 김이 둘러싸고 있는(이 정도 묘사했으면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 같은) 만복이 아저씨네 김밥을 포장했다. 배운 사람답게 오징어무침도 함께. 식당 안 뷰도 생각보다 좋아(참고로 애월점) 순간 먹고 갈까 흔들렸지만 지금 차크닉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반드시 더 좋은 뷰를 보며 먹겠다는 굳은 의지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해안도로를 따라 닥치고 직진. 그러다가 잠시 눌러앉을 만한 스폿이 보이면 그대로 시동 끄고 진을 치려 했으나 선뜻 마음 내키는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한 순간도 예쁘지 않은 곳은 없었지만.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차가 어느새 제주 서쪽 끝자락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포장해 온 김밥에 온기도 점점 식어가는 것 같아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타이밍. 더 이상은 배고픔도 김밥이 식는 것도 참을 수 없어 그대로 신창풍차해안도로에 차를 세웠다. 거대한 풍차 옆 어느 공터에. 그리고는 늦은 점심이자 첫끼, 김밥 개봉박두. 조금 식었지만 괜찮았다. 김밥 한입에 오징어무침 한 젓갈에 제주 바다 한 번 흘깃, 파도소리는 기본 옵션. 대체 내가 얼마나 대단한 뷰를 원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지나가다 아무데나 세웠어도 어디든 이 정도는 기본빵으로 해줬을 텐데. 괜히 애꿎은 위장만 고생시켰다.

여유 넘치는 차 안에서의 점심식사를 상상했던 나였으나 배가 심히 고팠던 관계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다 먹고 나니 남는 건 포만감과 아쉬움. 좋은 데서 잘 먹었으면 됐지 아쉬울 건 또 뭐냐고 묻는다면 정착한 지 얼마 안 돼 다시 이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북토크 시간이 가까워졌다. 차크닉이랍시고 차 대놓고 쉰 시간보다 이동한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은 나 혼자 여행, 아쉽지만 여기까지. 이만 철수! 서귀포로 간다.

어느새 오징어무침과 온도가 비슷해진 김밥과 주변 풍경
이 보다 더 힐링일 순 없다
거대 풍차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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