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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Feb 19. 2023

생애 첫 북토크

제주에서 차박 여행 - EP Ⅱ

비록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떠나기 싫었다. 이제 막 신창풍차해안도로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기 때문. 미세먼지 한 톨 없고 하늘에 오렌지 빛이 도는 걸로 보아 곧 오렌지가 붉은빛이 되고 잠깐 보랏빛이 섞여 돌다가(이때가 선셋 골든타임) 금세 어두워질 예정. 오늘의 노을은 노을의 정석으로 아주 예쁠 거라는 말이다. 그런 노을을 등지고 난 해안도로에서 벗어나 감성보다는 속도가 우선인 제주 내륙(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의 도로를 달렸다. 목적지는 제주 독립서점, '그건, 그렇고'.


그건 그렇고, 어쩌다 북토크를 하게 됐는지 잠시 썰을 풀어보자면 벚꽃이 흩날리던 2022년 4월, 제주에서 열린 제주북페어 2022 <책운동회>에 참가했다. 행사 중 귀인(들)을 만났다. 먼저 어떤 한 분이 내 책([여행하려고 출근합니다]-깨알 홍보^^;;)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시더니 감사하게도 지갑을 열어 흔쾌히 책의 독자가 되어주셨다. 그리고는 함께 온 지인들을 불러 내 책을 샀다며 자랑까지 해주시는 게 아닌가? 그러자 다른 한 분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저희, 제주도 학교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인데 저희가 작가님들 모셔다가 북토크를 진행하려고 계획 중인데 혹시 가능하실까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네! 그럼요!"

"근데 제주도까지 오셔야 돼서... 괜찮으실까요?"

"무조건 됩니다! 제발 불러주세요!"


책 출간 후 이것저것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었지만 그중 개인적으로도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은 독자들과 만나 여행수다를 떠는 일이었다. 북콘서트, 북토크, 혹은 여행강연이라고도 부르는 그것. 출간작가로서 버킷리스트이자 꿈같은 일이라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그 일이 실제 나에게 벌어진 것이었다.(드림스 컴 츄루!)

2022 제주 북페어에서의 추억


서점이 가까워질수록 설렘과 떨림이 동시다발로 상승했다. 마지막 좌회전을 하고 직진해서 들어가는데, 어라? 서점이 보이지 않았다. 서행을 하며 간판을 찾아보지만 그 어디에도 간판이 보이지 않아 잘못 들어왔나 싶어 차를 돌리려는 순간, 북토크를 제안해 주신 임성민 선생님(이하 임선생님)께서 문을 열고 나오시며 반겨주셨다.


"오셨어요~ 와~(짝짝짝)"


버선발까지는 아니지만 먼저 나와 박수치며 환대해 주시니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주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다른 선생님들도 와 계셨고 다시 한번 일제히 박수!(짝짝짝) 기대 이상의 리액션에 몸 둘 바를 모르는 나를 위해 빈 손으로 왔냐며 진담 같은 농담을 건네시며 긴장을 풀어 주셨다. 농담이긴 했지만 아차 싶었다. 책 몇 권 가져왔어야 하는 건데. 마침 책이 완판 되어 더 사고 싶은데 못 구하신 선생님도 계셨단다. 그제야 뒤늦게 어쩌면 진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굴 탓하리오, 이 모든 게 처음인 나의 센스가 부족했다.라는 핑계로 이래저래 흔들리는 멘탈을 부여잡았다.(긴장돼서 흔들리고, 설레서 흔들리고, 미안해서 흔들리고, 그냥 계속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땀 한땀 적어 입구에 붙여주신 웰컴 멘트와 아담하면서 아기자기했던 서점 내부(당당히 한 자리 꿰차고 있는 내 책^^V)


서점 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신 수제 간식과 차를 마시며 멘탈이 조금은 정상을 찾아갈 때쯤 북토크가 시작됐다. 먼저 북토크를 주최한 선생님들, 나에게는 독자분들에 대한 소개를 임선생님께서 해주셨다. 그리고는 북토크 장소를 이곳 '그건, 그렇고'로 잡게 된 신기한 우연이자 인연이자 운명 같은 썰을 '드디어' 풀어주셨다.

사실 북토크 장소 섭외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사전에 들어 알고 있었고, 무슨 사연일까 몹시 궁금했는데 비하인드 스토리는 당일날 이야기 해주시겠다는 말에 더는 묻지 않았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북토크 일정을 잡기 위해 연락을 주셨을 때 제주도에서도 내 책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임선생님의 의견이 있었다. 나 역시 제주 진출을 생각은 하고 있었던 터라 당장 알아보겠다고 하고 제주 독립서점을 검색했다. 이때 제주에 생각보다 독립서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어느 곳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러다 문득 임선생님께서 서귀포 중학교에 다닌다는 게 생각나 서귀포에서 가장 가까운 독립서점으로 정했다. 그곳이 바로 그건, 그렇고. 그건 그렇고, 마침 임선생님이 평소 자주 놀러 가는 독립서점이 있었는데 그곳도 역시 그건, 그렇고. 자주 놀러 갔던 만큼 사장님과 친분이 있어 혹시 이 책을 아시나며 내 책을 보여주셨는데,


"네! 알아요! 최근에 작가님이랑 연락했어요. 책 입고 될 예정이에요."


와우! 서프라~아이즈. 책 입고가 결정된 후 아직 입고는 되기 전, 때마침 그 사이에 임선생님이 방문을 했던 것이었다. 생각지 못한 답변에 임선생님은 이건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며 여기(그건, 그렇고)에서 북토크를 해야겠다 결심을 하셨다고. 하지만 서점 사장님께서 이런 이벤트를 그다지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신지라(다른 이유는 아니고 그냥 부끄러움이 많으신 편이다) 처음에는 거절하셨단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은 임선생님의 끈기 있고 간곡한 설득 끝에 결국엔 기분 좋게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결과적으로 모두가 해피한 비하인드 스토리다.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E. H. Carr, 에드워드 헬릿 카-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 내가 제주북페어에 참여하게 된 것부터 선생님들이 북페어에 놀러 온 것, 그리고 내 책을 보게 되어 북토크 제안을 주신 것, 이후 장소 섭외 에피소드까지. 하나하나의 우연한 사건들이 쭉 이어지니 하나의 필연적인 사건이 되었다. 어쩌면 난 애초에 북토크를 하게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고, 나름 준비라면 준비도 해오고 있었고(보여줄 일은 없지만 강의자료를 만들어 두었고, 종종 강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그러다 마침내 타이밍이 맞아 필연이지만 우연처럼 다가온 것 아닐까.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듯이.

북토크 기념 선물(엽서, 마그넷)과 서점 온김에 책 한 권 구입했다(폴라로이드 사진은 덤)


그건 그렇고, 북토크는 아주 성공리에 마쳤다. 물론 아쉬운 게 하나도 없지는 않았지만(책을 가져왔어야 했다ㅠㅜ) 처음치고 이 정도면 선방은 하지 않았나 합리화 비슷한 자평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제 또 다음 북토크를 마음에 품고 기다려봐야겠다. 필연이라면 언젠가는 또 우연처럼 찾아오겠지.

북토크 후 기념촬영^^V 정말 즐겁고 감사했습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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