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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Feb 22. 2023

무뚝뚝 현실형제의 첫 차박

제주에서 차박 여행 - EP Ⅲ

북토크가 끝난 후 밤과 저녁 사이 즈음에서야 동생과 만났다. 휘황찬란한 간판들이 즐비한 게 제주지만 제주 안 같은(서울 번화가 같은) 이중섭 거리 한복판에서. 동생이 차에 타자마자 (엄마가 집에서 하는 잔소리 비슷하게 취조하듯이) 반나절 남짓 혼자서 차도, 스쿠터도, 그 어떤 자가 교통수단 없이 어떻게 돌아다녔고 어디 가서 뭐 했냐며 걱정 80/궁금 20으로 물었다. 동생은 살짝 귀찮다는 말투로(아마 나에게서 엄마의 향기를 느낀 게 분명하다) 제주에 도착해 버스 타고 애월에 있는 내가 갔던 김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버스로 이곳 서귀포로 이동했단다. 그러고 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 되어 나를 기다리며 이중섭 거리 카페에서 그냥 킬링타임을 보내고 있었다고. 내 탓은 아니지만(늦게 비행기를 예매한 지 탓이지만) 무려 제주까지 와서 반나절동안 밥 한 끼 먹고 시간만 죽였다 하니 괜히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제주 대중교통을 타고 다닌 덕에(언제 타보겠나?) 제주로컬 체험을 했으니 나름 특별한 경험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약간은 미안함이 퉁쳐졌다.(나중에 알게 된 팩트지만 동생은 로컬체험이고 뭐고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단다. 그냥 이동해야 하니 버스를 탔을 뿐. 고로 내가 미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말ㅡㅡ;;)


이제부터는 둘이 함께 하는 여행. 일단 제주도 식후경. 고작 김밥 한 줄 먹은 동생과 나였기에 몹시 배가 고팠다. 더구나 난 북토크 한답시고 열라게 떠들기까지 해서 그런지 배가 고프다 못해 아팠다. 뭐라도 얼른 먹어야 하는 나름 응급한 상황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동생에게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걸 먹여야 할 것 같다는 사명감에 고심 끝에 고르고 골라 딱새우회와 고등어회로 정했다. 새우라면 없어서 못 먹을 만큼 동생이 새우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몇 년 전 제주가족여행 당시 먹었던 고등어회의 여운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어 그런 동생을 위한 취존 메뉴.(를 가장한 실은 둘 다 내가 먹고 싶은 것들^^;;)

부우우웅~

차박지로 가는 길에 있는 포장 전문 횟집에서 딱새우회+고등어회 세트를 픽업해 근처 편의점에서 술과 안주를 챙겨 제주에서의 하룻밤을 보낼 곳으로 부리나케 달렸다. 북토크가 생각보다 늦게 끝난 탓에 명당을 다 뺏겼을까 봐 마음이 급했다. 웬만한 곳은 다 명당일 만큼 차박을 하기에 제주는 어디나 다 환상의 풍경을 가졌지만 그래도 개중에 명당을 찾는 데는 화장실이 가깝거나, 편의점이 가깝거나, 가로등이 있어 비교적 안전하다거나 하는 등의 베네핏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수욕장에 다다르자 명당에 대한 욕심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정갈하게 주차되어 빽빽하게 조명이 밝혀진 걸 보아하니 명당이고 뭐고 그냥 자리만 있어도 땡큐였다. 도착 시각 저녁 9시 30분. 제발 한자리만 있어라. 걱정반 설렘반으로 금능해수욕장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오예! 이게 웬걸. 두 자리나 남아 있었다. 심지어 명당이었다. 화세권에(화장실과 가까운), 편세권에(편의점과 가까운), 가세권(가로등 아래)을 모두 갖춘. 왜 이런 명당이 비워져 있는지는 모르겠으나(사람들이 안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인데) 일단 누가 차지하기 전에 지하철 착석 러쉬하는 진상 아줌마들처럼 날름 차 엉덩이부터 집어넣었다. 착석 완료! 차박 기본 세팅을 미리 해두었기에 시동을 끄자마자 트렁크를 열고 뛰어올라 벌러덩 자빠졌다.


"아~ 편하다. 야, 일단 좀 눕자."

"아이고~"


하루동안 지하철, 비행기, 버스에서 보낸 시간이 제주에서 먹고 돌아다니며 구경한 시간보다 더 많았던 동생도 구성지게 곡소리를 냈다. 자충매트와 이불로 만든 모바일 침대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는지 좌우로 뒹굴뒹굴거리며 몸에 긴장을 풀었다.

제주 밤바다 앞에서 즐기는 차박은 실시간 수면 ASMR이 따로 없었다. 너무 깜깜해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파도가 오로지 귀로만 들려와 감각이 집중된 탓인지 파도치는 리듬을 따라가다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왔다. 더 누워 있다가는 둘 다 이대로 아침을 맞이하게 될 거 같아 한껏 무거워진 몸을 악을 쓰고 일으켜 늦은 저녁상을 차렸다.


"야, 일어나! 이제 먹자."

"아이고~"


포장해 온 회세트로 소박하게 한 상 차려 본격적으로 먹방을 시작했다. 딱새우회가 처음인 동생을 위해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보였다.(사실 나도 딱새우회는 처음이었다^^;;) 하나 집어 들어 쪽쪽 빨아 딱새우 한 마리 순식간에 츄릅! 촉촉매끈하면서도 부드럽고 통통한 살이 으깨지면서 크리미한 식감과 풍미가 입안 전체로 퍼졌다. 이래서 딱새우회 딱새우회 하는구나. 풍미, 식감 모두 그냥 새우와는 같은 새우 갑옷을 입었을 뿐 전혀 달랐다. 안 그래도 빨리 먹는 우린데 맛있으니 더 빨리 먹었고 결국 게 눈 감추듯, 아니 딱새우눈 감추듯 해치웠다. 쩝... 살 때는 이 정도면 가성비 괜찮다, 충분히 배부르겠다 싶었는데 다 먹고 나니 공허한 배를 맥주로 채워야 할 판이었다. 아쉬운 대로 맥주와 오징어맛 과자부스러기로 배를 채워 거짓 포만감을 만들었다. 덕분에 뭐 여튼, 배불렀다.


흡연자들에게 담타(담배타임)가 있다면 비흡연자들에겐 핸타(핸드폰타임)가 있다. 가짜 포만감에 취해 동생과 난 고요한 금능 밤바다 앞에서 조용히 각자 핸타를 가졌다. 다음 코스를 위한 충전의 시간. 영화타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박을 하면 난 꼭 영화 한 편 보고 잔다. 비록 14인치 노트북으로 보는 영화지만 차 안에서 틀면 밀폐된 공간 덕분에 사운드바 부럽지 않은 음향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어두운 주변 덕에 대형 스크린 못지않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단, 한 가지 단점은 불편하다는 것. 차가 아무리 크다한들 2시간을 한 자세로 무언가를 감상하기에는 좁으니까. 그럼에도 차박 할 때 영화감상을 빼놓지 않는 건 역시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 뭐 거창하고 그럴싸한, 감성적인 이유를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이게 다다. 아마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차박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좋지만 심심도 하다. 그 심심함을 그냥 즐길 때 도 있는 반면 뭐라도 찾아서 함으로써 심심함을 달랠 때도 있는 법. 오늘은 영화 한 편으로 달래볼 계획이었다. 그랬다 말 그대로 계획. 계획은 계획일 뿐. 동생은 이미 땅과 수평이 되어 있었고 눈꺼풀은 중력을 이기지 못해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오늘 영업 끝. 영화는 개뿔, 역시 먹었으면 그다음은 자는 게 최고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지극히 동물적인 여행. 이게 무뚝뚝한 찐 현실 형제의 여행이다.

딱새우+고등어회 한상, 아니고 반상. 살 때는 저게 왜 그리 많아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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