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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Oct 13. 2017

폴란드의 위대한 승리
그룬발트 전투

무명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진 도브레!

(Dzień dobry!)


진 도브레(Dzień dobry): 아침인사(Good Morning!)


크라쿠프에서의 첫째 날이 시작됐다.

어제 새벽까지 내리던 비는 다행히 그쳤다. 하지만 날씨는 여전히 흐리다. 회색빛 하늘이다. 비 온 후라 추울까 했는데 기온은 어제랑 비슷하다. 돌아다니기에 딱 좋은 날씨다.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는 크라쿠프 구시가지(Kraków Old Town)다. 특별히 정한 것은 없다. 구시가지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보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힘들면 잠깐 쉬기도 하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돌아볼 작정이다. 딱 한 가지! 출발점만 정했다. 출발점은 크라쿠프 중앙역이다. 새벽에 도착해서 중앙역 주변을 거의 보지 못했다. 크라쿠프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현존하는 유일한 문도 그 근처에 있기에 중앙역에서부터 크라쿠프 구시가지까지, 중세 유럽으로의 여행을 시작해 볼까 한다.




크라쿠프 중앙역(Kraków Główny)
중앙역 근처 갤러리아 쇼핑몰(Galeria Krakowska)
영등포 타임스퀘어가 생각나는 쇼핑몰 내부, 쇼핑몰 구조는 어느 나라건 비슷한 것 같다


오늘은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폴란드 사람들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지옥철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지만 나름 많은 사람들이 정류장에서 트램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람들을 보니 왠지 승리자가 된 기분이다. 저 사람들은 출근 중인데 난 여행 중이니까. 뿌듯하다.


출근 중인 폴란드 사람들
이 때다!
대체로 한산한 출근시간 크라쿠프 거리


중앙역에서 크라쿠프 구시가지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지도 상으로 봐도 걸어서 한 5분 정도? 하지만 5분 만에 도착하기는 힘들 것 같다. 왜냐면 난 지금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으니까. 역시 별 것 아닌 것조차도 예뻐 보이는 유럽이다. 한걸음 내딛고 둘러보기를 1분, 또 한걸음 내딛고 둘러보기를 1분.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그렇게 두리번두리번 느린 걸음으로, 조금 오래 걸렸지만 마침내 크라쿠프 구시가지 입구에 도착했다.


구시가지 입구에는 구시가지로 통하는 플로리안스카 문(Florianska Gate)이 있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바르비칸(Kraków Barbican)이라는 과거 크라쿠프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요새가 있다. 요새를 둘러본 다음 문을 지나 구시가지로 들어가 보면 되겠다 싶었는데 바르비칸 뒤로 조그만 광장이 나의 레이더 망에 들어왔다. 중앙에 제법 큰 동상도 있다. 유럽광장에는 항상 동상이 있기 마련이다. 광장 불변의 법칙이랄까? 구시가지를 빨리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맛있는 반찬은 아껴두었다 맨 나중에 먹듯, 이 설렘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난 우연히 눈에 들어온 그 작은 광장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구시가지 입구 반대편의 이 아담한 광장은 얀 마테이코 광장(Plac Jana Matejko)이다. '얀 마테이코'. 딱! 들어도 사람 이름이라는 게 짐작이 간다.


< 얀 마테이코(Jan Matejko) >

크라쿠프 태생의 폴란드 낭만주의 화가. 마테이코는 조국의 몰락, 타국의 침략에 대한 항거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작품이 폴란드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특정 정치인에 대한 공개비판 이후 대중적 인기가 사그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폴란드의 국가적 아이콘으로서 후대의 미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었다.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501 위대한 화가), 두산백과


사실 난 미술에는 잼병이라 처음 듣는 이름이다. 아마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미술학도가 아니면 쉽게 접하지는 못했을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폴란드에서는 국민 화가로 불릴 만큼 위대한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름을 딴 광장도 있는 것일 테니까.


얀 마테이코 광장(Plac Jana Matejko)


광장 중앙에는 네모난 모양의 대리석 바닥 위에 세워진 조형물과 그 뒤로는 동상이 있다. 각각 무명용사의 무덤(Nieznani Zołnierz)그룬발트 전투 기념비(Pomnik Grunwaldzki)라고 한다.


< 그룬발트 전투, 무명용사의 무덤 >

그룬발드 전투(폴란드어: Bitwa pod Grunwaldem) 혹은 잘기리스 전투(리투아니아어: Žalgirio mūšis) 또는 제1차 타넨베르크 전투(영어: Battle of Tannenberg)는 1410년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 연합군이 튜턴 기사단과 치른 전투이다. 결과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이 승리했다.
무명용사의 무덤은 이 전투에서 전사한 신원을 알 수 없는 이들을 기리기 위한 무덤이다.

※참조: 위키백과


무명용사의 무덤과 기념비는 1920년 그룬발트 전투 500주년 기념으로 세워졌지만 1939년 나치 독일에 의해 철거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폴란드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나치 독일 의해 불명예스럽게 또 한 번 희생당했다. 폴란드도 우리나라처럼 아픔이 참 많은 나라구나 라는 게 새삼 느껴진다.


무명용사의 무덤과 그룬발트 기념비


동병상련이 느껴져서일까? 난 동상 뒤에 있는 광장 벤치에 앉아 다리도 쉬어갈 겸 그룬발트 전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찾아보았다.


일단 그룬발트 전투를 이야기하려면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시기에 중세 유럽은 독일이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독일은 폴란드 북부지역에 리보니아(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를 통합한 지역)와 프로이센(폴란드 그단스크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주)이라는 지역을 건설해서 영토확장을 노리고 있었는데 이 두 지역 사이에 있는 나라가 리투아니아였다. 독일에게는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이 곳을 정복하기 위해 독일은 튜튼 기사단을 보냈고 이에 리투아니아와 폴란드가 서로 연합해서 막아냈다고 한다.


이게 1410년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 연합군이 튜턴 기사단과 싸워 승리했던 그룬발트 전투의 내막이다. 유럽 중세사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했던 전투라고 한다. 아마 독일이 이겼다면 현재의 유럽 지도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기념비 중앙 꼭대기에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당시 전투에 참전했던 폴란드 왕 브와디스와프 야기에워(Wladyslaw Jagiello) 다. 그 아래로 사면을 무명용사들이 에워싸고 있다. 하단에 방패를 자세히 보면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문양이 다 다르다. 당시 폴란드 왕국의 각 세력의 문양이라고 한다. 조국인 폴란드를 위해서 각 세력에서 모인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무명용사의 무덤이다. 무덤 앞 바닥에 깔린 대리석 묘비에는 이 곳에 유골이 있다고 쓰여있다.


폴란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과 순교자의 유골




그러고 보면 여행에 항상 즐거운 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 나라의 역사를 배우면서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래서 여행을 하면 희로애락, 모든 감정을 다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까지는 항상 즐겁고 신나는 여행만 해왔던 내가 이런 여행을 하려니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지금 난 제대로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폴란드를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로서 폴란드의 승리는 기뻤지만 승리가 있기까지 희생되었을 무명용사들을 생각하니 안타깝고 슬프다.


이 곳을 떠나기 전,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여본다.

무명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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