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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Oct 14. 2017

폴란드 국민화가, 얀 마테이코

예술로 승화된 폴란드 역사, 그 안에 깃든 폴란드인의 긍지

크라쿠프 구시가지 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얀 마테이코 광장(Plac Jana Matejko).


얀 마테이코의 이름이 붙은 광장이지만 정작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그룬발트 전투 기념비 때문에 얀 마테이코에 대한 관심은 '폴란드 국민화가'라는 것에서 그냥 그쳐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단순히 이름만 따왔을 리는 없을 터. 이름 말고도 얀 마테이코에 관한 무언가가 더 있지는 않을까? 그의 흔적이 있지 않을까? 호기심에 얀 마테이코 광장을 다시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은 그의 흔적.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룬발트 전투 기념비를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바로 왼편, 정갈하게 배치된 창문들이 인상적인 건물, 그 건물이 바로 얀 마테이코의 흔적이 묻어있는  얀 마테이코 미술 아카데미(Akademia Sztuk Pięknych im. Jana Matejki)이다.


얀 마테이코 미술 아카데미(Akademia Sztuk Pięknych im. Jana Matejki)


영어로는 'Jan Matejko Academy of Fine Arts'. Fine Arts, 즉 순수미술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다. 미술 아카데미, 미술 대학교, 쉽게 말해 미대라고 볼 수 있다.

미술 대학교에 얀 마테이코의 이름이 붙여지기까지,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얀 마테이코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얀 마테이코(Jan Alojzy Matejko)의 자화상 (출처: 위키백과)

 

1838년 6월 24일, 크라쿠프에서 출생한 얀 마테이코는 폴란드 크라쿠프, 독일 뮌헨,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이후 1864년 파리에서 열린 살롱전에서 금상을 수상하여 명성을 얻기 시작하는데, 당시 출품작이 [스카르가의 설교]다.


< 피오르트 스카르가(Piotr Skarga) >

폴란드 예수회 신부이자 설교가, 작가, 논쟁론자였던 인물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정치에 대한 개혁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폴란드 연방의 통치 계급과 종교적 관용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참조: 위키백과


스카르가의 설교 (출처: 위키백과)


얀 마테이코는 폴란드의 역사적인 큰 사건과 전투, 정치 비판 등을 주제로 한 사실적인 역사화를 많이 그렸다. 대표작으로는 앞서 나온 스카르가의 설교를 비롯해 [스탄치크(Stańczyk)], [레이 탄(Rejtan), 폴란드의 몰락], [루블린 연합], [프스코프 부근의 스테판 바토리], [그룬발트 전투] 등이 있다.


그룬발트 전투 (출처: 위키백과)
스탄치크 (출처: 위키백과)
레이탄, 폴란드의 몰락 (출처: 위키백과)
그림은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3국이 모인 의회에서 결정된 폴란드 분할에 대하여 항의를 하는 타데우슈 레이탄의 모습을 표현한다. 폴란드 분할 동의안을 통과시키고 떠나려는 의회 연합 멤버들이 이대로 떠나지 못하도록 가슴을 열고 바닥에 누워 항의를 하고 있다.


프스코프 부근의 스테판 바토리 (출처: 위키백과)
루블린 연합 (출처: 위키백과)


1873년부터 얀 마테이코는 크라쿠프 미술학교의 교장으로 일하는 한편 유럽 각지의 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후임 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야첵 말체브스키(Jacek Malczewski), 스타니스와브 비스피안스키(Stanisław Wyspiański), 요제프 메호퍼(Józef Mehoffer) 등의 유명한 예술가들을 배출해냈다.

또한 크라쿠프 천년고도의 상징인 바벨성(Zamek Królewski na Wawelu), 구시가지 중앙광장의 상징인 성 마리아 성당(Bazylika Mariacka)을 비롯하여 크라쿠프에 있는 오래된 건축물들에 대한 복원 작업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런 노력과 업적으로 크라쿠프 예술대학이 현재의 '얀 마테이코 미술 아카데미로'로서, 그의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얀 마테이코는 19세기 유럽을 휩쓴 민족주의에 힘입어 폴란드 역사를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냈다. 그림 속 역사는 과거 웅장하고 강했던 폴란드 공화국 시절의 영광을 떠올리게 만든다. 얀 마테이코가 이처럼 역사를 그림으로 담아낸 것은 폴란드인들이 과거 영광스러웠던 자신들의 역사를 잊지 말고 그로부터 용기와 희망, 그리고 지혜를 얻어 외세에 의한 국가 분할과 지배로 아픔을 겪고 있던 그 당시의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폴란드 국민들 역시 그러한 그의 뜻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얀 마테이코를 폴란드 국민화가로서 존경하고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얀 마테이코는 어쩌면 '폴란드 대표 낭만주의 화가'일 뿐만 아니라 붓과 물감으로 항거한 '민족독립운동가' 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윤동주 시인처럼.


얀 마테이코 광장의 맞은편 플란티 공원(Planty Park)에 있는 얀 마테이코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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