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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Oct 22. 2017

폴란드의 역사, 문화, 예술이 한 곳에, 플로리안스카

폴란드 청춘들의 성지

어디에나 젊음의 거리는 있다. 365일, 24시간 내내 젊은 청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거리.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거리.

폴란드 크라쿠프의 젊음의 거리는 구시가지 북단의 초입에서부터 시작되는 플로리안스카 거리(Floriańska)다. 


누군가 나에게 플로리안스카 거리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크라쿠프에서 가장 핫한 거리, 폴란드 청춘들이 들끓는 곳,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 홍대, 종로를 섞어놓은 것 같은 곳이라고...




크라쿠프 구시가지 북단의 플로리안스카 문(Florianska Gate)을 지나면 크라쿠프 구시가지로 들어서게 된다. 그와 동시에 플로리안스카 거리가 시작된다.


과거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벽에 총 8개의 문이 있었지만 현재는 북쪽의 플로리안스카 문(Florianska Gate)만이 남아있다


플로리안스카 문은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이나 남대문 격이다. 위치상 북쪽에 있으니 우리식으로 이름을 붙이면 북대문? 문 교각 중앙의 독수리 문양이 있는데 이는 옛 폴란드 왕실의 상징이라고 한다. 현재의 폴란드 국장도 바로 이 독수리 문양이다.


폴란드 국장


중세시대의 크라쿠프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성벽에 총 8개의 문이 있었는데 그중 북쪽의 플로리안스카 문만이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 좁은 문 사이로 끊임없이 왔다 갔다, 중세시대 크라쿠프와 현대의 크라쿠프를 왕래하고 있다. 나 역시 중세시대 크라쿠프로 가기 위해 플로리안스카 문을 향해 들어갔다.


세 걸음이면 통과할 수 있는 문이지만 문 안에 놓인 제단이 발걸음을 세운다. 제단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운데 놓인 검은 상자에 'OFIARA'라고 쓰여있다. '희생자'를 의히마는 폴란드어. 아마도 크라쿠프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제단인 듯싶다. 폴란드는 과거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았던 적이 있으니까. 그 시절 희생된 폴란드인들과 유태인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지나가기 전, 나도 잠시 묵념을 드렸다.


플로리안스카 문 통로에 차려진 제단




플로리안스카 문을 지나 크라쿠프 구시가지, 크라쿠프 올드타운(Kraków Old Town)에 입성했다. 입성과 동시에 플로리안스카 거리가 나를 맞아 주었다.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양옆으로 늘어선 가게의 간판들이다. 코스타 커피, 맥도널드 같은 친숙한 가게도 보이고 옷가게, 기념품점, 펍 등 다양한 상점들이 거리에 늘어서 있다. 과연 크라쿠프에서 가장 핫한 젊음의 거리라 불릴만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젊음의 향기에 여행 중 잠자고 있던 내 젊음에도 불씨가 지펴졌다.


크라쿠프 구시가지 플로리안스카 거리
구시가지 안에서 바라본 플로리안스카 문


플로리안스카 문 왼쪽 골목의 성벽에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부분이 풍경화다. 구시가지의 모습이 각기 다른 화법과 색채로 담겨 있다. 오래된 성벽과 그림들의 조합이 골목을 단숨에 예술의 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거리의 음악가들이 넘쳐나는 우리나라 홍대처럼. 이 곳에는 거리의 음악가 대신 거리의 화가가 있다.


플로리안스카 문 옆 성벽 미술관




그림이 전시된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미술을 잘 아는 사람인 척 그림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그림에 덮여있던 회색의 성벽이 다시 드러나면서 예술의 거리는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끝에 웬 뜬금없는 동상 하나가 이목을 끈다.


날개 달린 모자에 피리를 쥐고 있는 손, 로마 신화에서는 메르쿠리우스(Mercurius)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영어로는 우리가 흔히 아는 머큐리, Mercury) 그리스 신화 속 신들 중 한 명인 헤르메스(Hermes)의 동상이다.

헤르메스는 여행의 신, 상업의 신, 도둑의 신, 웅변의 신 등 여러 직책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건 '전령의 신'이다. 갑자기 나타난 헤르메스 동상이 조금 의아했는데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다. 적의 침략에 대비해야 하는 성벽 최전방에서 전령만큼 중요한 건 없을 테니까.

종교적인 의미에서(외세 침략 시 신으로부터 전령을 받기 위해) 혹은 실제 이 곳을 지키던 병사들에게 전령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성벽을 지키는 신으로서는 딱 제격인 것 같다.


장난꾸러기 소년일 것 같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Hermes) 동상, 저 작은 날개로 과연 날아 다닐 수 있을지...


헤르메스 동상 옆, 한 건물 입구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아하니 단체 관광객인데 왜 모여있을까? 궁금함에 나도 그 모임에 끼어들었다.


건물은 겉보기에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입구 위에 'MUZEUM'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저기, 혹시 여기 무슨 박물관이지 아시나요?"

"차리토리스키 미술관이라고,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래요."


차리토리스키 미술관(Muzeum Czartoryskich).

이 미술관은 고대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바르비칸에서의 불운이 여기서도 이어진다. 이 미술관 역시 하절기에만 오픈이다. 사람들이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역사가 깊은 미술관 앞에서 나 역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쯤 되니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유럽은 따듯할 때 오라고...


폴란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차르토리스키 미술관(Muzeum Czartoryskich)




거리를 수놓은 트렌디한 가게들, 오래된 성벽을 따라 전시된 그림들, 그 옆 그리스 신화 속의 한 주인공과 유서 깊은 미술관까지. 이것만으로도 플로리안스카 거리가 크라쿠프의 역사, 문화, 예술의 중심이 되는 거리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해가지고 어둠이 깔리니 거리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무엇보다 낮과 가장 다른 것이 있다면 유흥 호객행위를 하는 호객꾼들이 활보하기 시작했다는 것. 동양인인 내게 중국어,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아쉽게도 한국어는 없었다. 한국어였다면 반가움에 이끌려 갔을지도...)


오늘만큼은 나도, 여기 플로리안스카 거리에서 잠자고 있던 내 안의 청춘을 깨워보련다.

물론 어둠의 유혹들은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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