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17년 2월 23일, 더블린에 왔습니다.
작년 여름(2016), 지인이 ‘네가 공감할 것 같다’며 추천해준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영화를 보고, 저는 한 대사에 매료되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왜 고조시(영화의 배경)에 혼자 왔나요?”라고 묻자 여자는 “뭔가를 찾으러 왔어요”라고 얼버무리는데, 남자가 재차 묻자 그제야 한참을 망설이다 “재료...”라고 대답합니다. ‘재료’를 찾으러 왔어요. ‘재료’라니. 그 한 단어가 종을 치는 당좌가 되어 저의 어딘지 모를 깊은 곳을 울려 며칠간 그 재료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됐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녀는 그 재료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지만 저는 그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한국 나이로 스물아홉. 아직 결혼을 한 친구가 없어서인지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매일매일이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말 그대로 쥐꼬리만 한 월급이었지만 안정적이라 여길 수 있는 직장도 있었고, 다행히도 부모님이 결혼을 압박하는 타입이 아님에도 말이지요. 저에게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내일을 준비하는 그 시간이 가장 어지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영영 이대로 살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이대로가 최악은 아니니까. 그렇기에 더욱 이렇게만 살 것 같은 예감. 더 이상 내 삶에 새로운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잔뜩 밀려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후회되는 일 중에서도 앞으로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외국에서 살아보기’였습니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보니 왜 나는 그 흔한 경험도 해보지 못했을까 자꾸 뒤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래서 한 번쯤 여행해보고 싶었던 나라에서 살아봐야겠다!라고 무턱대고 결심했습니다.
아일랜드. 유럽 여행지에 굳이 포함되지 않는 나라. 그러나 저에겐 막연하지만 꼭 가보고 싶다 하던 그런 나라.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음악이 있고, 맥주가 있는 나라. 예전에 제가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 꼭 그곳에 가서 버스킹을 해보고 싶다고 했던, 저에겐 하나의 로망인 더블린.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듯 저에게 아일랜드는 첫인상이 참 좋았던 나라입니다. 왠지 정서적으로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까닭은 저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9시간을 거슬러 더블린으로 왔습니다.
더블린에 와 처음으로 만난 일본 친구가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You are 27 years old in here" 우연히도 스물일곱이라는 나이는 저에게 있어 꿈을 포기하고 결국 현실에 안주하게 됐던 나이였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2년 전으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그 2년 동안 제가 자의적으로 잊어버렸던 것들, 혹은 타의적으로 잃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만나보려 합니다. 되찾으려 하지 않고, 그저 새롭게 만나보려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제 인생에 있어 중요한 뼈대를 지을 재료가 될 것이라는 것만은 아주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이 페이지를 통해 제가 아일랜드에서 찾게 된 재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가끔은 더블린에서 마주친 새로운 감정에 대해, 가끔은 이 곳에서 다시 만난 오롯한 저만의 것들에 대해 말입니다.
아일랜드행을 결심하고 주변인들에게 얘기했을 때 가장 많이들은 질문이 “미국, 캐나다, 호주도 아니고 심지어 영국도 아니고, 왜 하필 아일랜드인가요?”였습니다.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할까 봐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했는데, 이 글을 통해서 답변을 드려보려고요.
“저만의 재료를 찾으러 왔어요! 왠지 여기에 있을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