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대한 고찰

#8. 익숙하고도 새로운 이름, SONG

by 송석영

태어나자마자 부모님께 처음으로 받은 선물. 그로 인해 내 존재를 자각하게 되었고,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지녀야할 수밖에 없는 것. 저에겐 ‘이름’이 그렇습니다. 아마 유치원 때부터였을 겁니다. 성이 ‘송’씨라 송아지, 송사리, 송이버섯 등 유난히 별명 가짓수가 많아, 엄마에게 별명을 붙일 수 없는 김이나 이씨처럼 성을 바꿔달라고 울고불고 떼를 쓴 적도 있었고, 조금 더 자란 후에는 반에 저와 같은 이름이 세 명씩이나 있어 성 말고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습니다.(앗 사실 제 이름은 유영이 아닙니다. 본명을 내세워 나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게 아직은 창피한 느낌이 들어 괜한 작명을...) 특이하고 예쁜 이름도 많은데 왜 이렇게 평범한 이름으로 지었냐며 엄마 아빠를 구박하기도 했었죠. 그런 제 이름이 아일랜드에서 생활하다보니 꽤 특이한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학원 첫 날, 자기소개를 하고나니 외국인 친구들이 제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겁니다. 세상에나. 한국에서는 널리고 널린 이름인데 여기서는 발음은커녕 다음 날이면 제 이름을 까먹기 일쑤였습니다. 그 친구들에게도 불편하고 저도 불편해서 결국엔 그냥 ‘Song'으로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이름이 정말 Song이냐고, 기억하기 참 쉽다고 합니다. SuperValu에 첫 출근할 때에도 Dorota가 명찰을 만들면서 이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하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그냥 Song으로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Dorota는 그래도 되냐며 그럼 참 간단하고 좋을 것 같다고 합니다. 그렇게 저는 어디서나 Song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명찰까지 Song으로 달고 나니 참 지겹고도 재미있는 농담들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Could you sing a song for me?”라든지 “What kind of song are you?"와 같은 것들. 처음엔 누군가 나에게 영어로 농담을 건네는 게 어색하게 느껴져 흐흐 부끄럽게 웃어넘기고 말았는데 같은 농담이 수십 번 반복되고 나니 되레 라라라 노래를 부르는 등 자연스레 받아칠 수까지 있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꽤 작은 명찰 안에 써 있는데도 불구, 친절한 손님들은 계산 끝에 항상 Thank you라는 말과 함께 명찰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Song이라고 이름을 불러주는 따뜻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종종 "I love your name"이라는 고백을 남녀노소 불문으로부터 듣곤 하는데 그럴 땐 Song이라는 이름 하나로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나의 이름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 엄마에게 왜 내 이름을 이렇게 지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엄마는 독특하고 딱 여자아이같은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꼭 이 이름으로 짓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이번엔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 왜 내 이름을 이렇게 평범하게 지었냐고 물어봤더니 이름은 평범한 게 가장 좋은 거라며, 어딜 가도 눈에 띄지 않고 스며 드는 게 좋다고 하십니다. 네가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서 칠순잔치를 할 때 창피하지 않기 위해 그랬다는 농담도 빼놓질 않으셨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 이름은 지극히 아빠다운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땐 가난하게 살아왔고, 당신이 열심히 일군 바탕으로 지금처럼 많이 잘나지도, 많이 못나지도 않은 자리에 서게 되었기에. 더 욕심내지 않고 내 딸들은 딱 지금 그 정도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었을 우리의 평범한 이름들. 그렇게 불만이 많았던 이름이었지만 그런 아빠의 바람을 생각하면 또 이렇게 포근해지고 따뜻해지고 그렇습니다.


가끔 친한 외국인 친구들이 저에 대해 더 궁금해지면 이름에 대해 더 자세히 묻곤 하는데, 발음하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참 귀엽고 고맙습니다. 한 친구는 저에게 “나는 네 이름이 참 좋아. Song! 이렇게 부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고 행복해져.”라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런 예쁜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미소가 지어지고 행복해진다니,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그래본 적은 별로 없던 것 같은데. 그럼 또 그 친구의 기대에 걸맞게 더 행복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 웃음을 짓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고, 또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저인데,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이렇게 더블린에서 다짐하게 될 줄이야. Song말고도 아빠가 고심 끝에 지은 제 진짜 이름까지도 말이지요. 한국에 돌아가서도 잊지 않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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