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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ul 25. 2018

오스트리아 여행기(1)

#1. 잘츠부르크로 나를 보내주시오. 제발!

2017.8.1 ~ 8.6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오버트라운-할슈타트), 비엔나 여행기




 8월 1일부터 13일까지. 어쩌면 여름 중에서도 가장 뜨거울, 그러니까 어디에나 사람들이 미친 듯이 많은 그 성수기에 우리는 첫 유럽여행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더블린으로 떠나기 전 친구와 술을 실컷 마시며 네가 있는 동안 여행을 갈 테니 어디든 같이 가자는 그런 흐릿한 약속을 했는데, 이 친구가 드디어 휴가 날짜가 정해졌다며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의 날짜를 내밀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와는 약 일주일 동안 함께 오스트리아를, 그리고 친구를 한국으로 다시 보낸 뒤 혼자서 또다시 일주일 동안 체코와 헝가리를 여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블린에 살고는 있지만 제대로 된 유럽여행은 처음인지라 비행기를 예약할 때만 해도 신이 났었는데 막상 숙소를 예약하려 하니 너무 막막해서 죽을 지경이었고 갖가지 불운마저 겹쳤던 여행이었지만 어쨌든 더블린에서 다시 이렇게 생존신고를 합니다.     


 이번 여행은 출발하기 전부터 불길한 기운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처럼 룰루랄라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계좌를 확인하고 까무러쳤습니다. 쓴 적도 없는 €140가 마이너스 금액으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근래에 쇼핑을 한 적도 없는데 뭐지 싶어 내역을 열어봤더니 어떤 호텔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맙소사! 유럽에 카드복제가 많다더니 내 카드가 복제를 당했구나 싶어 당장 집으로 가 호텔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해보니 스위스의 한 호텔이 스크린에 떴습니다. 이런 나쁜 놈의 쇄키들 내 카드를 복제해서 감히 스위스에서 희희낙락 놀고 있어? 당황한 저는 동네방네 카드를 복제당했다며 난리를 치고 해결 방법을 물어봤고 이 놈들이 계좌 잔액을 더 사용하기 전에 친구에게 전액을 송금해놓고 은행으로 한 달음에 뛰어갔습니다.     


 은행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담당부서로 전화를 걸어주었습니다. 부족한 영어로 다급한 저의 상황을 호소했고 수화기 너머 인내심이 뛰어난 아저씨가 제 말을 천천히 들어주고 이런저런 개인정보를 물어본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Miss. This is a hotel in St. Gilgen.” 저는 “그러니까요! 스위스에서 호텔을 예약한 일이 전혀 없는... 아 잠시만요. 장크트 길겐이요?” “Yes, Miss St.Gilgen in Austria.” 이럴 수가. 장크트 길겐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마냥 지난 과거의 필름이 아주 빠른 속도로 휘감아졌습니다. 그제야 저는 그 €140의 근원지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친구와 둘이 숙소와 기차를 예매하다가 갑자기 다른 친구도 함께 하게 되어 예약을 전면 수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미처 취소를 하지 못한 호텔이었던 것입니다.     


 “Oh... I am sorry. I think I might use that one.”이라는 모기 죽어가는 소리로 전화를 간신히 끊고 붉게 타오르는 얼굴을 감싸고 터덜터덜 은행을 걸어 나왔습니다. 아악!!!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런 용기는 없어 친구에게 아악!!! 하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피 같은 내 돈. €140면 SuperValu에서 3일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인데. 눈물을 머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것이 이번 여행 불운의 서막에 불과했을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모로코 탕헤르 공항 사태 이후로 비행기를 예매하거나 환승을 할 때 항공사 확인을 굉장히 철저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만나기로 했고, 저는 더블린에서 함부르크로, 함부르크에서 환승 후 잘츠부르크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또 이런 일이. 함부르크에 도착했더니 잘츠부르크로 가는 비행기가 갑작스레 취소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도 모로코에서의 그 사태가 면역이 되었는지 별로 놀라지 않고 바로 항공사 데스크를 찾아갔습니다. 최종 목적지까지의 비행기가 취소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직원이 두 가지 옵션을 제공해주었습니다. 1. 환불 2. 이번 주 일요일에 다음 비행기가 있다. 저는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Are you XXXXing kidding me?" 오늘 안에 목적지에 반드시 가야 한다고 진상 기색을 보이며 얘기하자 그제야 다른 항공사를 통해 다음 비행 편을 알아봐 주겠다고 합니다. 결제는 여기서 하고 나중에 100%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그제야 마음을 놓고 그 자리에서 엄청나게 비싼 항공권을 구매했습니다.     


 저녁 8시에야 출발이라 공항에 꼼짝없이 묶여있어야만 했습니다. 점심쯤 도착해야 했던 잘츠부르크 안녕. 따뜻한 햇볕 아래 뛰어다니고 싶었던 사운드 뮤직의 미라벨 정원 안녕. 대신 뒤셀도르프라는 독일의 생소한 공항에서 식은 피자를 먹으며 친구들에게, 엄마에게 나의 이 불운한 여행 팔자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비행 지연으로 하루라는 시간을 날린다는 게 참으로 아깝고 안타까웠지만 그래,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에서 온 나의 친구들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 우울하지 않을 수 있었던 듯합니다.      

@ 작고 한산한 잘츠부르크 공항


 드디어 잘츠부르크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여태까지 가본 공항 중(그래 봤자 몇 개 안되지만) 가장 한산해서 약간 으스스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수도원 맥주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이 많이 늦어 서둘러야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는데 ‘우와 유럽이다!’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가게마다 굉장히 깨끗하고 큰 창문이 갖춰져 있었고 마네킹이나 물건들을 볼 수 있게끔 전시해놨는데 그게 그렇게 세련되고 예쁠 수 없었습니다. 정류장에서 내려 수도원까지 걸어가는데 저 멀리 동양인 여자 두 명이 걸어가는 게 보였습니다. 역시 휴가 기간이라 여행객들이 많구나 생각하며 조금 더 가까이 걸었더니 그 동양인들은 제 친구들로 판명 났습니다. 만나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격한 반가움을 표하고 다시 수도원 맥주까지 걸어갑니다.


@ 잘츠부르크 수도원 맥주집


 문 닫을 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 수도원을 천천히 돌아볼 여유도 없이 들어가자마자 맥주잔을 하나씩 잡고 따라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이 곳에서는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지 않고, 잔이 진열된 선반에서 마음에 드는 잔을 하나씩 골라 씻어낸 뒤 직원에게 내밀면 맥주를 직접 따라줍니다. 무더웠던 날씨 덕인지, 오랜만에, 그것도 타지에서 재회한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그랬는지. 맥주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 시원하고 맛 좋았던 수도원 맥주

 소시지와 감자튀김 등, 간단한 안주거리도 하나씩 시키고. 저는 공항에서 겪은 불운을, 이미 카톡으로 한 번 설명했지만, 더더욱 실감 나게 친구들에게 묘사해주었지요. 착한 친구들은 저에게 잘츠부르크 별로 뭐 볼 것도 없었다며, 미라벨 정원 그런 거 다 비엔나에도 있을 거라며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친구들과의 첫 유럽여행. 잘 부탁한다고 그리 일렀건만, 저의 여행은 언제나 저를 수렁으로 빠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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