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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ul 25. 2018

오스트리아 여행기(3)

#3. 험난했던 할슈타트 가는 길

2017.8.1 ~ 8.6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오버트라운-할슈타트), 비엔나 여행기




 이튿날 아침에도 럭셔리 스페셜은 계속되었습니다. 뷔페로 제공된 숙소의 조식이 웬만한 레스토랑 저리 가라 수준이었습니다. 다음 일정은 오버트라운. 할슈타트의 숙소가 너무 비싸서 선택한 차안이었는데 나중엔 오히려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며 호들갑을 떨었지요. 숙소는 저희 셋이서 한 층을 다 쓰는 형태였고 별장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나'라는 존재에 비해 너무나 화려한 이 여행은 내가 이런 사치를 부려도 되는 것일까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마저 들게 했습니다. 아무튼 친구들과 다시 나갈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오버트라운 호수 근처에서 자전거가 절실히 타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두 친구를 먼저 할슈타트로 보내고 혼자서 자전거를 대여해 그 삼복더위에 페달을 열심히 밟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또 다른 재앙의 씨앗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 장크트길겐 호텔에서의 조식
@ 성수기라 방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거금 들여 예약했던 오버트라운 숙소


 처음에는 선착장까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서 배를 타고 할슈타트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선착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니 신명 나는 심장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자전거 자체도 너무 오랜만에 탔고 또 날씨가 더워 열심히 페달질을 할수록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어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지요. 자전거로 약 1시간. 그래 시간도 많겠다 한 번 도전해볼까? 그렇게 제 자신을 과대평가한 채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앉아서 쉬기 딱 좋은 호숫가를 발견했고 자전거에서 내려 물에 발을 담그며 마치 인어공주라도 된 양 'Part of your world'를 들으며 흐느적흐느적 행복감에 젖어있었습니다. 가끔 어떤 장소에서 그냥 이 노래가 듣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곤 하는데, 저에게 있어서는 그 순간이 여행을 가장 만끽하는 순간입니다. 그렇게 나만의 배경음악과 함께 오버트라운의 호수를, 산을, 하늘을 들이마시고 있었습니다.     


@ 오버트라운의 산
@ 오버트라운의 호수
@ 문제의 자전거
@ 보기보다 심한 상처, 일주일 뒤까지 지혈이 되지 않았지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다시 자전거를 끌고 할슈타트로 향했습니다. 길은 점점 험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무수한 자갈이 깔린 급경사길이 나타났습니다. 순간 브레이크를 잡으며 망설였지만 갑자기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함께 엄청난 자신감이 함께 불어 닥쳤습니다. “그래! 난 뭐든지 할 수 있다!!!” 속으로 외치며 페달을 세게 밟았고 약 30초 뒤 자전거는 왼쪽으로 기울어졌고 저는 그대로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난 뭐든지 할 수 있다!!! 이것만 빼고...” 다리가 너무 아파서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피부에 차가운 액체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자전거에 깔린 다리를 빼보니 피가 잔뜩 흐르고 있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고 있던 샌들의 끈도 끊어져있었습니다. 주변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없었고 저는 몸을 일으켜 끊어진 샌들을 발 안쪽 힘으로 힘껏 지탱하며 자전거를 다시 끌고 호숫가로 들어가 상처를 우선 물로 헹궜습니다.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할슈타트까지 40분. 다시 되돌아가는 건 20분. 어느 쪽으로 가도 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그냥 할슈타트로 가는 편이 더 나을까 고민했지만 상처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일단 수습부터 하려면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싶었습니다. 그 와중에 그 먼 길을 걷는 것도 무리라 또 겁대가리 없이 내리막길을 슝 하고 내려가고 빠르게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왜 그렇게 여행을 다닐 때마다 비상약을 챙기라고 했는지 그제야 뼈저리게 깨닫고 역시 엄마의 가르침은 항상 옳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다행히 오스트리아에 오기 전에 엄마의 호통이 떠올라 밴드 및 연고를 준비해 왔고 응급처치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친구들에게 상처 사진을 찍어서 보냈더니 ‘내 이럴 줄 알았다. 너를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라며 쓴소리를 했고 저는 결국 자전거를 얌전히 반납하고 할슈타트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야만 했습니다.     


@ 할슈타트의 아기자기한 상점들


@ 할슈타트
@ 할슈타트2
@ 조금 상업적으로 느껴졌던 할슈타트


 할슈타트는 사실 우리가 오스트리아행을 결심했던 계기였습니다. 여행책자의 사진을 보면서 마치 솜사탕을 만드는 아저씨의 손놀림을 보며 입을 헤 벌리는 아이들처럼 감탄했고 그래서 낙찰했던 곳.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는지 할슈타트에 내려서의 첫인상은 그리 환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조금 인공적이고 상업적인 마을로 느껴졌고 우리가 머무는 오버트라운이나 전 날 지냈던 장크트길겐의 마을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수제비누나 목각인형 가게가 줄지어있어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친구들과 서로 사진을 찍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지요. 저녁 배를 타고 오버트라운으로 돌아갔고 스테이크를 굽고 라면을 끓여 나눠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간 바빴던 일정 탓에 나누지 못했던 깊은 얘기도 그 날 저녁만큼은 더 미루지 못하고 털어놓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혼자 일찍 눈을 뜨게 되어 베란다 의자에 앉아 숙소 앞의 산을 바라보는데 그 순간이 너무 평화로워 나의 일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평화라는 느낌을 이렇게 멀리 떠나오기 전까지 완전하게 느꼈던 때가 언제인지 떠올려보려다 그게 굉장히 까마득한 과거였을 거라는 추측과 함께 다시 한번 나의 결정에 감사했던 아침. 요즘 나는 더블린의 작은 방 침대 안에서 가만히 꼬물거리다가도 평화를 느끼고는 혼자 웃고 아이 좋아 이불속에서 발차기를 하는데. 그런 행동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는 게, 그게 신의 계획이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덕이든 과분한 나의 일상에 감사하다고. 그런 생각을 작은 노트에 적고 있었습니다.


@ 평화로운 오버트라운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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