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라하의 밤에는 테테의 '저녁'을 들어요
2017.8.6 ~ 9 체코 프라하, 체스키크룸로프 여행기
다음 날엔 일찍이 프라하성으로 올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로 꼽혔다던 곳으로 올라가 인파가 몰리기 전에 급한 사진을 찍고 천문시계를 보러 갔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피조물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랬는지 캐리비안베이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커다란 해골에 물이 잔뜩 채워져 물이 떨어지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하필 시계가 공사 중이라 완벽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11시가 되자 종이 울리며 움직이는 해골들, 성인들을 바라보며 시침과 분침이 하나가 되기까지 아주 초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죽음과 생명에 대한 심오한 의미를 담았다는 이 시계 앞에서, 나름 복잡한 제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엔 너무 시끄러웠기에 얼른 그 자리를 빠져나와 다시 성비타성당으로 올라갔습니다.
저에게 성당은 꽤나 많은 추억을 지닌 곳입니다. 어린 시절 그리고 청소년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곳. 그래서 어쩌면 나의 인격형성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정해볼 수 있는 그런 장소지요. 지금은 고해성사를 안 한지 약 10년이 되어갈 정도로 날라리 신자이지만 여전히 제가 다니던 성당에 들어설 때면 여전히 저는 어떤 향수에 젖는데, 이렇게 처음 보는 성당일 지라도 특유의 성수 냄새랄까, 신부님들의 표정이랄까 그런 것들이 저를 굉장히 숙연하게 만듭니다. 특히 프라하 성비타성당을 찬찬히 둘러보면서는 이상하게 저의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레 많이 보고 싶어져서 성당에서 나온 후에는 성비타성당이 그려진 엽서를 하나 사서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 자리에서 바로 부쳤습니다. 그리운 나의 집으로.
성비타성당에서 내려오는 길에 황금소로를 둘러보는데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아(프란츠 카프카의 집도 있습니다!) 친구들을 위한 기념품을 하나씩 사들고 전망이 좋은 카페에 앉아 프라하의 적갈색의 지붕들을 한참이나 내려다봤습니다. 체코 사람들은 본인들이 얼마나 예쁜 집에서 살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혹은 나도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익숙한 것들이라 그것들이 얼마나 좋은 건지 알지 못하는 건 아닐까 경계하기도 하며. 태양이 너무 뜨거워 숙소에 들어가 낮잠을 잠깐 자고 다시 하멜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하멜 시장이 있는 거리를 바라보니 내가 정말 외국에 나와 있구나 왠지 모를 실감이 느껴집니다. 과일을 한 바구니 사서 거리를 걸으며 오독오독 씹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는 다시 한번 야경을 즐기러 까를교부터 구시가지, 그리고 강가를 거닐었습니다.
해가지는 까를교에서 저는 테테의 ‘저녁’이라는 곡이 무진장 듣고싶어져, 그 자리에서 노을을 보며 그 음악을 감상했습니다. 혹시 테테님이 여기서 이 노래를 작곡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제가 바라보는 장면에 녹아들어 또 이상한 행복감에 혼자 젖어있었습니다. 다리 위에는 다양한 버스커들이 있었는데 바이올린, 트럼펫, 카혼 등 언뜻 다 어울릴 수 있을까 싶은 악기들이 해가 저물 듯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참을 서 있다가 왠지 모르게 제가 그동안 상처를 준 사람들이 떠올라 괜한 죄책감에 그들에게 대신 반성의 동전 몇 잎을 던져주고 계속 걸었습니다. 쓸쓸해지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던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은 내일에 대한, 나를 위한 계획보다는 거꾸로 거꾸로 나와 관련된 타인에 대해서, 특히 내가 아프게 했을 타인들에 대해서 짙게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