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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ul 26. 2018

체코 여행기(3)

#3. 엄마가 된다면 다시 찾을, 체스키크룸로프


2017.8.6 ~ 9 체코 프라하, 체스키크룸로프 여행기




 프라하도 이제 안녕. 체코의 또 다른 마을 체스키 크룸로프로 향했습니다. 달뜬 마음을 대변하듯 이어폰 속 음악은 노리플라이 3집으로. 체스키에 도착하고 울퉁불퉁한 바닥 위로 캐리어를 끌어가며 언덕길을 헤쳐갔더니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아기자기한 이 동화 같은 마을은 단번에 저를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프라하에서 만났던 동행 두 친구가 체스키 크룸로프에 갈 바에는 프라하에 하루 더 있는 게 낫다고 했는데,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입니다. 이렇게 예쁜 곳이 있다니! 그 날은 와인 한 잔 하지도 않았는데 잔뜩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를 못했습니다. 우선 숙소를 찾아 짐을 맡기고 바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리 근처 개울가에서는 마치 우리나라 가평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통통배라든지 물놀이 공이라든지 그런 휴가철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날도 더워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지요.     


@ 물길이 저를 반기며 더 힘차게 달리는 듯 했습니다
@ 크룸로프 성으로 이어지는 길
@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들
@ 빨리 짐을 놓고 올라가야지
@ 체스키 크룸로프 성


 체스키 크룸로프 성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해서 티켓을 먼저 사고 다시 마을로 내려와 천천히 거리를 구경했습니다. 누군가는 그냥 '작은 프라하'라고 했다던데 저는 프라하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을 중심으로 오밀조밀 생겨난 듯한 상권. 걸어 다니는 골목골목마다 안 예쁜 구석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예쁜 식당에 들어가 맥주도 한 잔 마시고 그렇게 또 한참을 걷다 조용하고 아늑한 성당 한 켠 정원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그 순간을 담고 있었습니다. 크룸로프 성에서는 영어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는데 그중에 독일인으로 보이는 가족이 함께 있었습니다. 엄마가 영어 가이드를 들으면 다시 아이에게 독일어로, 아주 작게 소곤소곤 통역해주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멋있고 또 환상적이던지. 한 번도 엄마라는 꿈을 제대로 꾸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날 그 모습과 바깥 개울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나중에 나의 아이들을 데리고 이 곳에 다시 오고 싶다고 그런 섣부른 다짐을 해버렸습니다.     


@ 성에서 내려다본 전경
@ 체스키 크룸로프
@ 분명 설명을 열심히 들었는데. 한 영주의 성이었다는 것만 기억이 나는군요
@ 체스키 크룸로프 성에는 곰이 살고 있어요
@ 그늘에서 잠시 쉬기 좋았던 공원
@ 프라하와는 또 다른 매력


 해가 저무는 모습을 한 자리에서 가만히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지구 반대편 땅을 한켠씩 밟아나가며 길을 수없이 잃고, 넘어져 피를 일주일 동안이나 흘리면서도 잠깐의 행운에 엄청나게 행복해하는 그 여정들에, 문득문득 아무것도 알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구나 하며. 언젠가는 선명해지는 날이 올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사람인지, 그런 윤곽들을 조금이나마 잡을 수 있는 날이 올는지. 하지만 생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막막함이 아닌 호기심으로 변질되고, 기대감으로 덧칠되고 있는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내일이 궁금해진다는 건 참으로 좋은 기분이구나 하며 그렇게 체코에서의 마지막 밤을 재웠습니다.     


@ 체스키 크룸로프에도 어둠이 찾아옵니다
@ 범상치 않은 구름
@ 불이 하나씩 켜지고
@ 여전히 시끌시끌한 도로
@ 마지막 코젤을 마시며
@ 성에 다시 한 번 찾아갔습니다
@ 안녕. 꼭 미래에 아들 딸들 데리고 다시 올게:)



@ 체스키 크룸로프에 뜬 쌍무지개

 다음 날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타러 역으로 갔습니다. 아침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 힘겹게 기차역까지 올라왔는데 기차역에 앉아 하늘을 보니 쌍무지개가 떠있었습니다. 쌍무지개를 본 건 처음이라 너무 신기하고 어떤 행운의 상징처럼도 느껴져 사진을 잔뜩 찍어 친구들에게도 전달해주었습니다. 그 날은 정신을 바싹 차리고 있어야만 했던 날인데 기차를 3번인가 갈아타야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중간 환승구역에서는 환승시간이 4분밖에 되지 않아 기차가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다음 열차를 놓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 4분 만에 환승이 가능하니까 이 사람들도 티켓을 팔지 않겠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열차에 탔습니다. ‘OBB 기차’하면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의 낯선 이와의 로맨스를 자연스레 떠올리고 또 기대도 했지만 이는 저에게 엄청난 사치였습니다.     


 열차에 있는 내내 열차가 지연됐는지 아닌지 검색하느라 바빴고 결국 몇 분씩 지연되는 열차를 보며 망했다 싶었습니다. 역에 내리기 전에는 아주 지연이 확정되어 승무원에게 다음 열차를 탈 수 있는지, 탈 수 없다면 부다페스트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는데 그는 ‘No worries. You can’이라고 아주 느긋한 표정으로 성난 말을 가라앉히듯 ‘워워’ 합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캐리어를 들고 폐가 터지도록 뛰어 승강장으로 올라갔지만 다음 열차의 문은 이미 닫혀있었고 곧 출발해버렸습니다. 왜 자꾸 나에게 이런 일이... 너무 어이가 없어 멍하니 서 있다가 옆 플랫폼을 봤는데 구세주가 이 열차를 보내신 걸까요? 'Wien-Budapest'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건 내 잘못도 아니고, 열차 시간표를 이렇게 짠 탓 1번. 분명 다음 열차 승차가 가능한 지 물었는데 탈 수 있다고 말했던 승무원 탓 2번으로 정당방위다 자식들아. 검표원이 물어보면 아주 열을 내며 선방을 날리겠다는 기세로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이윽고 검표원이 표를 하나씩 검사했고, 저는 그냥 제 표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그는 ‘Thank you’ 짧은 고마움을 표하고 가버렸습니다. 표를 제대로 검사하지 않고 'Wien‘까지 가는 부분만 보고 펀칭한 느낌이었습니다. 어쨌든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이 기차를 타면 제가 놓친 기차보다 더 빠르게 비엔나까지, 그리고 더더욱 빠르게 부다페스트까지 직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비엔나에서 분명 사람들이 많이 탈거고, 그럼 무임승차(돈 냈으니 무임승차는 아니겠지요)가 탄로 날 것 같아 비엔나에서 내려 놓친 기차를 다시 잡아 타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랜 이동시간 끝에 부다페스트에서 내렸습니다. 생각보다 역이 굉장히 컸는데 나오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울면서 저를 잡으며 크로아티아로 돌아가야 하는데 신용카드가 부러졌고 현금이 하나도 없다고 티켓을 하나 사달라고 하는 겁니다. 순간 그 눈물이 진짜인가 크로아티아라니 내 친구네 나라잖아 하며 고민했는데 워낙 이런 사기꾼들이 많다는 걸 뒤늦게 떠올리고 미안하다며 돈이 없다고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오는 길에도 만약 진짜로 현금 한 푼 없이 카드도 부러진 운이 지지리도 없는 아저씨면 어떡하나, 내가 그의 입장이었으면 어떡하나 하는 오지랖을 부렸습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일단 스타벅스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샷하고 더위를 식혔습니다.


* 분명 여행하면서 설명도 열심히 듣고 이것 저것 찾아본 것도 많았는데, 저의 나쁜 머리는 왜 벌써 다 잊어버린 것일까요. 곧 꽃할배리턴즈에 체스키 크룸로프가 나오니, 여행하며 놓친 것들을 다시 살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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