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나에게 최면을 거는 일들
폭설이 휩쓸고 간 3월 초의 더블린은 한동안은 또 따뜻했습니다. 특히 어제는 봄이 왔다고 살랑살랑 꼬리 치는 빗줄기들이 방의 어두운 커튼을 뚫고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그 햇살은 게으른 저를 자동적으로 일으켜 학원까지 걸어가게도 만들었지요. 그런데 오늘은 또 거센 바람과 함께 비가 잔뜩 내리고 있습니다. 학원은 앞으로 약 한 달 반 정도 남았고, 그간 결석이 잦았던 지라 남은 기간 동안은 100% 출석하리라 바로 어제 다짐했건만 흐린 더블린의 날씨는 또 저를 이렇게 나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책을 읽고 있다가 문득 궁금해 다시 창밖을 자세히 봤더니 바람은 불지만 비는 오고 있지 않았습니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빗방울들은 아마 제가 일어나기 전에 왔던 것들의 잔해였나 봅니다.
늘상 흐린 날씨인지라 이런 일이 많습니다. 아르바이트면 몰라도 학원 출석엔 의무감이 없다 보니 날이 좋지 않으면 유혹이 즉각적으로 시작되어 버립니다. 오늘은 바람이 거세서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비가 많이 오는 줄 알았지만, 그 전에는 외출이 그리 어렵지 않을 보슬비 정도임에도 불구 날씨를 탓해가며 학원에 가지 않았던 적도 사실 많았지요. 비가 내리는 건지,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전자가 더 마음에 드는군! ‘눈 가리고 아웅’이라더니. 다 알면서도 나를 속이는, 최면을 거는 일은 왜 질리지도 않는 걸까요. 그런 일은 저에겐 어떨 때는 단념에 대한 자기 위로를 위해, 또 어떨 때에는 놓지 않으려는 집념을 위해서 필요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단념’이란 하고 싶은 일에서 실패했을 때, 제가 응해야만 했던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오랜 꿈이었던 라디오 PD 공채시험에 수차례 도전 끝 결국 고배를 마시고 부모님과의 도전 연령 합의 시점(한국 나이 26살)이 종결되었을 때. 사회적인 시선과 현실적인 조건에 부딪혀 전혀 관심도 없던 곳에 눈을 돌려야만 했을 때. 금방 빛을 보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될 거라 생각했던 일에 정말로 ‘실패’라는 걸 겪고 나니 당장 몇 개월은 어지럽기도 하고 갈피를 잡지 못했지요. 그래도 저라는 인간은 생각보다 적응력도 대처능력도 신속했습니다. 결국은 그래도 희미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로 취직을 하게 되었고 남들에게 흔하지 않을 경험을 그곳에서 해보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2차 단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 계획대로 라디오 PD가 바로 되었다면 소년원 아이들의 'Second Chance'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는 평생 갖지 못했을 거야!’
집념은 보통 사랑에 대해 행해졌습니다. 호감이라는 게 저에겐 흔한 일이 아니라 한 번 어떤 이성적인 감정이 시작되면 꽤나 강렬한 사랑을 느끼곤 했지요. 여자로서를 뛰어넘어 이 세계에 실존하는 한 인간으로서 가장 큰 행복감을 맛보게 해주었던 그는, 또 한편으로는 같은 크기만큼의 아픔을 주기도 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나는 네가 그를 그만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저는 그를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지요. 그를 만나기 전까진 저 같은 여자를 보면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는데, 이런 사랑을 경험해보니 그들이 그토록 피를 철철 흘리며 가시 돋친 선인장을 끌어안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와의 관계가 지속되면 속 깊은 상처가 곪을 거란 걸 알면서도 ‘그래도 나는 그로 인해 이만큼이나 행복한 걸’하며 제 눈을 스스로 찔러 저의 눈을 가려가며 끝까지 붙잡도록 만들었지요.
뭐, 다 지난 일이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저 스스로 최면을 걸어야만 했던 일들은 전부 저의 쓰디쓴 아픔을 덮기 위함임을 깨닫습니다. 아마 ‘눈 가리고 아웅’은 제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될 주문이겠지만 이제부터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사용해보려 합니다. ‘비가 내리는 걸까?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내 마음으로는 전자였으면 좋겠군! 비록 학원 수업은 가지 않는 것은 학생으로서의 도리는 아니지만 그냥 이렇게 집에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니 다음 날부터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 거고, 자연스레 새로운 영감이 태어날 수도 있잖아? 하는 얄팍한 기대를 걸어보면서 말입니다. 급급히 상처 투성이 과거를 덮으려는 것보다는, 현재의 내 눈을 당장 찔러버리는 것보다는, 뭐든지 일어날 수 있는 조금은 더 희망적일 미래를 위하여. 이번에는 그런 최면을 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