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인연 - Peggy Carmody

#3. 홈맘에 대하여

by 송석영


2017년 2월 23일 목요일 저녁 7시 반. 떠있던 몸을 드디어 더블린 땅에 안착시켰던 시간. 겨울이라 아직 이른 저녁임에도 짙은 밤처럼 느껴졌던 날이었습니다. 오랜 비행시간에, 생각보다 엄격했던 입국심사에 몸은 지쳐있었지만 ‘우와 더블린이다!’를 속으로 몇십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기다리고 계시던 택시 기사님을 따라 무거운 짐덩이와 몸 덩이를 싣고 홈스테이 주소가 적힌 꾸깃꾸깃한 종이를 기사님께 내밀었습니다. 이 곳에서 진짜 아이리쉬와의 첫 대화. 좋은 일들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택시에서 내려 한 자그맣고 예쁜 집 앞에서 ‘띵동’ 벨을 누르고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나오신 할머니. 그녀의 이름은 Peggy Carmody.


아일랜드에 오기 전, 홈스테이 정보에 대한 메일을 하나 받았습니다.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Peggy에 대한 설명 첫 줄. ‘Mrs. Carmody is a widow.’ 남편 분은 몇 년 전 돌아가셨고, 장성한 두 딸은 가정을 이뤄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는, 집 안에서는 엄격히 금연이라는 굉장히 딱딱한 정보였습니다. 홈스테이에 대해 워낙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우리나라 하숙집 아주머니들 같은 정이라든지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의 친절과 같은 것에 대한 기대치는 완전히 낮추고 홈스테이 기간이 끝나기 전에 안정적으로 집을 찾아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처음 Peggy를 만난 날, Peggy는 반갑게 포옹으로 저를 맞아주셨고 무거운 짐은 일단 두라며 저를 거실로 끌고 가시고는 배가 고픈지, 차를 마실 건지 물어보셨습니다. Peggy는 호기심이 참 많은 할머니였습니다. 저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해하셨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저에 대해 소개하고 한국에 대해서도 이래저래 설명해드렸습니다. 대화를 나누며, Peggy는 어떤 사람일까 슬쩍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 혹시 집 안에서 지켜야 할 룰이 있을까요?”라고 묻자 Peggy는 호탕하게 웃으며 “타카!(일본 친구) 우리 집에 룰이라는 게 있니?”라고 되물으셨습니다.


외국 홈스테이에 대해 들었던 것에 비해 Peggy의 집에서의 홈스테이는 꽤나 자유로운 편이었습니다. 가장 주의해야 했던 것은 샤워시간. Common sense로 10분을 넘기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꽤 꼼꼼히 씻지 않는, 그것도 머리가 숏컷인 여자였기에 10분이 충분했지만 머리가 긴 사람들은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빨래는 일주일에 한 번만 해준다. 저녁을 먹지 않는 날은 3시 안에 연락하기. 이 세 가지는 꽤나 엄격했지만 그 외의 것들은 딱히 제약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Peggy를 위해 부족한 솜씨로 준비한 캘리그래피 부채를 건넸더니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저의 양볼에 키스하시고는 부채를 한참이나 꼼꼼히 살피며 어디에 걸어놓을까 고민하는 Peggy의 모습에 뿌듯함이 가득했습니다.


지금 Peggy를 떠올리면 ‘귀여운 여인’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Peggy는 단 것을 참 좋아하는 할머니였습니다. 그렇지만 여느 할머니처럼 당뇨 때문에 고생 중이라 마음처럼 실컷 먹지는 못하셨습니다. 그러다 결국 도넛에 승복하여 잔뜩 드시고는 ‘오 내일 우리 딸한테 혼나겠다’라며 절규하시는, 말 그대로 정말 귀여운 할머니였습니다. Dancing with the star가 하는 일요일에 가장 행복해하시고, 합창 연습 가기 싫다며 투정하던 모습이 귀여웠던 Peggy. 제가 원래 저녁을 잘 먹지 않는데, 그걸 본 Peggy가 ‘네가 너무 조금 먹어서 너에게 받은 돈이 미안할 정도란다’라며 가끔 점심까지 챙겨주셨던, 정 많고 따뜻하신, 말 그대로 저에겐 'Home mom'이었습니다.


Peggy는 늘 저희 엄마에 대해 묻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일을 하시는지, 너를 보낼 때 많이 우셨는지 등등. 그러면 저는 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엄마에게 전화해서도 ‘엄마, 오늘 Peggy 할머니가 엄마에 대해 물어보셨다?’하고 얘기하고, Peggy와 엄마 중간에서 서로의 안부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Peggy는 두 딸을 각각 프랑스로, 스위스로 보내본 적이 있어 저희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그렇지만 나는 너의 결정이 너의 인생에도, 엄마의 인생에도 하나의 큰 기회가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엄마를 잘 위로해드리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떠날 때부터 많이 우셨던 저희 엄마는, 제가 도착하고 나서도 일주일간 눈물 없이는 전화를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Peggy가 저에게 해준 얘기를 엄마에게 고대로 전하곤 했는데, 엄마는 또 그 얘기를 듣고 울음을 뚝 그치고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결국엔 떠나보내게 될 수밖에 없는 딸이라, 지금 잠깐 연습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던 Peggy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 말. 과연 우리 엄마보다도 인생을 더 산 Peggy의 위로였기에, 그 말이 저희 모녀가 느끼는 첫 달 서로로부터의 공백을 잘 녹여낼 수 있었던 듯합니다.


가끔 학원 수업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마다, 아 다른 학원을 갈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이 학원이 아니었으면 Peggy를 만날 일이 없었겠지?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Peggy의 집에서 받은 따뜻한 마음으로 인해 아일랜드에 잘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아일랜드에 오시는 당신, 받은 홈스테이 정보에 혹시 킬마커드 로드의 Mrs.Carmody라는 이름이 적혀있다면 당신은 행운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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