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이야기

#2. '무지'에 대해 솔직해지기

by 송석영


더블린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비, 구름. 정말이지 우울하지 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하필 2월 말에 여기에 도착해서는 1년 중 최악이라는 아일랜드의 계절을 겪고 있는 것일까. 비가 많이 내리는 나라라는 걸 각오하고 왔음에도 아침에 일어나 날씨를 확인하고 실망하는 일은 어느덧 하루 일과가 되었습니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도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면 그냥 다시 집으로 돌아와 커튼마저 쳐버린 채 어두운 방안에 가만히 누워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스스로에 채찍을 가하느라 뱉지 못했던 어두운 숨을 한꺼번에 다 쉬어버리듯, 비 오는 날은 나름대로 그렇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해가 뜨는 날이면 옷장을 열어 얇은 옷을 꺼내 입고 가까운 거리라도 뛰쳐나갔습니다. 학원 앞에 St.stepthen green이라는 큰 공원이 있는데, 해가 나면 남정네들이 웃옷을 훌러덩 벗고 드러누워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해가 떴다고 날이 따뜻한 건 아닌데 왜 그러는 걸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마 저도 남자였다면 홀라당 발라당 웃옷 벗고 동네를 산책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누구보다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며 그들의 태생이 한편으론 부럽기마저 합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비가 그친 동네 거리를 걷는 중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무지개를 발견했습니다.


IMG_8264.JPG St.stevens green park (이 사진엔 무지개가 없답니다)


무지개.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천사들이 타는 미끄럼틀? 무지개 끝에 묻혀있다는 보물? 사탕같이 달콤한 것? 저는 ‘무지개’를 볼 때면 바보 같고도 지극히 ‘저’스럽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어릴 때, 저는 무지개라는 것의 개념을 ‘빨 주 노 초 파 남 보(정확히 이 색깔, 다른 색깔은 용납을 못함. 심지어 그림을 그릴 때도 정확히 이 색깔만을 사용했음)일곱 가지 색깔의 반원형’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무지개가 빛이 아니라 고체인 줄 알고 있던 겁니다. 아마 여섯 살 일곱 살 즈음, 친구들과 길거리를 걷다 친구 중 한 명이 하늘 한쪽을 응시한 채 “무지개다!”하고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다른 친구도 “어 정말? 우와 너무 예쁘다”라고, 그 친구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있었습니다. 저요? 개념부터 잘못 알고 있었는데 하늘의 무지개가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친구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한 방향을 찾아 응시하는 척하며 “와 정말이네!” 거짓으로 감탄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눈동자로만 재빠르게 무지개라는 것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무지개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무지개를 보고 예쁘다고 하는데,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무지개가 어디 있는 거지? 집에 와서도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무지개를 보고 있을 때, “어디?”라고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심지어 집에 와서도 엄마에게 “엄마, 무지개가 뭐야?”라고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그럴 용기가 없는 아이였고, 조금 자란 후에도 그런 용기는 없는 청소년이었고, 더 자란 후에는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용기도 없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에 대한 저의 태도가 그랬던 듯합니다. 분명히 모르는 것인데 내가 이걸 모른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남의 진행에 방해가 되어버릴까도 싶어 아는 듯 넘어가 버리고, 아마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너무 싫지만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 학생 신분으로 다시 돌아오니 궁금증이, 호기심이 참 많아졌습니다. 단순히 영어나 이 곳 생활뿐만이 아니라 저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생물학적 나이는 스물일곱(아일랜드에서는 그렇습니다. 올해는 내가 스물일곱이다 생각하며 살아보려고요...)이나 됐지만 저는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나 많고, 무식하다고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창피해하지 않진 않을 겁니다. 다만 모른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배우는 것에 주저하지 않아야지. 그 날, 그 무지개를 보면서 지금의 저에게, 그리고 아마 다른 편 평행 지구에서 반원형 반대편 무지개를 보고 있을 그 어린 시절의 나에게 함께 다짐을 받고 그렇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