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연 - 이스라엘과 쏘(1)

#4. 룸메이트란

by 송석영


마치 엄마 뱃속에서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좋은 영양분을 먹고 쑥쑥 크는 태아처럼, 홈스테이 생활이 그랬습니다. 비를 잔뜩 맞은 것 말고는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휘리릭 지나가고 있었고, 이제 따뜻한 뱃속에서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냥 이대로 홈스테이를 계속할까 유혹도 있었지만 뭐든 혼자 해보고 싶었습니다. 아일랜드는 지금 집구하기 대란. 알바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건 뭐, 어디서나 똑같구나 싶어 잘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 내가 내 돈 주고 집을 구하겠다는데도 이리 어렵다니. Peggy는 급하다고 아무 곳이나 가지 말고 정말 괜찮은 곳에 가야한다고 저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아직 더블린에 익숙하지 않아 이 지역이 도대체 어디인지, 홈 뷰잉을 가도 이게 괜찮은 집인지도 알지 못한 채(한국에서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단 방을 내놓으면 무조건 연락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다 정확히 홈스테이가 끝나는 날짜가 입주일이라고 적힌 한 달 짜리 단기방 구인 글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앞으로 1년 간 살아야 할 집을 구해야 했지만, 저는 제 공간이 너무 필요했기에 일단 한 달 정도 쉐어룸에 살아보고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시티센터 근처임에도 불구 방세가 꽤나 저렴한 편이었고 날짜까지 딱 맞으니 괜찮다 싶었습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브라질 남자 1명, 한국 여자 1명과 방을 같이 쓰시게 될 거예요.”라는 문장이었습니다. 브라질 남자... 방을 같이...?


물론 유럽에서는 남자 여자 구분 않고 집을 쉐어하기도 한다지만, 남자 룸메이트라니.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문장 안에서 빛나는 한 단어 ‘한국인 여자 1명’. 그래! 남자랑 둘이서만 방을 같이 쓰는 것도 아니고, 같은 민족, 그것도 여자가 둘인데 별 일 있겠어? 싶어 당장 연락해서 집을 보러 갔습니다. 피자집 위에 있는 작은 빌라의 2층이었고, 집은 생각보다 넓고 괜찮았습니다. 여행 때문에 집을 잠시 비우게 되어 사람을 구하게 되었다는 일본인 메이의 안내를 시작으로 집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그 집에 살고 있는 세 친구들의 얼굴도 보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함께 방을 둘러봤던 경쟁자 말레이시아인과 밖으로 나왔습니다.


함께 방을 둘러본 말레이시아인이 저에게 집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다른 건 다 좋은데 남자랑 방을 함께 써야한다는 게 저에게는 낯선 문화라 고민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그러네요. “It is okay. He is a gay!"


아 그렇구나. 게이, 게이 얘기만 듣고 미드로 보기만 했었지 실제로 제가 만나본 적은 없었기에 굉장히 놀라기도했고 호기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루도 되지 않아 메이에게서 ‘하우스메이트들과 논의한 결과, 너로 결정했어!’라는 면접 최종합격과 같은 문자를 받게 됐습니다. 고민이 끝나지 않았던 터라 조금만 생각해보겠다고 답변을 보낸 뒤, 정말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진지하게 카톡을 보내 저의 고민을 알리고 조언을 받기도 했습니다. 게이는 남자가 아니냐는 보수파 친구와 언제 또 그런 경험 해보겠냐는 개화파 친구 사이에서 결국 저는, 그 집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이런 고민을 했나 싶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스라엘과 쏘를 알게되지 못 했을 테고, 그랬으면 여기서 이렇게 가족이란 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걸 전혀 몰랐을 겁니다. 역시 지나고 나면 모든 게 현명한 선택이 되는군요. 다음 편엔 이스라엘과 쏘에 대해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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