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연 - 이스라엘과 쏘(2)

#5. 가족의 탄생

by 송석영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좀 벗어나나 싶었지만 대학 역시 인천으로 다니게 되었던 저는 저희 가족이 다 함께 사는 집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기숙사 생활 한 번 해보지 않았던 터라 룸메이트를 이번에 처음 경험하게 된 것이죠. 잘 맞으면 그렇게 재밌다는, 하지만 안 맞으면 그렇게 고역이라는데. 나의 룸메이트들은 어떨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비가 많이 오던 그 날, 그렇게 그 집으로 처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난 건 쏘였습니다. 뷰잉을 갔을 때 본 쏘의 첫인상은 참 도도해보였는데, 귀여운 경상도 사투리로 “언니, 짐 이게 다예요?” 물어보며 짐을 함께 옮겨주던 쏘. 한 달 동안 생활하며 지켜야 할 룰들에 대해 이것 저것 설명해주고 짐정리도 도와주었습니다. 쏘는 거제도에서 왔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자기를 위한 삶을 살고 싶어 과감히 회사를 그만 두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쏘와 조금 친해진 뒤 잠들기 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듣게 된 쏘의 이야기는 저를 너무나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명랑하고 귀여운 아이. 같은 장녀인데 부모님께 항상 받기만 했던 저로서는 저보다 어린 쏘의 그간의 인생이 참 대단하게 느껴지고 기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전편에 알려드린 대로 게이 친구입니다. “안녕? 내 이름은 이스라엘이야. 나라 이름이랑 같아”라고 본인을 소개했던 이스라엘. 그 말에 저는 “안녕? 나는 Song이야. 라라라~~ 노래처럼”이라고 대답하고 함께 웃었습니다. 미친 친화력으로 유명한 브라질 사람인데, 이스라엘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처음부터 친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앞에서도 바지를 훌렁 벗어 옷을 갈아입던 이스라엘. 당황은 했지만 이런 모습은 곧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일을 가는 날도 많아 대화를 자주 나눌 기회도 많이 없었습니다. 인사를 트고, 농담을 건네기 시작하고. 그러다 어느 날, 쏘와 이스라엘과 함께 피자를 먹으며 밤새 이야기를 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쏘의 짝사랑 상대에 대해 고민상담을 하면서부터였던 듯합니다. 그 날, 저희는 각자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본인이 동성애자인 것을 인지하게 되었던 날, 아빠와 엄마의 이혼 이야기, 쏘의 인생에 대해 들어봤냐며, 그녀는 참 어메이징 하다며. 쏘가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한 모든 경제권을 책임지고 있다는 이야기. 쏘의 부모님 이야기 등등. 이 아이들과 이야기하기 전까지 나 말고 다른 인생도 존재할거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내가 속했던 세계 반대편에서, 또 같은 한국 안에서도 우리는 각기 정말 다른 개체구나 배우게 되었지요. 이들이 거칠게 걸어온 길에 공감하기도, 놀라워하기도 하며 그 밤은 이렇게 제 기억 속에서 그들을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조각이 되었습니다.


쏘와 이스라엘, 그리고 다른 하우스메이트들은 함께 산 지 오래되어 이미 한 가족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따뜻이 대해주던 그들이었지만 그 곳에 한 달밖에 살지 않을 제가 동일한 끈끈함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한 공간 안에서 분명 본인의 영역은 나누고 있지만 서로를 생각하고 걱정해주는 마음이 보이더군요. 오래된 타지생활에 지친 쏘를 위해 다른 아이들이 서프라이즈로 몰래 준비한 브루노 마스의 콘서트 티켓은 저마저 감동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간 꽤나 열심히 살아온 거제도 처녀 쏘가 어렵게 결심해 건너온 더블린에서 이렇게 좋은 가족들을 만났다는 게 참 부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아닌 쏘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deserve'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더블린에서의 첫 부활절, 나의 두번째 가족에게 받은 계란 초콜렛들


한 달이라는 계약기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리고, 저는 또 다시 새 둥지를 찾았습니다. 이 집을 떠나기 전이 마침 부활절이었는데, 마치 산타 할아버지처럼 난로 위에 초콜릿 선물이 한가득 하더군요. 아이들이 준비해놓은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집에 지금처럼 따뜻한 마음들이 동그랗게 흐르길 바라면서, 그렇게 아마 더블린에서의 마지막 집이 되어줄 곳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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