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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ul 31. 2018

영국 스코틀랜드 여행기(4)

#4.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2017.9.6~9 영국 스코틀랜드 여행기




 ‘스코틀랜드’의 정체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된 건 정말 창피한 이야기지만 ‘브렉시트’에 대해 공부했을 때였습니다. 그때에 이미 성인이었으니 무식해도 한참 무식했던 저를 인증하는 꼴이지만 하하 이게 접니다. ‘영국’이라고 하면 잉글랜드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었는데 브렉시트에 대해 배우며 영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이루어진 말 그대로 United Kingdom임을 처음 알게 되었지요. 아일랜드행을 부모님 몰래 준비할 당시 영국에서의 유학 경험이 있는 사촌오빠들에게 조언을 얻곤 했는데 그때마다 오빠들은 “아 정말 좋겠다! 다른 데는 몰라도 한국 들어오기 전에 스코틀랜드는 꼭 다녀와라!”라고 했습니다. 아일랜드 출국 전에는 유럽여행 책을 구입해서 어디에 갈지 마음속에 정해두고 있었는데, 그 책에 스코틀랜드 목차는 없었습니다. 갈 곳이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책에 없는 곳에 가야 할까 고민을 했지만 제 핏줄들의 추천을 따라보기로 했고,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손에 꼽히게 되었답니다.     


@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 컷
@ 더블린 집과 비슷한 모양
@ 런던 집과 비슷한 모양
@ 에든버러입니다


 런던 공항에서 3시쯤 비행기를 탔고 한두 시간 내에 에든버러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예전에 SuperValu에 스코티쉬 매니저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악센트가 기억에 남아 겁을 단단히 먹었는데 웬걸, 오히려 아이리쉬보다 알아듣기 쉬울 때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시내로 가는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창문으로 보이는 시내는 런던이라는 수도에서 다시 작은 마을로 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 내내 흐렸던 런던과 달리 에든버러는 화창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찾아가는 길에서 마주친 많은 풍경들에 저는 녹아버릴 것 같았습니다. 마치 런던과 더블린의 장점만 모아둔 느낌. 새빨간 색의 런던 버스, 노란색과 하늘색으로 칠해진 더블린의 2층 버스. 에든버러에서의 2층 버스는 아주 고급스러운 버건디와 흰색의 조합이었는데, 버스마저 이 고상한 에든버러를 제대로 표현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숙소 앞 거리만 걸어도 작품
@ 앞에 걸어가는 스코티쉬 청년들이 맛있다고 하는 걸 엿듣고 들어갔습니다
@ 코딱지만한 오리요리


 부다페스트에서 베드버그 소동으로 게스트하우스 공포증에 걸렸던 저는, 차마 에든버러에서 저렴한 호텔을 구할 수가 없어 사진상으로라도 침대가 철제인지, 침구커버가 흰색인지 철저하게 확인한 뒤에 게스트하우스를 골랐고, 그럼에도 약간의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주 밝은 건물에 깔끔한 호스텔이었습니다. 짐을 풀고 조금이라도 에든버러를 걸어보고 싶어 서둘러 나왔습니다. 숙소 주변을 걷다가 배가 고파 한 펍에 들어갔습니다. 작은 맥주와 작은 플레이트의 오리요리를 시켰는데 점원이 '정말 조그만 요리인데 괜찮겠냐'라고 묻습니다. 전 양이 작아 괜찮다고 했는데, 이윽고 서빙된 음식이 정말 조그매서 헛웃음이 났습니다. 아무튼 오자마자 푹 빠져버린 에든버러에서의 일정들이 기대가 되어 잠이 오질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푹 잤더군요. 다음 날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 정도였으니까요. 어느덧 3일이 넘어가는 여행도 체력에 한계가 오는구나. 노력을 들여 체력을 키워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여행기들은 여행 당시 조금씩 적어둔 일기들을 모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다시 재구성하고 있는 글들인데, 에든버러에 있을 당시의 일기를 보면 가장 많이 쓰인 말이 “조식 진짜 맛있다.”였습니다. 조식이라고 해봤자 사실 별거 없었지만 깔끔한 통에 다양한 시리얼들이 들어있는 모습이나, 잘 정돈된 잼들에 매료되어 더욱 그렇게 느꼈던 듯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아침을 꼭 꼭 챙겨 먹게 되었고 그것은 저에게 있어 여행 중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소소한 행복이 되었지요. 배를 든든히 채운 후 다짜고짜 에든버러 시내로 향했습니다. 특이했던 건, 여행했던 어느 도시든 관광객을 위한 교통카드를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에든버러는 무조건 현금, 그것도 꼭 동전으로만 버스비를 지불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여태껏 쌓인 동전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 여기기도 했습니다.     


@ 비가 많이 내렸지만 그래서 더 운치있었던 에든버러


 에든버러 시내는 걷는 곳마다 감탄의 연발이었습니다. 어디 특정한 장소에 방문한 것도 아닌데 마치 영화 촬영장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지요. 고전적인 건물이 주는 묵직한 풍경에, 제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들어와 중세시대 거리를 걷고 있는 듯했습니다.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해있는 가운데 보슬보슬 내리는 비마저 그 운치를 더해주었습니다. 에든버러 캐슬로. 영어 가이드까지 빌려 성으로 입장했습니다. 왕좌의 게임 어느 신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은 해봤는데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성을 지키던 강아지의 무덤이었습니다. 작지만 꽃가지와 함께 예쁘게 놓인 무덤이 그들이 이 강아지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 에든버러 성으로
@ 강아지의 무덤
@ 성 내부
@ 스코티쉬 백파이프


 성을 돌아보고 다시 시내로 내려오는 길에 스코티쉬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더블린에서도 가끔 백파이프를 구경할 수 있는데 그래도 오리지널은 스코틀랜드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더 오래 연주를 들었던 듯합니다. 점심은 스코틀랜드의 대표음식인 하기스로 결정했습니다. 한 펍으로 들어가 하기스와 맥주 작은 잔 하나를 주문했습니다. 하기스는 다진 고기를 양의 위에 삽입하여 쪄낸 요리라고 하는데, 설명만 봤을 때는 순대와 크게 다를 것은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지요. 한 입. 나쁘지 않은데? 두 입. 블랙 푸딩이랑 맛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세 입. 네 입. 고기의 누린내가 살짝 올라오면서 접시를 다 비워내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하기스는 이런 맛이구나. 체험해본 것에 의의를 두며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다시 시내로 나왔습니다.     


@ 스코틀랜드 전통음식 하기스


 그리고는 에든버러 내셔널 갤러리로 향했습니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비해 확연히 규모가 작아 휴 다행이다 생각하고 입장했지요. 건물은 작았지만 꽤 많은 작품들이 있었고 재미있게 구경하고 나왔던 기억이 스무락 납니다. 에든버러 중심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스콧 기념 비을 다시 지나 칼튼 힐로 걸어가던 중 뭔가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 무리가 작은 입구로 들어가는 것을 캐치하고는 따라 들어섰습니다. 지금 다시 찾아보기도 어려운데, 공동묘지처럼 보였습니다. 사람 한 무리가 있었고 가이드가 설명을 하고 있어 무임승차를 해볼까 뒤에 바짝 붙었지만 영어도 아닌 다른 언어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음침한 날씨 한가운데 묘지에 서있으니 뭔가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 건 숨길 수가 없었지요. 점점 사람이 줄어들어 저도 종종걸음으로 뒤따라 출구를 찾아 나왔습니다.      


@ 에든버러 내셔널 갤러리
@ 거리마다 백파이프 연주자가 있습니다
@ 스콧기념비


 칼튼 힐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꽤나 가팔랐습니다. 칼튼 힐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내와는 정반대편의 에든버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해가 막 저무려고 하는 시점이라 집마다 불빛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하는 모습을 잔디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쪽에도 이렇게 많은 집들이 있구나. 그래도 나름 올해 새롭고도 많은 곳들을 둘러보고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이 많겠지. 예를 들면 에든버러에 와서도 에든버러 시내 중심으로만 걸어 다니는 것, 한국 우리 동네에서도 익숙한 곳만 찾아가는 것처럼. 관광지가 아닌 이런 속속들이 작은 마을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기도 하고, 어떻게 우리는 이 드넓은 세상 속에 점보다도 작을 법한 마을에 콕콕 찍혀 태어나게 되었을까 하는 문득 철학적인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 칼튼 힐


 저녁에는 호스텔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한다고 해서 일찍 들어갔습니다. 여태까지 수많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어봤지만 저녁식사나 모임을 제공하는 곳은 없었기에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꽤 많은 외국인들이 이미 도란도란 앉아있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스텝들의 주도로 한 명씩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저 말고 모두 독일인들이었습니다. 스텝 중 한 명이 독일인이었는데 SNS로 홍보를 열심히 했나 보구나 싶었지요. 아무튼 테이블에 놓인 라자냐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주인의 친구가 와서는 자신이 무슨 Dr.라고 설명하면서 자유의지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제 감으로는 이 게스트하우스 자체가 어떤 종교에 연관된 장소인 듯했고 이 식사자리 역시 포교의 덫인 듯싶습니다. 얘기를 들으면서 독일인 친구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둘 다 ‘어쩌지?’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웃어버렸습니다. 역시 세상에 공짜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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