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석영 Aug 01. 2018

1유로와 1,000원

#27. 화폐의 상대적 가치



 한 때 짠순이로 회사 내에서도 유명했던 저인데, 더블린에 와서 한 달 뒤 지출내역을 계산하고 나니 큰 손이 되어있었습니다. 이것은 ‘개같이 벌었으니 정승같이 쓰랴’에서 나온 지략이 아닌 순전한 화폐 계산 착오 때문입니다. €1가 동전으로 되어 있어 100원쯤 되겠거니 하는 착각. 학원을 가는 길목에 ‘Euro Giant’라는 잡화상점이 있는데, 그곳에 보통 €1짜리 물건들이 많이 팔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1밖에 안 하잖아?’하면서 사고, 불필요한 것들도 ‘€1밖에 안 하잖아?’하며 사들이다 보니 어느덧 약 몇 십만 원가량을 지출했습니다. €1가 사실은 우리 돈 ₩1,000보다 가치가 큰 것인데. 조그만 동전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다가 저를 강도질해버린 것이지요.      


 한동안 화폐 계산에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지난 8월 또 일이 터졌습니다. 에든버러 여행을 준비하며 호텔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중심지에 3박에 €70인 호텔이 있더군요. 이게 웬 횡재람. 당장 예약을 했고 여행 일주일 전까지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호텔 주소를 받아 적으려 메일에 접속했더니 이게 뭐지? 70...0? €700????? 그렇습니다. 애초에 €700을 €70으로 잘못 봤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저의 멍청함에 머리채를 스스로 잡아 뜯다가 호텔 사이트에 접속했더니 ‘환불불가’라는 네 글자가 빨간 글씨로 박혀있었습니다. 일단 반이라도 만회해봐야겠다 싶어 유럽 여행 카페 여기저기에 호텔방을 쉐어할 사람이 있는지 글을 올리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중, 에라 모르겠다 싶어 호텔에 구구절절 메일을 보냈습니다. 한 시간 후에 도착한 답장. 아직 계좌에서 출금이 되지 않았으니 'Gladly' 예약을 취소해주겠다는, 자비로운 메시지였습니다. 


 퇴계 이황이나 세종대왕님을 본 지도 어언 1년이 훨씬 넘었고, 꾸준히 유로로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통화 개념 습득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돈을 쓸 때면, 늘 머릿속으로 원화로 얼마쯤 된다는 것을 곱씹은 다음에야 유로로 계산이 가능해집니다. ‘통화’라는 개념은 저에게 늘 절대적인 가치였는데, 갑작스레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니 혼란스러움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단 통화뿐만은 아니겠지요. 한국이라는 배경 안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나의 통념이나 관습 같은 것들.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마저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더블린에 와서야 깨닫습니다. 어찌 보면 60억 사람마다 인생은 모두 다른 모양으로 빚어지고, 그렇기에 상대적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왜 그걸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을까요.      


 어릴 때부터 비교적 명확한 저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고, 늘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는데. 좁디좁았던 저의 잣대로 누군가를 섣불리 선망하기도 하고, 함부로 비난하기도 했던 지난 나날들을 반성합니다. 다양한 배경에서 온 사람들과 부딪히며 배워가는 지금에도,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겠지요. 어쩌면 죽는 그 날까지 세상 모든 이치를 깨달을 수 없을뿐더러, 다 알려하는 노력조차 욕심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더 많이 마주하고 마음을 열어 최대한을 포용하고 싶다고 희망합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그저 절망적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서른이 되어 갖게 된 장래희망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이렇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점점 더 구체적으로 진화하는 듯하여 조금씩 더 재미있어질 것도 같습니다.


동전 하나에 이런 거창한 고민을 하다니, €1의 값어치는 실로 어마어마하군요.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위염이라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