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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Aug 05. 2018

영화 '원스'

#28. 왜 하필 아일랜드에 왔어요?


영화 전반적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하필 아일랜드에 왔어요?” 뉴욕이나 런던에 갔다면 이런 질문 따위는 받을 필요도 없었을까요. 더블린에 오는 것은 꽤나 의아한 일인가 봅니다. 한국말로도 구구절절 내막을 늘어놓기 귀찮은 저에게, 영어로는 더 복잡스러워 대충 둘러댈 때도 많았지만 가끔은 굳이 다 설명해주고 싶은 이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럼 저는 꼭 영화 ‘원스’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놀라운 건, 정작 아이리쉬 중에는 ‘원스’를 아는 이가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런던’보다 ‘더블린’을 택한 몇 가지 이유 가운데에는 ‘원스’가 있습니다. 딱히 영화를 보고 엄청나게 깊은 감명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거나, 최고의 스토리라며 칭송했던 적은 없습니다. 다만, 허름하고 우중충한 더블린의 배경이 어쩐지 저의 한 부분에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영화 <원스> 포스터


 영화의 첫 장면은, 제가 더블린에 와서 제일 먼저 방문했던 Grafton street에서 시작됩니다. 거리에서 홀로 연주하며 노래하는 주인공, 글랜 핸사드. 그 옆의 한 노숙자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기타 케이스를 훔쳐 달아나며 St. Stephan's Green 공원으로 시점은 이동되지요. 그들이 싸우면서 ‘For god sake(포곧세이크)!’, ‘Give me FIVE(포이브) then!’ 하는 장면에서는 요즘 매일 듣는 아이리쉬 특유의 악센트를 감지할 수 있어 웃음이 터집니다. 강도질을 당했음에도 노숙자에게 약값 €5를 쥐어주고 포옹을 하며 그를 그냥 보내는 것은, 유독 그가 착한 성정을 가졌다기보다는, 아이리쉬가 가진 특성임을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저녁, 텅 빈 거리에서 절규하듯 노래하는 글렌. 그에게 10c를 선뜻 던져주며 다가오는 여주인공, 마르게타 이글로바. “와우. 10c라니. 기분 째진다!” 전형적 아이리쉬식 농담을 건네는 글렌과 이를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체코 여자 마르게타(본래 ‘항상 진지하다’라는 게 체코인에 대한 이미지라고 합니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고작 10c 지불해놓고는 '누구를 위한 곡이냐', '아직 사랑하냐'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합니다. 어쩌다 보니 그는 평소에는 아버지의 청소기 수리점에서 일하고 있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하게 되었고, 그녀는 그렇게 청소기 수리 약속까지 성사시킵니다. 다음 날, 진짜 청소기를 끌고 온 그녀. 음악 얘기를 하면서부터 부쩍 가까워진 그들. 마르게타(사랑이 될지도 모르는 그녀가)는 글렌의 생계수단인 청소기를 끌고, 글렌은 본인의 꿈인 기타를 짊어진 채, 그렇게 번잡한 더블린의 거리를 걷습니다. 


@ 그들의 첫만남


 한 악기 상점에서 그들은 첫 협연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코드를 바꿔라. 이 음이 아니고 저 음이다. 내내 잔소리를 하는 그에 맞춰 그녀는 천천히 건반을 누릅니다. 낯선 악보의 후렴을 거듭 연주하면서 이내 그와 매끄러운 화음을 만드는 그녀. 이 영화의 대표곡 'Falling Slowly' 그것은 마치, 그녀의 음악에 매력을 느껴 약간은 증폭된 그의 마음과 그의 음악에 대한 그녀의 호기심이 아주 조심스럽게 맞닿은 지점을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 그들의 첫 협연


 약속한 대로 아버지의 가게에서 청소기를 수리해준 그는 그녀를 아주 사적인 공간, 본인의 방으로 초대합니다. 그녀는 하룻밤을 보내자는 그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다음 날, 글렌의 사과를 받은 그녀는 그를 그녀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러나 글렌과는 다르게 그것은 그녀의 삶으로의 초대였습니다. 엄마와 딸 이본카가 있는 집, 다시 말해 그녀가 책임지고 있는 존재들이 있는 장소로 말입니다. 글렌에게 가사를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마르게타는 그 밤에, 작동되지 않는 CD Player의 배터리를 사기 위해 딸의 저금통에서 돈을 뺍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잠든 딸에게 'I will pay back'이라고 약속을 하지요. 그리고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 밤을 유영하 듯 노래를 부릅니다. 'If you want me'를 부르는 마르게타의 모습은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자유롭습니다.


중략


 결국 글렌이 런던으로 떠나는 날은 다가왔습니다. 만나봤자 불장난밖에는 되지 않을 거라며 끝내 나타나지 않은 마르게타. 둘은 결국 재회하지 못합니다. 글렌은 그녀의 집에 피아노를 선물합니다. 어쩌면 비좁은 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꽤나 큰 피아노를 말입니다. 처음 원스를 봤을 때는 참 싱거운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더블린에 와서 다시 보니 정처없이 떠돌던 각자의 꿈이 더블린 거리 한 지점에서 만나 '단 한 장의 앨범'으로 남은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Play it again." 당장 내일 런던으로 간다는 아들의 통보에도 태연했던 아버지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찬사를 발판 삼아, 런던에서도 그가 더 큰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현실에 발 묶여 늘 미완성이었던 그녀의 꿈을, 이제는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도 실컷 피아노를 치며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으면. 그리고 그들을 따라 더블린으로 온 나의 이상도 미완성의 단계라도 닿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 어디선가 자유롭게 살고 있을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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