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를 아프게하지 않아서 더 좋아, 세느강에서
2018.4.14~18. 프랑스 파리, 몽생미셸 여행기
어제와 똑같은 루트로 파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럽에 온 이후로 왜 이렇게 아침 식사에 환장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정갈하게 차려진 호텔의 식당을 보니 그저 행복합니다. 각종 치즈와 빵, 요거트, 과일 등을 맛있게 챙겨 먹고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다시 REN역으로. 창 밖을 보면서 참깨와 솜사탕 노래를 듣는데 그저 맑은 기운이 솟아오르는 듯합니다. 파리에 도착해서는 다음 숙소로 찾아갔는데 으악... 이게 뭐람. 나중에 친구들에게 설명할 때 “해리포터에 나오는 방 같았어!” 그럼 친구들은 “오! 그럼 엄청 예쁘겠다.” 그럼 저는 다시 “아니. 해리포터가 두들리네 집에 살 때 혼자 살던 골방 말이야.”라고 덧붙이고 친구들은 으익 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렸습니다. 엄청나게 좁고 꽤나 더러운 방. 이런 방을 Air BnB에 등록하다니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니야? 했지만, 저희가 그토록 좋아하는 생제르맹 거리에 위치했음에도 이 정도 가격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려나 싶었지요. 소파의 다리를 펴서 침대로 만든 후, 친구와 최대한 밖에서 지내다 들어오자고 다짐했습니다.
생제르맹 거리에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다 Cartering 가게처럼 생긴 곳에 들어가서 가지 요리, 감자튀김 요리 그리고 치킨 시저 샐러드를 담아와 세느강변 한 벤치에서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밝아 뿌연 아지랑이마저 보이는데, 또 그게 하늘을 예쁘게도 번져내는 듯했습니다. 다 먹고 일어나서 거리를 걷는데 친구가 약간 뾰로통해 보입니다. 한참 걷다 콩코드 광장에 가는 길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 하나를 발견했고, 친구는 주섬주섬 €10를 꺼내서 저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합니다. “Song. Grumpy 해서 미안해. 사과의 선물이야.” 햇볕이 뜨거워 갑자기 지쳤었다고 합니다.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 주변은 루브르 주변이라 저희는 다시 퇼리르 정원을 실컷 거닐다 오랑주리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미술관 안이 왜 이렇게 한적해 보이지. 왜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나. 화요일은 오랑주리 휴관일이었습니다. 당연히 월요일이 휴관일인 줄 알았는데. 슬프지만 저의 덜렁 거림을 자책하며 맥주나 마시러 갔습니다.
그리고는 머리가 뜨거운 친구를 위해 샹젤리제까지 걸어가 모자를 하나 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유독 작은 친구에게 맞는 모자를 찾기가 여간 쉽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쇼핑을 하다가 드디어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갑니다. 사크레쾨르로 가는 언덕 계단이 생각보다 높았고 주변지역은 더블린의 Talbot의 스산스러움을 연상시켰습니다. 성당 구경을 하고 몽마르트르 언덕에 여유롭게 앉아 전경을 바라보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봐 둔 스테이크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 스테이크를 봐 두었다가 친구가 불어로 웨이터에게 어떤 것이 더 맛있냐고 물었는데, 그가 친구에게 뭐가 더 부드러운 고기인지도 모르냐는 식으로 화를 냈다고 합니다.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침착해진 그가 다시 주문을 받았습니다. 양파수프와 스테이크를 하나씩 주문했고,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그래도 웨이터의 불친절한 태도에 다시는 가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해버렸습니다.
숙소에서 맥주를 꺼내 세느강으로 다시 걸어갑니다. 길목에는 여러 와인 바가 있었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이렇게 와인을 마시며 정치나 철학을 논하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놀 때도 참 고상하군. 세느강 야경은 물감처럼 예뻤고 주변에서는 하시시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그 강 앞에서 도무지 질리지도 않는, ‘내가 왜 좋아?’ 질의응답을 또 했습니다. ‘첫 눈엔 아니었지만 그냥 네가 점점 좋아졌어. 이 감정이 가짜면 어떡하지 사실 여행 중에도 많이 걱정했는데, 진짜인 것 같아. 나는 너의 고운 성정이 좋아. 장난기 어린 웃음들이 좋아. 그럼피한 그 순간도 사랑스러워. 내가 입을 삐죽 내밀며 슬픈 척을 할 때면 어쩔 줄 몰라 하며 동동이는 강아지 같은 모습이 좋아. 나를 아프게 하지 않아서 더 좋아.’ 라고. 그 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렇게 파리에서 가장 황홀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거지 같은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30대가 되니 여행이 3일 이상 지속되면 신체가 알아서 지치나 봅니다. 어제 잠들 때만 해도 그리 피곤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9시가 넘도록 늦잠을 자고 생제르맹 거리를 걸으며 빵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딱히 어딘가를 지정하고 찾아가진 않았는데, 길을 걷다 핑크빛 예쁜 가게에 들어가 한참 빵을 구경하고서는 아몬드 크로와상과 몇 가지 패스츄리, 그리고 고심 끝에 코코넛 마카롱까지 잔뜩 손에 들고 스타벅스에서 아이스커피와 함께 아침을 먹었습니다. 우와. 까다로운 입맛의 친구마저 녹이는 달콤함. 프랑스는 정말 Delicate 한 맛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달다’라는 단어의 대표 예제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카롱마저 적당히 달고 참 맛있었습니다. 우리는 좋은 볕 아래 노트르담 쪽으로 산책을 갔습니다. 성당을 한 번 더 보고는 친구가 예정시간보다 1시간 더 일찍 출발하자고 했고,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동의했는데 이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Google에 검색해본 바로는 지하철을 한 번만 타면 된다고 나와 있었는데 파업으로 인해 노선이 꼬여버린 것입니다. 다행히 시간 안에 잘 갈아타서 순조롭게 공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또 멈춘 열차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열차가 다시 출발,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고 면세점에서 와인 한 병을 사고 더블린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다시 visa 문제나 시험 등 걱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부디 모두 잘 해결되어 마음 편히 더블린의 썸머타임을 즐기고 여유롭게 글짓기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