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징카 Oct 09. 2020

핀란드대서사 10 : 산장에서 벌어진 정신없는 술파티

사우나와 핀란디아는 핀란드 여행에서 필수다

케미의 어설픈 얼음성을 구경한 뒤 정차 없이 줄곧 달려 모니오 산장에 도착했을 땐 감감한 밤이었다. 긴 시간 동안 운전해준 얀 덕분에 안전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생각없이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밤하늘을 보던 기분으로 말이다.


산장을 둘러싼 것은 온통 눈과 눈에 덮인 나무였다. 나무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같이 생겼는데 상상하는 것보다 몇 배는 키가 커서 울창했다. 핀란드의 겨울 어느 곳이나 그렇겠지만, 모우니오 산장 주변은 온통 희고 흰 눈이었다. 간간히 다른 산장들이 보였다.


우리는 마트에서 산 모든 음식들을 차곡히 냉장고에 넣었다. 장시간 여정 동안 딱히 먹은 것이 없어 모두 배가 고팠는데, 얀과 모니카가 볼로네즈 파스타를 만들어 주었다. 직접 토마토 소스를 끓여 만든 정성스러운 파스타였는데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날 만큼 충격적으로 맛있었다. 그렇게나 말이 많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 식사시간만큼은 허겁지겁 밥을 먹느라 말이 없었다. 대신 포크가 접시 긁는 소리만 났을 뿐이었다.


모두가 허기를 달랜 뒤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차곡차곡 말소리로 시끌벅적 해졌는데, 그때 얀코가 소리 질렀다.


"자! 오늘 밤은 사우나, 보드카!"


그렇게 핀란드 산장에서의 정신없는 밤이 시작되었다.



하얀 눈길과 나무 뿐인 길, 여섯 시간을 달렸다.



사우나의 나라, 핀란드.

남자 친구들이 먼저 윗옷을 벗고 사우나에서 실컷 떠들더니 곧장 괴성을 지르며 눈밭으로 뛰쳐나간다.


으으아아아아아아악


몸을 바싹 굽듯 후끈하게 만든 후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워졌을 때 뛰쳐나가 눈밭을 구르는 것. 이것이 바로 핀란드식 사우나다. 그러다가 다시


으아아아아아아악


뛰쳐나가 눈밭을 구르고 다시 사우나,

다시 괴성, 다시 사우나, 다시 눈밭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 핀란드식 사우나를 온전히 즐긴 것이다. 나를 포함한 여자 친구들도 사우나에 들어가 뜨겁게 몸을 데우고 눈 밭에서 몸을 식히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샤워를 마치고 산장 거실로 나오자 식탁에는 이미 내 몫의 핀란디아가 잔에 투명하게 채워져 있었다.


핀란디아. 이름만으로도 환상적이고 나른해지는 이것은 핀란드의 대표적인 보드카다. 무색무취의 40도의 술로 처음 맛봤을 땐 그냥 알코올을 마시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1.5L가량의 보드카 3분의 1을 마시고 한 껏 산장의 분위기에 취해버렸다. 그 덕분에 산장에서의 첫 날밤은 한 마디로 미친놈들 같았다.


보드카를 마시고, 술게임을 하고, 다들 신이 나서 춤을 춘다. 얌전하기만 했던 모니카는 갑자기 폴짝폴짝 개구리처럼 뛰어다녔다.  "Who I am? Frog!" 하는 말만 반복했고 옆에 있던 친구들도 모니카를 따라 폴짝거렸다.


얀은 자기가 앉은 의자가 엉덩이에 붙은 것 같다고 소리쳤다. 의자 다루기를 강아지처럼 하며, "난 의자 없이 절대 나갈 수 없어!" 하더니 눈밭으로 달려가 의자와 함께 몸을 던진다.


미카엘은 산장에 오기 전 자신은 술은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그 말이 무색하게 제일 먼저 취해서는 거실 식탁에 올라갔다. 사다리도 없이 점프하여 손으로 이층 난간을 잡고는 영차 하며 이층 방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걸 보던 라도는 자기도 하고 싶다며 똑같은 방법으로 이층으로 올라가더니, 동시에 내려가는 것도 잘할 수 있다며 이층 난간에서 식탁으로 내려왔다.


심지어 다른 녀석들은 이층에서 썰매를 발견하기도 했는데, "야! 이거 타자!" 라더니 계단 위에서 썰매를 탄다. 나는 뭐하는 거냐며 난 그런 짓은 안 할 거라고 했지만 여행이 끝나고 열어본 사진첩에는 소리지르며 2초간 질주하는 계단 썰매에 나도 있었을 뿐이다.



볼로네스 파스타 소스를 만들고 있는 얀
이전 09화 핀란드 대서사 9 : 겨울을 사랑한다면 라플란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