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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징카 Oct 21. 2020

핀란드 대서사 11 : 북극에서 만난 산타와 허스키

산타는 자본주의였다

어제의 미칠 듯한 숙취로 다들 어기적 어기적 일어나서는 빵과 계란으로 아침을 먹는다. 미카엘은 숙취로 아침까지 괴로워했다.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다고 하며 말이다. 라도는 컵에 우유를 따라보고, 주스를 따라보고, 결국엔 물이나 마시면서 무엇을 마시던 모두 보드카 같다며 우웩 하고 소리 냈다. 


우리가 아침시간에 숙취로 뒹굴거리며 시간을 때우는 동안 적극적인 얀과 얀코는 주변에 둘러볼 만한 것이 있는지 알아보고 오겠다며 차를 타고 나갔다. 나머지 멤버들은 외출 준비를 했는데, 가장 라플란드스러운 겨울을 경험하러 나가는 날이었다. 


라플란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일이라면-!

허스키가 끄는 썰매를 타거나, 스노우 모바일을 타고 북극 눈밭을 달리는 일, 로바니에미 산타마을에서 산타를 만나는 것, 혹은 우리가 들렸던 케미 캐슬에 가는 일 따위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먼저 허스키팜에 들려보기로 했고, 그 허스키팜은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잘 알려졌다고 했다. 단체 할인을 받아 7유로씩 내고 라운딩 투어를 한 것이었는데, 가이드가 나와 이곳저곳을 함께하며 허스키와 장소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가이드는 핀란드 사람으로, 정확한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언뜻 듣기에 "어니언"이었고 내가 "어니언?" 하니 옆에 있던 밀라가 웃었다. 어니언은 그 추운 날씨에 머리에 천두건 하나를 두르고, 허스키팜 로고가 그려진 하늘색 후드티 하나를 입고서 한 시간 정도를 우리와 함께 해주었다. 우리 모두 방한모자와 패딩 점퍼를 꽉꽉 눌러 입은 전형적인 핀란드 겨울이었는데도 말이다. 


기억나는 것은 그의 팔 어딘가에 키티 문신을 비롯한 아기자기하고 키치한 문신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의 천 두건에도 핑크색의 키티가 여러 마리 있었는데, 귀여운 허스키들이 껑충거리는 장소의 가이드로 어쩌면 제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디즈니 만화에 등장하는 허스키들은 귀여운 강아지들이지 전문 썰매견들이 아니라고 했다. 이 곳에서 기르는 허스키들은 더욱 긴 다리와 탄탄한 근육을 가지고 있어서 몇십 킬로를 내달리며 썰매를 끌어도 무리가 없는 강한 녀석들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허스키를 만난 후 산타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로바니에미(Rovaniemi)라는 이름에 도시에는 산타 마을이 있다. 어린 시절 모든 어린이들의 종교와도 같은 북극 산타의 실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 뿐만 아니다. 산타마을에는 북극 한계선인 Artic Circle 이 있다. 이 선을 넘어 북극 한계선 안으로 들어오면, 북극에 왔다는 의미이다! 살면서 북극에 가 볼일이 얼마나 있을까? 북극선을 껑충 뛰어넘어볼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로바니에미에 도착했을 때는 어둑한 밤이었는데, 그윽한 조명들이 산타마을의 분위기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곳저곳 밝은 빛 아래서 기념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고 요란하게 북극 한계선을 넘어도 보면서 잔뜩 산타 마을을 즐겼다. 


기둥에 연결되어 있는 파란 선이 북극선이다


산타마을에 오기 전 이런 말을 들었다. 산타를 만나는 순간, 산타는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은 뒤 그 나라의 말로 안녕~ 하며 인사해 준다고 말이다. 세계의 모든 언어를 알고 있다고 들었기에 산타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컸다. 


우리는 산타를 만나기 위해 어느 건물로 들어가야 했는데, 문을 열자마자 산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구역 저 구역을 걸어 지나와야 산타를 만나는 방으로 갈 수 있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산타의 집은 발랄한 분위기에 사계절이 크리스마스인 분위기를 지닌 곳이었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가 걸어 들어간 곳은 마치 롯데월드의 미스테리 어트랙션과 같이 매우 으스스했다. 


검회색의 벽지와 이상한 캐롤 노래가 나오며 거대한 톱니바퀴, 선물상자 등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친구들이 하나 같이 '와 이거 정말 무섭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심지어 내가 부모라면 절대 이곳에 내 아이를 데려오지 못할 것 같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어린이들의 환상을 충족하기에는 침침했다. 어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미스테리한 방들을 지나 드디어 산타를 만나는 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안내를 맡은 엘프가 우리에게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고 안내했다. 산타와의 사진을 원하면 구매할 수 있다며, 자신들이 사진을 찍어주고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이미 산타의 선물을 받지 못한 지 꽤나 오래된 아이들이었기에 산타와의 사진을 돈 주고 촬영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산타를 만났을 때 산타는 내게 Hello라고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산타는 슬로바키아, 체코, 러시아 말로 안녕 했지만 한국어로 안녕 할 수 없어서 매우 서운했다. 


산타의 집무실을 나와서는 툴툴거렸다. 

한국말도 못 하는 자본주의 산타!


 

낭만적인 조명이 가득한 로바니에미 산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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