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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징카 Oct 26. 2020

핀란드 대서사 12 : 설원에서 질주

스노모빌을 타고 흰 눈을 가로질렀다

흰 눈 위에 미끄러지듯 툰드라 사이를 내달리는 일은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스노모빌을 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설원을 질주한다. 세상은 온통 하얗고 바람은 차가웠다. 맨 얼굴에 맞는 바람이 코를 타고 들어와 신선했다. 이 지구에서 가장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면 바로 그 날이었을 것이다.


스노모빌은 모터가 달린 썰매로 겨울철 눈 위에서의 레저를 위해 설계된 자동차이다. 스노모빌을 타기 위해 지불했던 비용이 꽤나 비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금액이 결코 아쉽지 않을 만큼 설원 위의 질주는 인생에서 다시 없을 최고의 순간이었다.


눈 위에서 부드럽고 빠르게, 동그런 바퀴 대신 넙적한 체인으로 바닥을 달린다. 운전면허가 있어야 탈 수 있다길래 나는 얀코의 뒤에 탔다. 얀코는 헬맷 위에 고프로를 달고 우리의 질주를 촬영했다.


지구에 단 하나 밖에 없을 풍경

몇백 핵타르가 모두 새 하얗고 

그 평원을 가르는 스노모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자연을 향해 그토록 감탄했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느낌에 내가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영화를 보아도 결코 상상하지 못할 풍경 속에서

그 어떠한 감탄사도 감탄스럽지 않음을 깨달았다.


얀코의 뒤에 앉아 빠르게 눈 속 길을 달리면서 

나는 다시금 아빠 생각이 났다.

겨울과 아늑한 코티지, 하얀눈과 고요함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우리 아빠가 여기 함께 했다면

분명히 인생에서 한 번일 풍경이라며 같이 감탄하고 기뻐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어서는 우리 딸의 눈이 아빠의 눈이니까 잘 즐기고, 느끼고, 경험하라고 대답하셨던 당신의 말씀도 생각나, 경외로운 삶의 순간이었다.



스노모빌 라이딩이 기록된 얀코의 고프로 화면



추운 날씨의 라이딩에서 피부가 동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특수복을 입는 것도 필수였다. 특수복이라하면 머리에는 헬맷을 쓰고 손에는 퉁퉁한 스키장갑, 흡사 우주복 같이 생긴 오버롤(Overall)을 입는 것이다. 전신 스키복 같은 것이다. 또한 귀와 목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헬맷을 쓰기전에 파란색 내복 재질의 복면 따위를 머리에 덮어써야 했다. 그치만 눈, 코, 입만 빼꼼 나와 우스운 모습이었다. 나중에 친구가 찍어준 동영상을 보니 그 속에 내 표정이 모두 눌려있어 웃겼던 기억이 난다.



추위를 즐기는 방법! 핀란드에서 방한은 삶이다


스노모빌을 타다 잠깐 중간 지점에 멈춰서 레인디어 팜에도 들리게 되었는데, 레인디어는 우리가 흔히 아는 순록이다. 산타할아버지의 썰매를 끄는 루돌프가 바로 이 순록들이다.


그곳에서 만난 순록은 화려한 뿔을 달고 있지 않았다. 뿔은 피가 순환에 따라서 자라고 떨어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순록들은 뿔로 인해 죽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순록들은 우리의 핀란드 생활에서 때로는 얀코의 별명이기도 했다. 이유는 얀코가 순록을 닮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라플란드에 와서 우리는 순록과의 인연이 있었다. 오울루에서 이곳까지 운전해 오던 도로 위에서 순록 무리를 만나게 된 일이 있었는데 그또한 매우 신비로운 순간이었다. 여러 마리의 순록들이 일정한 속도로 느릿느릿 눈 위를 걸어 이동하는 중이었다. 차의 헤드라이트를 조명삼아 당당하고도 느슨하게 걸어가는 순록들을 보고 차에 탄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밤길을 유유히 걸어가는 핀란드 순록들



그렇게 겨울을 잔뜩 만끽하고 다시 산장으로 돌아왔다. 얀과 얀코는 산장에서의 마지막 저녁으로 피자를 만들자고 나섰다. 직접 반죽부터 굽기까지. 어제 핀란디아와 함께 비웠던 (기억엔 없었는데..) 와인병으로 반죽을 밀었다. 올리브, 페퍼로니, 토마토 등 모든 재료를 썰어서 소스를 펴 바르고 치즈를 얹어 구워낸다.


핀란드에서 노는 일은 매우 채력이 필요한 일이다. 겨울철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한복을 차려입고 밖에 나가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추운 날씨의 무거운 방한복은 여러모로 에너지 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모두 엄청나게 배고팠던 상태인지라 첫 번째 피자가 완성되고는 모두 덤벼들었다. 피자조각이 모두 사라졌다.


싫은 소리 한 번 없이 묵묵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는 친구들이 피자를 몇 판이나 구워냈을 것인가, 마지막엔 내가 만들어 보고 싶다고 나서서 와인병을 잡았다. 나의 유징카 피자도 완성되고 나서야 모두가 이제 피자는 질려라고 말했다.



뭐야 웬 계란이야.

너넨 안 넣어 먹어? 유럽에서는 엄청 일반적인데.

아니. 우리는 피자에 감자를 올려.

뭐야 웬 감자야.

너넨 안 넣어 먹어?


핀란드 산장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어설픈 피자 대화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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