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유도 삼가야 하는 봄이다.

"세상 불타는 것 중요하지 않고"라고 할 수는 없다.

by 백요선



출근길에 보는데 멀리서 개나리가 피어 있었다. 점심시간마다 산책하는 길에 말이다. 멀리서 봐도 귀엽길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나는 봄에 걷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가을에 걷는 것도 좋지만 그때는 조금 더 많이 울적해져서 봄에 걷는 것이 제일 좋다.


봄마다 생각한다. 지금이 봄이라서 다행이라고.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마침 아침에 시를 한 편 읽었다.


송승언 시인의 '사랑과 교육'이었다. 점심시간마다 산책하는 마음과 같아 스토리에 시 구절을 올렸다.

그리고 올리자마자 황급히 내렸다.



왜냐하면 지금 진짜로 세상이 불타고 있기 때문이었다.


좋은 날에 걸으면 여전히 죽고 싶다. "죽지 말라고 할 사람"도, "죽어야 할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이 마음을 표현하자고 진짜로 세상이 불타고 있는데 "세상 불타는 것 중요하지 않고"라고 할 수는 없다.


‘기울어진' 이라든가 '이러다 깔려 죽겠다'든가 하는 말을 삼가게 된 것처럼.





최근에는 몇몇에게 뒤늦은 사과를 했다.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만 4번 헤어지고 그 사람을 다시 만나는 친구에게, "네가 그러면 날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라고 하자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가 보네"라면서 관계를 단칼에 끝낸 상대 때문에 상심하는 이에게.


그간 나도 배우고 깨달은 바가 있기에 다 알 것 같아 그들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관계를 그렇게 맺는 사람은 계속 그러고 사는 거다, 전 여자친구랑도 그런 식으로 헤어졌을 거니 앞으로는 유심히 봐라, 강박적인 사람은 인생을 충만하게 사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다 등. (이건 그러니까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난 이유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나는 엄격한 사람을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그게 객관적으로 좋은 덕목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그러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다. 상담 선생님도 임상심리사로 일하는 친구도 그랬다. 세상이 이렇게나 복잡한데 엄격한 사람은 어찌 보면 성숙하지 못한 것일 수 있는데 왜 그런 사람을 좋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내가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니 필요 이상으로 과한 비판에 노출되는 거라고. 그냥 이제는 그런 걸 알게 되었다.)


다 맞는 말을 했지만 돌이켜 보니 타인이 겪은 상실감에 예의를 표했어야 하는 것 같다.

상처받은 게 자랑은 아니겠지만 부끄러워할 이유도 아니니까.




모든 것을 잊고 그는 읽기 시작했다. 김종삼 좋지? 좋아. 김춘수는? 그도 좋지. 봄이군. 전봉래도 전봉건도 다 좋아. 그는 담배를 물었다. 산등성이에 왜가리들이 하나둘 돌아와 앉았다. 산이 드문드문 지워지고 있었다. 죽은 왜가리 소리가 들렸다. 미래의 소리 같군. 그러나 새들에게 영혼을 물을 수는 없어. 나도 알아. 한 단어와 다음 단어 사이에서 그는 잠시 숨을 멈춘다. 왜가리가 활짝 날개를 폈다 접었다. 그렇지만 새들에게 영혼은 없다고. 비유가 익숙한 세계에 그는 있다. 그는 다시 읽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들은 어쩐지 아름다워. 그래. 그렇지만 이제부터 물의 비유는 절대 쓰지 말자. 그래. 그래. 아무것도 잊어서는 안 돼. 정말 봄이라며? 응. 우리는 여기에 있지? 그래, 여기에 있지. 산으로부터 어스름이 몰려온다. 봄이군. 그가 울기 시작했다.

- 김경인, 두 사람


비유도 삼가고, 타인의 아픔에도 입을 닫아야 하는 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호선 지옥철에서 시 읽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