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열렬하게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더랬다
요즘 열렬하게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더랬다.
나는 사람을 웬만하면 미워하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노력을 하는 편인데도 그랬다. 이건 내가 심성이 곱고 착해서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결국 다 내가 모든 것을 망쳐버리라는 이상한 확신 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욕하고 미워하다가도 이내 "그렇지만 그 사람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그랬을 거야"라고 말해 동조해 주던 친구들을 허탈하게 만들 때도 많았다.
- 야, 네가 갑자기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같이 욕해준 나는 뭐가 되냐?
사실 남을 마음 놓고 미워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했던 나의 기대감부터 비난을 해야 할 테고, 그러다 보면 또 남에게 쉽게 기대하고 의존하려던 나약한 나를 탓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미워지면 그 누구보다 그 사람을 옹호하고 그 사람이 하지 않은 말들까지 다 동원해서 이해해 주는 아주 이상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꽤나 타격을 입은 나와 달리 상대는 (내가 보기엔) 별로 대수롭지 않아 하는데도 그 사람이 하지 않은 속마음을 다 내가 덧붙여주다가 친구들이 븅신 같다고 그만하라고 해서 그만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아주 실컷 비아냥과 원망과 비평과 비난 대잔치를 했다. 이 미워하는 마음은 한 번 탄력을 받으면 아주 통통 튀어 올라서 나조차도 그 탄력성에 놀랄 정도였다.
그래! 내가 뭐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뭐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냥 상처받았다고도 하면 안 되냐? 늘 그런 방식으로 ‘재미로’ 시작하고 끝내는 상대에게 나만 의미 부여한 거 아니야? 가만있던 사람에게 애초에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어떻게 '갑자기' 그럴 수 있지? 그러고 나서 '예술'이라는 걸 한다고? (사실 당연히 '그냥' 그럴 수 있다는 거 나도 안다. 그 상대가 무슨 말을 했던 뭘 하든 나랑 상관도 없다는 거 당연히 안다. 상대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당연히)
나한테는 엄청 의미 있는 나의 나약한 지점이 우습게 여겨진 것 같은 경험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 상대가 나의 상처받은 마음을 '알아줘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걸 '알려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다 못한 말을 워드에 적은 다음 작가부터 브랜드 마케터,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인 친구들에게 보내 첨삭까지 요청했다. (다행히 안 보냈다. 이거 정말 좋은 방법이다. 추천한다.)
이럴 때면 나는 주로 시를 읽는다. 아름다운 순간들을 즉각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나만 이런 어둠 속에 있지는 않으리라는 위안을 받기 때문이다.
급약 처방을 하는 것처럼 나는 전 날 시집 두 권을 샀다. 요즘은 서점도 당일 배송을 해줘서 새벽에 시집 두 권이 바로 문 앞에 와있었다. 출근길에 그것들을 챙겨가지고 걸었다. 시집은 들고서 걷는 것만으로도 어떤 위안을 준다.
붐비는 지하철 2호선. 나는 지옥철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에 이렇게까지 모여있어야 할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일부러 붐비는 시간을 피해 늦게 출근을 하지만서도 지하철은 사람들로 그득그득했다.
그곳에서 시를 읽는다.
나라면
만약에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쓴다면
돌의 얼굴에 팬 보조개가 보이니?
나는 오늘도 너를 조금 보고 싶어 했단다
'조금' 보고 싶어 했다는 말이 퍽, 귀엽다. 마아아니이--가 아니라 '조금'이라서.
부담스럽지 않은 깨끗한 마음.
그리고 뒷장을 넘겼다.
한 줄 더 있다.
가을바람이 앉은 조약돌을 보내니 받아 주렴
'받아 주렴'이라는 말이 특히 좋다. 청순하고 산뜻한 마음.
사실 나는 이런 걸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주 먼 훗날 지금 이 마음을 들여다본다.
다 지나갔다 생각하니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다. 용서,라는 말이 어딘가 거만한가 싶다가도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그리고 이 용서의 대상에는 특정 대상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해 버리는 삶에 있는 것 같다고 하면 너무 비장할까.
그러고 나서도 용서해야 할 특정 대상이 있다면 그것 또한 다른 누군가는 아니고 나일 것이다. '또' 섣부르게 기대했다고, 나이에 맞지 않게 ‘나이브’했다고, 타인을 깊이 이해하고 만나는 데에 '실패'했다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를 제일 한심해했다.
지나간 날을 다시 살 수 없다 생각하니 모든 게 순간이고 아쉽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말하고 약속하고 다짐하느라 허둥대는 사람들이 우습고 가엾다.
최선을 다해야지.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영원하다는 말은 아니다.
덧붙임)
지금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덕분에 결핍을 나누는 게 관계의 필수조건이 아님을 배웠고, 타인은 타인일 뿐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으니까.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구걸하거나 쉽게 이해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을 예정이다. 냉소하지는 않을 거지만 낙관하지도 않고 싶다.
어쩌면 이런 태도가 깊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더 나은 토대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잘 안 됐지만 다음에는 상대에게 의존하려 하기보다는 먼저 잘 헤아려주고도 싶다. 상대가 내 기대와 다르다고 냉큼 미워하는 사람 말고 성숙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도 싶다. 언제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날이 꼭 오면 좋겠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더 잘해보기로! (솔직히 지금은 누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냥 나는 '쿨걸'이 아님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또 다음이 있겠지. 시간이 지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