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좀 개입하고 싶은데요"

용기 있게 개입하는 법

by 백요선

"저 좀 개입하고 싶은데요."


평소 좋아하던 배우님의 특강이 끝나고 Q&A세션 중이었다. 생각보다 활발한 질문들, 그리고 업계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꽤나 디테일하고 개인적인 질문들이 오가는 중이었다. 한 남성 분이 질문을 하던 중이었고 그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한 여성 분이 손을 드셨다. 그리고 저렇게 말씀하셨다.


저 좀 개입하고 싶은데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남기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자세하게 남겨야 이 맥락이 잘 전달될 텐데 하는 개인적인 물음은 있다.) 그 남성 분이 하신 질문의 맥락도 의아한 부분이 있었지만 특정 표현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연출가로서 배우들을 만나다 보면 배우들은 자신의 감춰진 무언가를 연출가가 발견해 주기를 원하는 것 같다면서 '정신의 속옷을 벗겨주길 원한다'는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개인을 공격하기 위한 기록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들을 모두 '웃어넘겼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웃었다. 웃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반응 밑바닥에는 저건 그들끼리의 문제라는 생각이 있었다. 저런 표현이 나오는 그들끼리의 맥락이 있겠지. 내가 관여할 일인가. 그리고 이 말인즉슨 "나는 이런 일을 절대로 겪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저런 표현이 나올 수 있는 환경, 사람, 기타 등등 모든 것을 미리 알고 피해 갈 수 있고 피할 수 있으라는. 당연히 오만함이다.


여성 분은 "연출가와 배우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다"라고 하셨다. "동등한 예술가로서 함께 작업하는 동료라는 존중이 없는" 태도와 표현인 것 같다고도 하셨다. 특정 표현은 충분히 문제가 있다고도 분명히 하셨다.


다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나에게도 필요하고 유효한 말이다. 누군가를 간파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상대가 말하지도 않은 것을 실은 '네가 원하던 일'이라고 하는 방식, 생각해 보니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렇지만 어떨 때는 나도 상대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다 아는 것처럼 굴었던 때가 있다. 진짜 오만한 일임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나 역시 연출과 배우라는 관계를 동료라기보다는 위계적인 관계라고 생각해 왔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당연히 모든 관계에는 권력이라는 게 작동한다. 아무리 사적이고 개인적인 관계일지라도. 그렇지만 하나의 작업을 함께 하는 동료라는 의식 자체가 전혀 없는 것은 문제이다. 나부터도 감독이 원하는 것을 해준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배우로서 작업에 참여하는 것 이전에 그것이 우선시 되는 것은 당연히 문제이다. 모두에게.


마지막으로 개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개입? 나도 웬만하면 안 하고 싶다. 귀찮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얼마나 오만한가...)


어쨌든 나도 그 남성 분의 발언에서 분명히 문제를 느꼈다. 그렇지만 개입하지 않을 이유 역시 충분했다. 오늘 만나고 말 사이니까. 저 사람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까.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까. 잠깐 만난 내가 뭐라고 해봤자 무슨 영향이 있을까 등등.


그렇지만 그 여성 분은 개입했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개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남성 분 역시 특정 표현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할 수도 있고, 연출과 배우라는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은 개입들이 계속 계속 이어져 큰 방향성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더 개입하는 쪽으로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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