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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Feb 21. 2021

정답감각-뒷담화 깔 때처럼 연기하기

연기를 배운다는 것의 의미

연기에는 정답이 있을까? 답은 ‘있다’이다. 연기에 답이 없고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거라면 도대체 우리가 왜 연기를 배우러 다니느냔 말이다. 게다가 비록 계산적이고 논리적인 정답은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연기를 보면서 “저건 아닌데…”라고 느끼고, “저 연기가 내 취향은 아니지만 연기를 못 한다고 할 수는 없네”라고 생각한다. 바로 우리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정답 감각’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답감각’이란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몸의 영역이다.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 말이다. 모든 인간은 생명체이기에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감각이자 공감이 되는 감각이 바로 ‘정답 감각’인 것이다. 물론 인간은 훨씬 더 복잡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답 감각’ 외에도 한 인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들로는 그 사람의 몸이 갖고 있는 ‘체질’(원체 몸에 열이 많은 사람, 좀만 추워도 난리 나는 사람 등등)과 부모와 유년시절과 친구와 직장과 같은 사회적 관계로부터 온 영향(취향)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선생님이 다시 한 번 강조하시는 건 바로 ‘정답 감각’이다. 연기할 때 머리로 고민하지 말고, 몸으로 사유해야 한다는 말이다. 머리와 이성으로 계속 고민해봤자 해결되지 않는 지점들이 있고, 머리로만 생각할 때 우리 몸은 무거워지고 정답으로부터 더더욱 멀어진다. 바로 사심(욕심)이 개입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연기할 때 가 경계해야 하는 순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지금 남 앞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와 같은) 자의식이 연기의 가장 큰 방해요소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자의식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건 그냥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뿐이니까. 하지만 나의 욕심과 사심으로 인해 ‘있는 그대로 연기하고 싶지 않고 뭔가를 조작하고 싶다’, ‘거짓말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우리의 정답 감각이 닫힌다. 주어진 역할과 장면을 있는 그대로 연기하지 않고 예뻐 보이고 싶고, 발음이 좋은 배우로 인식되고 싶고, 똑똑해 보이고 싶어할 때 우리의 정답 감각은 닫혀 버린다.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이 드는 배우들의 공통점은(우리가 말한 배우는 제니퍼 로렌스, 양동근, 송강호, 베네딕트 컴버배치, 이자벨 위페르, 김민희) 모두들 그 상황을 믿게 만드는 힘이 있는 배우들이다. 그들이 연기할 때는 지문과 대사가 보이지 않고, 그 상황이 보인다. 딱히 뭔가를 하지 않고 편하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진짜 같이 느껴진다. 그들은 감정을 표현해내려고 애쓰지 않고 오히려 숨기려고 한다. 그런데도 그 모든 감정이 전달된다. 머리와 논리와 기술이 아니라 정답감각에 의존해 연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에서 제일 쉬운 역할과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우문이 등장할 차례다. 이 우문에 대한 현답은 ‘세상에서 제일 쉬운 역할은 ‘남이 맡은 역할’이고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역할은 ‘내가 맡은 역할’이다!’ 내가 하는 역할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남이 맡은 역할은 아주 간단하다. 남이 맡은 역할에 관해서 우리는 ‘정답 감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역할은 ‘좀 더 잘하고 싶고, 있어 보이고 싶고, 그래야 할 것 같고’와 같은 무수히 많은 이유들과 같은 사심(욕심)으로 보기 때문에 정답 감각이 열리지 않는데 반해 남이 맡은 역할은 “그게 그냥 그거 아니야?”로 가능해진다.


그러니 배우라면 일단 ‘정답 감각’을 활짝 열어야 한다. 감각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배우들이 신체 훈련을 꾸준히 하고, 액티브한 운동을 하는 이유들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신체 자체를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 자체도 일종의 감각이고, 그러니 생각 자체도 신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나는 ‘내가 머리로 하고 있는 생각을 정말 몸으로도 하고 있는지를 신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소리로 이해했다. ‘내가 지금 정말로 기쁜지’, ‘내 몸이 정말로 기뻐하고 있는지’와 같은 것을 점검해야 한다는 걸로 이해했다. 특히나 정말로 나의 인생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거짓말은 결국 ‘내가 나에게 하는 거짓말‘이기 떄문에 ‘내가 지금 나에게 거짓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와 같은 자기성찰 역시 신체적으로 해야 한다.


이 정답 감각을 여는 방법은 다행스럽게도 아주 간단하다. 바로 내 안에 이미 정답 감각이 있음을 믿으면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동물적인 감각, 신체적인 감각이 당연히 내게도 있음을 믿고, 그걸 믿고 그대로 하면 된다. 간혹 아역 배우들이 어른들은 절대로 흉내내지 못할 연기를 보여줄 때, 연기 천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동물성(ex) 류승범)이 그 증거다. 뭔가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연기를 잘 할 때는 정답 감각만을 가지고 온몸으로 연기해 냈다고 밖에는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우리는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에라, 모르겠다. 내가 오늘 진짜 이 무대를 망쳐버리겠다. 내가 얼마나 연기를 못 하는지 오늘 보여주겠다”라는 엄청난 배포를 가지고 임해야 한다. 그때 정답감각이 열린다.


잘 모르겠으면 우리의 사심과 욕심이 개입되지 않고 정답감각이 활짝 열리는 순간을 빌려와도 좋다. 바로 우리가 남 얘기할 때(뒷담화 깔 때)이다. 이때 우리는 온 몸의 정답 감각을 활짝 열고 열렬하게 이야기한다. 그 사람 말투를 실감나게 흉내 내고, 말하고 싶어 미쳐 한다. 나의 생각이 상대에게 온전하게 전달되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얘기한다. 선생님께서는 이게 바로 연기가 아닐까 한다고 하셨다. 나아가 “내 얘기를 남 얘기하듯이” 하는 게 연기가 아닐까, 싶다고도 하셨다. 배우란 결국 남이 보기에는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하지만 실제 내가 하기에는 결국 ‘남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 이걸 굉장히 잘해내야 한다는 욕심 없이 편하게, 동시에 남 이야기 할 때처럼 실감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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