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요선 Feb 21. 2021

그 사람만이 짓는 슬픈 표정

연기를 배운다는 것의 의미

무엇이든 말로 바꾸어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되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한참을 망설이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는..음..자기가..주인공이라고..생각하는 사람이..좀..싫은 것 같아요.” 간간히 의미 없는 웃음도 날려가면서. “그렇게 좀 말하지 마!” 선생님은 답답해 죽겠다는 듯 몸부림치셨다. “그럼 어떻게 말해요?” 나는 되물었다. “미친년이 지가 공준 줄 알아. 존나 재수없게. 시발. 다 늙은 년이 진짜”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


요즘 내가 받고 있는 연기 레슨의 풍경이다. 선생님은 구린 연극들을 끈질기게 보러 다니던 내게 꽂힌 단 한 명의 배우 분이시다. 선생님 연극을 보면서 ‘저런 거라면 나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두근거리며 첫 과제도 받았다. 과제는 일상에서 사건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면서 말했는지, 그런데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상대는 그런 내게 어떻게 반응했는지, 상대의 반응이 내게는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모두 정리해 오라고 하셨다. 처음엔 좀 시큰둥했다. 글쎄, 딱히 그럴 만한 일이 있을까?


그 후로 내 과제 노트는 각종 사건들로 차고 넘치게 되었다. 나는 적었다. 립스틱을 바르고 싶지만 누가 볼까 무서워 혼자 사는 집 안에도 두지 못한다는 남자의 고백을 들으면서 울컥했던 심정을. 커피를 내리며 아침을 즐기던 엄마가 내 다리에 든 멍은 뭐냐고 놀라 물었을 때 “엄마가 그랬잖아~”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하면서도 잊지 않고 숨겨 놓은 나의 공격성을. 요즘 뭐하냐고 묻지만 마치 나의 불행을 기다리는 것만 같은 교회 이모에게 “남자친구 회사 다니면서 놀고 먹는다”고 얘기하는 나의 비틀림을. 구걸하는 사람에게 1,000원을 건네면서 ‘이게 뭐라고..’ 민망해 하다가도 그가 건넨 껌의 눅진함에 상한 내 비위를.


최근 수업에서는 “‘너어무’ 평온하게 교회를 빠져 나가 좋았는데 바로 그 순간 사람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고 있는 ‘23살짜리 새댁’이 눈에 거슬렸다”고 말했다. 수줍은 듯 웃는 그 입매도 마음에 안 들고, 화장법이나 옷차림도 너무 촌스러웠다고 했다. 이 정도면 내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선생님은 질문을 시작하셨다. “새신랑은 괜찮은데 새신부는 왜 거슬려?”, “너 결혼하고 싶어?”, “걔의 젊음이 너를 자극해?”, “내가 아는 너라면 오히려 그런 애들을 어린 나이에 결혼한다고 불쌍하다고 생각할 텐데 걔가 왜 싫어?” 쏟아지는 질문들에 횡설수설 대답했다. 3살 어린 건데 딱히 부러울 나이도 아니고, 생각 없이 하는 결혼이 부러운 것도 아니고. 그러다 ‘어리고 예쁘고 청순하고 한 마디로 좋은 엄마가 될 재목’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고도 얘기했던 것 같다. 결국 내 입에서는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고, 물론 가져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동시에 앞으로도 가져볼 수 없을 그 해맑은 얼굴”이 나를 자극했다는 얘기가 울음과 함께 나왔다.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보고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감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떤 걸 얻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전혀 기대하지 않는 사람”같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네가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게 아니라 미리 포기해버리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계속 알려고 하고 고민하고 의심하는 너는 정말로 행복해지게 될 거라는 응원도 잊지 않으셨다.


그 뒤로 행복했다. 한 이틀?


폭언과 성희롱을 당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희곡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 뒤였다. 칭찬을 너무 많이 들어 그 말들을 두고두고 꺼내볼 생각에 뿌듯했더랬다. 타인에게 내 결과물을 선보인다는 것의 의미에 감격했고,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민함이 연기할 때는 장점으로 발휘된다는 점이 기뻤다. 술과 칭찬에 취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는 다음날의 약속 자리에 선뜻 가겠다고 할 용기도 생겼다. 5년 전의 기억으로는 한 언니가 아주 꼴봬기가 싫었는데 그날 밤만큼은 왠지 그게 다 나의 오해였을 거 같고, 우리가 다 바뀌었을 거 같고 그랬다.


다행히 만남 자체는 좋았다. 나는 빡센 화장도, 화려한 액세서리도, 비싼 가방도 없이 그 자리에 나갔다. 오히려 나의 현 상태를 숨기지 않고 얘기하니 모든 게 다 편해지는 경험을 했다. 내가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수록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이해받고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이 떠오르는 따뜻한 밤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기분이 우울하다. 갑자기 연락이 와 다짜고짜 자기는 준7급 공무원 대우에 연봉 4400을 받으면서도 칼퇴를 한다는 친구 때문일까. 지금 내가 이렇게 고민이 많은 건 결국 남들처럼 회사에서 구르지 않기 때문만이지 않을까. 내 주위만 봐도 예술은 정규직들이 다 하고, 정작 예술충들은 돈이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감도 없고 오히려 편협하던데 나도 그렇게 될까.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니 어제 좋게 만났던 그 언니도 5년 전에는 예술충이라서 사람이 지랄 맞았던 거고, 지금은 사무실을 다녀 사람이 안정적이게 돼 좋아진 거 아닐까, 까지 왔다. 도태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될 것만 같은 불안감과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다. 선생님께서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방안’이 아니라 ‘가장 덜 불행해질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라고 하셨는데 이 불안함을 내가 잘 견딜 수 있을까. 그러다가도 ‘뭔가를 꼭 해야겠다’는 당위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했을 때 가장 덜 아픈지’에 대해서 고민하려면, 한 마디로 자기에 대해 이해하려면 결국 계속 연기를 계속 해봐야 겠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아직도 꺼내지 못한 얘기가 많다.


그러니 이 시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내가 연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솔직해지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 사람만이 짓는 슬픈 표정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뿐이다. 내게 무해한 인간이기에 아무 관심도 없던 새아빠의 외로움을 같이 산 지 14년만에야 발견했다. 고등학교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자해하며 자신의 터널을 지나왔다는 이야기도, 자신들을 숨기는 데 익숙하다는 퀴어들의 이야기도 이제야 듣기 시작했다. 그래서 좋다, 나쁘다의 느긋한 감상을 이야기하기엔 그 슬픈 표정들은 지금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는 중이다.


나는 원래 한 사람을 그 사람이 저지르는 폭력으로 기억하는 인간이다. 그 사람이 어디까지 폭력적일 수 있는지가 그 사람을 효과적으로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 사람만의 슬픈 표정이 그 사람을 설명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프고 슬픈 것들을 더 얘기하다 보면 나만의 표정을 나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 하는 밤이다.

2017.07.19

매거진의 이전글 정답감각-뒷담화 깔 때처럼 연기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